없으면 없을수록 좋은 그런 것.
친구 결혼식에 참석하였다.
나이 30줄을 살다 보니 결혼식 참석도 잦아져,
한 두 번 가볼 때보다 감정동요가 적어졌다.
친구의 아버님은 딸을 보내며 축사를 하셨다.
울부짖듯 말을 이어나가시는 축사에 주변 사람들의 눈시울은 붉어졌다.
나는 심드렁한 채로 듣다가,
아버님의 몇 마디 말에 내 친구가 받던 사랑의 조건은 뭐였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너가 임용고시를 통과한 게 너무 자랑스럽다."
"아빠가 하던 교직의 일을 이어받은 너가 너무 자랑스럽다."
"일이 어려워도 꿋꿋하게 버텨나가던 모습이 자랑스럽다."
무언가 딸의 삶에 자신을 투영한 것 같은 말들,
조건들이 이루어졌을 때만 사랑했을 것 같은 표현들 속에서,
"너가 그렇게 해내지 못했더라도, 나는 너를 사랑했을 거다."
이런 한 마디가 덧붙여있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잠시 생각했다.
사랑이란 게 뭘까.
나는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정말 깊게 한참을 돌아보곤 한다.
한 설교에서, 목사님의 딸이
"아빠는 나 왜 사랑해?"라고 한 질문에.
"응 아빠는, 로운이가 로운이라서 사랑해."라고 답했다던 이야기가 너무 기억에 남아서.
사랑을 정의할 때 자주 활용하고는 한다.
그 아이가 원했던 답은.
"너가 어떤 책 읽기 상을 탔기 때문에 너를 사랑해."
"너는 또래보다 성숙하니깐 너를 사랑해."
이런 조건부의 대답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목사님이 그런 대답을 하지 않은 까닭은,
우리가 진정으로 받고 해나가야 할 사랑이 그것이 아니고,
우리가 만약 조건부의 사랑을 찾기 시작한다면,
우리는 어딘가에 뿌리내리지 못하고
바람에 끝도 없이 흩날리기만 하는 민들레 홀씨 같아질 것이란 걸 알기 때문이라고.
우리는 너무나도 자연스럽게, 조건부의 사랑을 한다.
실제로 조건이 갖춰지지 않으면 우리는 서로를 사랑하지 않는다.
몸에서 냄새가 나거나,
너무 가난하거나,
삶에 찌들어 살거나,
부정적인 말만 하거나,
빚더미에 앉아있거나,
외모가 너무 못생겼거나
그런 사람들을 사실 나는 사랑하지 못한다.
맞이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힘들었던 사람들일 뿐일 텐데도 말이다.
그 사람만의 문제고 그 사람의 의지만의 문제라고 말하기에는
정말 예기치 못했고, 나에게도 그런 일이 다가왔으면 답도 못했을 상황이 세상에는 얼마나 많은가.
나라고 그 사람들이랑 다를 바가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어찌 보면 두 발 가지고 걷는 것마저 정말 감사할 수 있을 것이다.
근데 그러면.
사랑받을 조건을 갖추지 못한 사람들은 대체 누가 사랑해 줄까.
자의든 타의든 피치 못하든 뭐 어쨌든 간에.
당장에 일어날 힘조차 없는 이들은 대체 누가 사랑해 주냔 말이다.
그것이 조건이 필요한 일이라면.
그것에 대해.
그들을 누가 구해낼 수 있냐고...
그래서 나는 더욱 순전한 걸 원한다.
더욱 근본적인 걸 원한다.
나는 조건 없는 것을 원한다.
그대로 존재하더라도, 존재함으로 사랑할 수 있는 그런 것을 말이다.
물론 너무나도 멀어 보이고, 전혀 자신은 없지만. 그래도..
친구의 아버지는 아마 그런 말을 그저 표현 안 하셨을 수도 있다.
내가 본 많은 부모님은 그래도 대개 꽤나 존재만으로 자녀들을 사랑하는 것 같아 보인다.
(안 그런 사람도 분명히 있지만 말이다.)
그래도 그냥. 나는 나중에 내 애를 키우면서 꼭 그렇게 말해주고 싶다.
나는 때로는 너가 자랑스럽고,
때로는 너가 밉고,
때로는 힘들 때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 모든 순간에서 나는 너의 존재 그 자체만으로 너를 사랑한다고.
그러니,
적어도 나한테는 사랑받기 위해서 힘쓰지 않아도 괜찮다고. 너는 나한테, 나는 너한테 그런 존재이니깐.
내가 너에게 뿌리내릴 땅이 되어주겠다고.
나는 그런 사랑을 하고 싶다.
그렇게 또 사랑을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