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회고 : 모든게 100%인 상황은 절대 오지 않는다.
0. 어떤 꿈을 꾸고 있나요. 이 질문에 섣불리 답하기 어렵다면,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큰 돈이 있을 때 해보고 싶은 일로 바꾸면 좀 더 접근하기 쉬워질 수 있다. 그 중 마음에 가장 와닿았던 것은 나만의 브랜드 만들기였는데, 이 문장은 몇 년 전부터 막연하게 꺼내온 생각이다. 근데 어떤 브랜드가 되고 싶은지, 꼭 실현시키고 싶은 나만의 이데아가 무엇인지 모르겠다. 이 문장이 확실해지기 전까진 남의 꿈을 빛나게 만들어주는 경험들을 계속 쌓기로 했다. 물론 둘 다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가장 부러운 유형은 what if 를 쉽게 떠올리는 사람들이었다. 말이 안되는 이야기인데 말이 되게끔 그려보고, 무너져도 그냥 일어나고 반복하는 과정 사이에서 반짝이는 저마다의 치열함을 동경해왔다.
이와 반면에 2024는 기존의 ‘관성’과 싸웠던 해다. 크게 보면 성장보다는 유지하는 해에 가까웠는데, 외부 활동을 줄이고 일-여행-영어-운동 4개 위주로 에너지를 썼다. 관심의 총량이 각자 쪼개져서 그랬을지도 모르지만, 남는 시간이 주어졌을 때 개인 작업을 뒤로하고 다른 선택을 하는 순간 업에서 느끼는 재미가 줄어든 상태임을 알게 되었다. ‘그런 순간도 있지. 창업가가 아닌 이상 광기를 매번 100% 유지할 순 없어.’ 라는 언니의 말이 꽤 위안이 되었는데, 이 때 내가 현재 해야하는 일 vs 하고싶은 일의 비율을 점검하면 꽤 도움이 되는 것 같다. (이상적인 비율은 8:2 법칙을 따라가는 듯) 그렇다고 관심을 적당히 하면 더 지루해진다는걸 깨닫게 되었고.. 스스로 어쩌라는 건가 싶으면서도 내린 해답은 숨이 차올라야 깰 수 있는 정도의 변화구를 주기로 했다. 그게 디자인이든 뭐든.
1. 어쩌다보니 프리랜서를 1년동안 하게 되었다. 이 또한 계획에는 없었지만 요즘엔 설계보다 상황에 대응하는 것에 더 초점을 맞춘다는 지인의 말이 떠올랐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아슬아슬하게 굴러간 한 해였다. 1인 시스템이 되지 못했다는 뜻이다. 낮과 밤 - 평일과 주말이 혼재된 기간이 길었는데, 올빼미 생활을 원복하고 고치는 패턴이 반복되었다. (짐승합격) 여차저차 들고 있는 일이 마무리되면 다시 회사에 들어가야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당분간 스스로를 시스템에 가둬두어야 할 것 같다. 흑흑.
2. 올해는 특이하게 아이덴티티와 UIUX 사이 4:6의 비중을 두고 작업하게 되었는데, 확실히 아이덴티티와 에셋을 다듬는 일이 더 재밌다. 둘 다 동시에 잘하려면 최소 두배의 시간을 투입해야 한다는 결론. 그렇지 않으면 모호해진다. 막상 실무를 하는 입장에 서보니 모든 프로덕트 디자이너를 존경하게 되었다. P가 J로 진화할 수 있을까요? 컴포넌트 관리에 게을러서 팀 부채의 one of them에 기여해서 죄책감이 들었고요.. 나아가 0-1이라면 어느 시점에 시스템을 만드는지, 어떻게 발산하고 수렴하는지 일하는 방식이 자연스레 궁금해졌다. 여기서 새로 얻은 경험은 서비스 카테고리마다 공통된 UI 패턴을 익히고, 화면간의 맥락과 경우의 수를 좀 더 고려하게 된 것. 덤으로 Cavalry와 Spline과 친해졌다. 다음 단계는 보여지는 것을 넘어 작동방식을 고민해야 하는데, 일하는 구조에서 한계는 명확하지만 기여하고자 한다면 주어진 프레임은 생각하기 나름이라 믿는다. Your power matters, but teamwork is key. 잊지 말자.
3. 조각낸 관심은 영어와 독서에 이어 붙였다. 올해 가장 좋았던 책은 <흰>과 <브랜드로 남는다는 것>. 영어 공부는 루틴으로 넣고 전체 발화량을 늘렸다. 비영어권으로서 느끼는 영어 공부의 최고 장점은 ‘나만 느끼는 쪽팔림’ 의 역치를 높인다는 점이다. 초반에는 틀리지 않는 문장을 만들고 싶어 스트레스를 받았는데 몇 번 영어권 친구들과 말해보니 그냥 사람으로서 대화가 잘 통하는게 더 중요하단걸 느꼈다. (물론 날뛰는 문법에 상대방이 킹받을 순 있음) 근데 비즈니스는 또 다른 level이라 새해는 이 단계에 접근 할 수 있으면 좋겠다.
4. 마우스를 하루라도 놓으면 화살촉이 무뎌지는게 느껴지는 업이다. 다만 장기적으로 독립을 생각하고 있다면, 하드스킬의 투자뿐만 아니라 화면 밖의 세상에도 계속 눈을 돌려야 하는 것 같다. 어떤 시점이 되면 홀로서야 하니까. 그런 맥락에서 나태한 스스로한테 뒷목이 서늘해졌다. 한편 기획자는 뭐 해먹고 살아야 될지 고민이 된다는 주변 동료들의 말에 크게 걱정되진 않았다. AI가 발달하는 현 시점에서는 호기심이 재능이고, 기획은 어떤 도메인이든 닿을 수 있는 시작부터 끝에 위치한다. 이 문장을 연결해서, 디자인을 잘하고 싶으면 ‘디자인을 제외한 모든 것’에 관심을 가지라는 조언이 줄곧 머리에 맴돌았다. 훨씬 더 많은 공부가 필요하다.
작년 연초에 참여했던 비즈니스 시뮬레이션 게임에서 ‘모든게 준비된 100%인 상황은 절대 오지 않는다’ 는 깨달음에 망치를 맞았었다. 그 문장에 대입해보면, 기실 지난 한 해동안 완벽했던 날은 단 하루도 없다. 대신 온전했던 날은 정말 많았다고 생각한다. 존재의 온전함을 만들어준 주변 동료들과 친구들에게 고맙다고 말해주고 싶다. 그러니까 더 배우고 나누는 한 해를 만들어 볼게요. 아카이브도 하고..(살려주세요) 조금 늦었지만 Happy new yea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