- 얼음에 이름을 지어가기 시작하며 -
고위도로 갈수록 대기와 바다 상태가 변해가는 것이 느껴진다. 따스했던 뉴질랜드의 대기는 이제 날카롭고 차가운 모습으로 변하였고, 온화하고 부드러워 보이던 바다는 냉정하고 거칠게 변하였다. 같은 대기와 바다가 이렇게 변했다니? 무언가 서럽기도 했지만 당연한 것이다. 뉴질랜드를 떠나온 시간이 얼마인가? 꽤 오랜 시간이 흘러 이동하였으니 변한 것은 당연하다. 대기와 바다만 변한 것이 아니다. 따스한 곳에서는 전혀 볼 수 없는 바다를 표류하는 해빙이 자주 보이기 시작했다. 사실 해빙을 볼 수 있는 빈도수가 증가한 것이 아라온이 얼마나 멀리 와있는지, 우리가 가고자 하는 곳에 얼마나 가까이 왔는지를 실감할 수 있게 한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해빙은 저마다 모양과 크기가 다양한데 만날 때마다 묘하게도 이름을 계속 붙여주고 싶었다. 하루 전에 봤던 해빙에는 '마법사 모자', '얼음 굴러가유'라는 이름을 붙여 주었다. 이 날은 전날보다 더 큰 해빙을 볼 수 있었다. 하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해빙을 보고 마음이 아플 이유가 무엇이 있을까? 기후변화 때문인가? 전혀 아니다. 급격한 기후변화가 걱정이 되어 속상해 하긴 한다. 하지만 마음이 아플 정도는 아니다. 지나친 감정의 이입일 수 있겠지만 제법 적당한 거리에 있던 해빙 하나가 반 정도 가라앉은 배의 선수 모양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생각지도 못했다. 이런 곳에서 과거 세월호의 모습이 떠오를 줄은 몰랐다. 내가 아라온에 승선하여 이동을 하는 중이기 때문 일까? 유독 감정 이입이 되었다. 그때의 아픔에 대해 작은 기도와 추모를 해본다. 그리고 이번 출장도 무사히 마쳤으면 하는 바람을 갖게 된다.
사실 해빙은 어떤 특정한 것을 연상시키는 모양을 갖은 경우보다는 그저 그런 모양을 한 경우가 더 많다. 매우 가까이에서 보면 엄청난 크기에 놀라 특징은 눈에 들어오질 않는다. 반대로 멀리 있으면 그런 놀라움 조차 느끼기 어렵다. 그래도 처음에는 가까이 있으나 멀리 있으나 어떤 모양을 하고 있던, 존재 그 자체만으로 마냥 신기하다. 그래도 이 날은 다른 인상적인 해빙도 볼 수 있었다. 이 해빙의 경우에는 오히려 특색이 없던 것이 특징이었다. 그래서 보는 동안 특별한 생각이 들질 않았고 이름도 '흠...'이라고 지어 주었다.
위의 해빙과 달리 매우 재미난 모습의 해빙이 나타났다. 본 순간 '고래'라고 이름을 지어 주었다. 딱 봐도 고래의 모습과 너무 비슷하여지어 준 이름이다. 어찌 보면 재미난 모습에 비해 재미없는 이름일 수 있다. 고래처럼 생겼다고 이름을 고래라고 지어주다니. 하지만 정말 고래 같이 생겼으니 다른 이름이 떠 오르질 않았다. 지어줄 이름으로 범고래나 돌고래도 생각을 해봤지만 결국 고래다. '물은 언제 뿜을까?'라는 생각을 해본다. 뿜을 리 없지만 혼자 기다려 본다. 잠시 그렇게 헤엄치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 날, 고래를 끝으로 이름을 지어줄 만한 해빙은 없었다. 적적한 항해 중에 이런 만남은 참 큰 복이라 생각한다. 바다는 육지보다 넓고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우리나라에서 보기 힘든 수평선은 어느 방향으로 보던 쉽게 볼 수 있다. 생각해보니 이토록 넓은 바다에 흔한 길 안내 표지조차 없다는 사실이 무언가 웃긴다. 이렇게 웃긴 바다 위에서 여러 해빙을 만날 때마다 계속 이름을 지어주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