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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해 Dec 14. 2018

지우고 싶은 기억과 조금씩 멀어지는 방법

내 마음속 오두막을 찾아서


지우고 싶은 기억이 있다. 그 기억의 힘은 너무나도 강력해서, 필사적으로 벗어나려 해도 어느순간 나를 내동댕이 치고 만다. 나는 밤낮으로 조여오는 기억들에 휘둘리느라 만신창이가 되었다. 저녁이면 1인용 소파 하나가 덩그러니 놓여 있을 뿐인 거실에 쭈그리고 앉아 베란다 밖으로 뛰어 내릴까 말까를 고민하던 나날이었다. 특별한 자극없이도 맑았다 흐렸다를 반복했고 나는 감정의 외줄타기 속에서 이것이 병일까 생각했다.


어떤날은 종일 기분이 들떠 있었다.
밤새 만든 시안을 상사가 집어 던져도 이내 즐겁게 다시 일을 시작했고,
사소한 일에 깔깔거리며 기분이 좋아 어쩔줄을 몰랐다.

그리고 어느날은, 그저 화장실 구석에 주저앉아 온종일 괴로움에 몸부림쳤다.
다신 웃지 못할 사람처럼.




발가락 동상이 심했던 나는 봄이면 참을 수 없는 가려움에 시달려야 했고, 밤새 퉁퉁 부은 발가락을 부여잡고 잠들었다 깨었다를 반복했다.


그렇게 몇번의 봄을 보내고 몸과 마음이 피폐해진 채로 - 당시는 나를 돌볼 심리상태가 아니었고, 보다못한 친구가 나를 끌고 갔다 - 한의원에 가서 치료를 받게 되었다. 그곳은 독특하게도 손과 발에만 침을 놓았다. 맨 처음 내 발을 본 한의사는 짐짓 놀라는 듯 했으나 이내 치료를 시작했다.

일주일에 두번씩, 몇주가 지나자 발가락에 침을 놓을 때마다 가슴에 담이 걸린 듯 횡격막이 조여오기 시작했고, 나는 고통을 호소했다.

  “조금씩 괜찮아지고 있다는 증거입니다.”

원래 내 발가락은 만지면 저릿한 느낌 외엔 없었다. 색깔도 검푸른 보라빛에서 제 색을 찾아가고 있었다.


다니던 곳은 심리상담도 함께하는 곳이었다. 며칠을 망설이다 지나가는 말로 심한 감정기복의 증상들을 털어 놓았다. 무겁지 않은, 어색한 미소가 맴도는 얼굴을 가만히 바라보던 그가 몇가지 질문을 한다. 그리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시작했다.

  “산이 좋아요, 바다가 좋아요?”

  “산이요.”

사람이 절박해지면 지푸라기라도 잡는다 했던가. 눈을 감은 채 그 이야기를 따라 가면서 조금씩 마음이 가벼워짐을 느꼈다. 마치 빈 소풍가방을 메고 있는 기분이었다.





사람들은 마음속에 저마다의 궁전을 갖고 있다고 한다. 그곳은 온전히 나를 드러낼 수 있는 장소이자 영혼의 안식처다. 


photo by Kassandra Stockton


나무를 좋아하는 나는 마음속 숲에 작은 오두막을 지었다. 보드라운 흙을 밟으며 키가 큰 나무들 사이로 난 오솔길을 따라 걷다 보면 나의 낡은 오두막이 있다. 땅 위로 스며드는 따스한 빛, 고소한 스프냄새, 작은 동물들이 노니는 이곳은 언제나 조용하고 풍요롭다.

나무를 곱게 다듬어 상자를 만든다. 내 아픈 기억들을 가지런히 담아두곤 햇살 잘드는 오두막의 한켠에 놓았다. 한참을 망설이다 문을 열고 나온다. 한걸음, 한걸음, 다리가 무겁다. 미안해서, 그러면 안될 것 같아서.

기억의 끈을 놓지 못하는 내게 그는 말했다.


외면하는게 아닙니다.
언제든지 열어볼 수 있어요.


길을 따라 걸었다. 구름은 붉은 노을에 물들고 있었고 햇빛에 반짝이던 잎사귀들이 실바람에 사르르 흔들렸다. 뒤를 돌아본다. 나의 작은 벗 -  토끼, 다람쥐, 새 - 들이 손을 흔든다.


천천히, 조금씩 오두막에서 멀어져 간다. 마침내 오두막이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졌을 때, 나는 소리내어 울고 말았다.




  “괜찮아요. 기억들은 잘 있을거에요.”

그는 어린 아이처럼 울고있는 나를 가만히 기다려 주었다.


그 뒤로도 가끔 기억의 상자에 내가 감당하기 힘든 일들을 넣어두고 오곤 했다. 시간이 흘러 다시 열어보아도 늘 아픈 그것들을, 잃어버리지 않고 잘 간직하고 있다는 것으로 위안을 삼으며.


조금씩 조금씩 멀어지는 연습을 한다.





많은 사람들이 감당하기 힘든 기억들을 끌어안고 산다. 스스로를 괴롭히며 끊임없이 되뇌이거나 기억과 비슷한 소재가 나타나면 자연스럽게 떠오르기도 하고, 이내 당시의 감정이 소환되면서 괴로워한다.


마음의 병은 그렇게 시작된다. 스스로를 다독이지 않으면 방법이 없다. 그것은 나의 선택이다.

나는 살아남기 위해 그들과 조금씩 멀어지는 쪽을 택했다. 시간은 많은 것을 미화시킴에도 절대 아름다울 수 없는 그 기억들을, 내가 조금 더 단단해 졌을 때 다시 꺼내보자.


우선은,
살아야 하지 않겠는가.



누군가 나와 비슷한 상황이라면, 위의 장면들을 천천히 떠올려 보며 자신의 마음속 집을 찾고, 상자를 만들어 보길. 그곳은 바다일 수도 있고, 달나라 일수도 있겠다. 절구를 찧고 있는 토끼에게 나의 상자를 맡겨보자. 그리고 천천히, 아주 천천히 열기구를 타고 멀어져 보자.

말도 안되는 상상이면 어떤가. 내 마음속인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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