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신체'와 '다중 정체성'을 중심으로
'포스트휴먼(Post-Human)'은 기존의 인간을 상정해온 근대적 휴머니즘을 비판하면서 생겨난 용어로, 발전된 과학기술을 통해 신체가 가진 제한적 능력을 넘어선 변화되고 향상된 인간을 지칭했다. 포스트휴먼을 인간에 대한 새로운 정의로서 제안하는 담론인 포스트휴머니즘(Post-Humanism)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요인으로 등장했다. 첫 번째는 인간의 새로운 주체성에 대한 논의를 추상적 관념에만 그쳐왔던 것을 넘어, 좀 더 실질적이고 실현 가능한 모델을 통해 제안해야 할 필요성이 촉구되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이러한 흐름 속에서 유전공학을 비롯한 생명공학, 로봇공학 등의 첨단과학기술이 인간 삶에 깊숙이 관련 맺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포스트휴머니즘은 자명하고 고정된 것으로 간주되었던 인간, 인간성, 정체성을 해체하고 새롭게 정의한다. 캐서린 헤일스(Katherine Hayles, 1943- )는 "인간의 기술적 구성"이라는 말로 인간에 대한 존재론적 틀을 재정립하고 새로운 주체성을 모색한다. 헤일스에 따르면 포스트휴먼 주체는 인간과 기술적 기계의 이질적인 요소들로 구성된 혼합체이자, 그 경계가 계속적으로 재구성되는 물질적이면서 정보적인 개체이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기계가 부착(내지는 결합)된 사이보그여야만 하는 것은 아니다. 인간에 비-생물적 요소의 존재 여부가 포스트휴먼을 결정짓는 데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중요한 것은 바로 주체성이 구성되는 방식에 있다.
"인간의 기술적 구성"이란 기술 매체를 통해 인간의 감각이 확장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가 리모컨으로 기계를 작동시키고, 스마트폰으로 먼 곳에 있는 사람과 통화하고, 인터넷으로 전 세계와 동시에 정보를 주고받는 것 역시 기술 매체를 통해 우리의 감각을 확장시키는 행위들이다. 매체의 매개성 발달과 인간의 감각의 확장을 연결 지었던 마셜 맥루언(Marshall Mcluhan, 1911-1980)의 주장을 비롯해 매체와 맞물린 우리의 상황, 환경에 대해 논했던 프리드리히 키틀러(Friedrich Kittler, 1943-2011)의 이론은 매체가 감각을 확장시킨다는 측면에서 기술과 기술 매체가 이미 우리의 신체와 의식, 그리고 관계를 구성하는 일부가 되었다는 사실을 전제하고 있다.
인터넷과 스마트폰은 가상과 실재를 매개하기도 한다. 가상환경에서의 일상이 보편화된 현재, 우리는 미디어 환경 속을 떠돌며 무한히 확장된다. '메타버스(Metaverse)' 등의 사이버스페이스 플랫폼은 우리가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로 분류하는 다른 어떤 미디어 환경보다도 가시적인 공간을 제공하고 있다. 이러한 플랫폼은 2020년 초 전 세계적인 확산세를 보였던 코로나 바이러스로 '사회적 거리두기'를 할 수밖에 없던 상황에서 대안이 될 수 있었다. 예컨대, '제페토(ZEPETO)'나 '이프랜드(ifland)'가 등장했던 초기에 많은 관심을 받을 수 있었던 것도 현실에서의 일상적, 사회적 소통의 단절이 있었기 때문이라 볼 수 있다.
2022년에는 가상 커뮤니티와 공간을 만드는 게임 '퍼피레드M(PuppyredM)', 그리고 가상환경을 기반으로 한 SNS 애플리케이션 '본디(Bondee)'가 출시되는 등 가상 플랫폼은 계속해서 만들어지고 있다. 이 같은 플랫폼이 사용자(user)를 지속적으로 유치하거나 사회적 소통망으로서 주된 장(field)이 될 수 있다고 보는 것은 어려울지 모른다. 하지만 미디어 환경이 우리가 살아가는 현실의 상황, 환경과 결부되어 매체에 대한 관점과 삶에 대한 관점을 변화시키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인다.
미디어 환경 안에서의 경험은 오늘날의 새로운 경험이 아니다. 우리가 예전부터 사용해온 SNS도 미디어 환경이고, 온라인 및 모바일 게임과 VR(가상현실, virtual reality), AR(증강현실, augmented reality) 역시 미디어 환경이다. 이미 가상공간을 접하고 있었다는 점을 생각해 볼 때 메타버스는 새롭거나 놀랍지 않다. 게다가 메타버스와 유사한 기능을 가진 플랫폼은 과거에도 존재했다. 그 예가 트라이디커뮤니케이션(Tri-d Communication)사에서 출시했던 3D 아바타 육성 게임 '퍼피레드(Puppyred)'다. 앞서 언급한 퍼피레드M의 전형이다.
실재하는 '나'를 대신하여 '나'를 표현할 수 있는, 내가 원하는 모습대로 꾸미고 정체성을 자유롭게 부여할 수 있는 아바타를 내세워 불특정 다수의 사람들과 동일한 공간에서 소통하고 행위할 수 있는 하나의 가상 사회(virtual society)를 형성하고 있다는 점은 '인간의 기술적 구성'과 '인간의 확장'의 또 하나의 일례로 볼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현시점의 포스트휴먼 주체는 어떤 행선지를 필요로 하지 않고, 정착할 필요도 없이 데이터로 구축된 세계를 부유하며 스스로를 확장시킨다.
웨일스 카디프 메트로폴리탄 대학교(Cardiff Metropolitan University, Wales)의 로버트 페퍼렐(Robert Pepperell, 1963- ) 교수는 포스트휴먼이 자신의 존재를 생물학적 영역에만 국한시키지 않고 더 넓은 물질적 영역까지도 포괄하여 확장된 기술 세계에 구현시킨다고 말했다. 가상공간으로 확장된 포스트휴먼은 실제 몸을 대신하는 가상신체를 구현하여 미디어 환경에 들어간다. 이때의 가상신체는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활동하기 위한 플레이어블(playable) 아바타라는 점에서 기존의 온라인 및 모바일 게임에서 선택되고 사용되는 캐릭터와 유사하다. 그러나 게임 캐릭터는 (캐릭터를 직접 커스터마이징 할 수 있는 시뮬레이션 게임을 제외하면) 이미 주어져 있고, 사용자는 그 가운데 선택권만이 제공되는 것이 대부분이다. 사용자는 자신이 선택한 캐릭터의 서사와 게임 속 서사에 이입해야 한다. 반면, 포스트휴먼의 가상신체는 현실의 '나'를 닮은, 혹은 '나'가 원하는 모습으로 외모, 성별, 인종, 그리고 종(species)까지도 설정하여 만든 새로운 존재이다. 그렇기에 가상신체는 실재하는 몸을 대신하여 미디어 환경에 액세스 하는 대리 신체이자, 현실의 '나'에서 가상의 존재로 액세스, 이입하게 하는 매개체라 할 수 있다.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학자 포피 와일드(Poppy Wilde)는 우리가 가상의 아바타를 통해 상호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면서 우리의 자아를 확장시킬 수 있다고 하며, 이러한 관계를 포스트휴먼 주체성이라 설명한다. 포스트휴먼 주체성은 실재의 '나'와 가상신체의 '얽힘(entanglement)'을 통해 우리가 직접 피부로 감각하고 인식하는 수행성을 비물질적 신체로 분산시키며 나타난다. 실재하는 몸에 요구되는 행위는 눈과 손으로 최소화되고 가상신체에 대부분의 동적 행위를 위임시키며 우리의 눈은 그래픽 시뮬레이션 공간에서 물질성과 공간성, 시간성과 주체성을 인지하며 가상을 받아들인다. 스크린이라는 한 겹의 벽을 통과하는 음성과 텍스트로 이루어지던 기존 매체의 상호 소통 방식은 여전히 존재하지만, 얼마나 더 많은 영역 안에서 타인을 비롯한 다른 존재들을 만날 수 있는지는 가상신체에 의해 좌우될 수 있다. 컴퓨터 키보드나 마우스, 콘솔 게임(Console game)의 조이스틱(Joystick)으로 움직인다는 점에서 가상신체는 마우스 커서(cursor)와 다를 바 없을 수도 있다. 그러나 데이터로만 구성되어 있는 미디어 환경을 물리적 현실과 닮은 전자적 현실로 구현하고 있다는 점, 그리고 이를 3차원의 장소로서 재현하고 있다는 점은 우리의 지각 영역과 활동 영역을 확장시켜주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가상신체의 가능성을 두고 포스트휴먼의 한 가지 양상으로 바라보는 이러한 관점은 자칫 과장된 해석을 불러올 수 있다. 예컨대 가상공간이 현실을 대체한다는 생각이나 가상공간에서 물리적 신체는 가상신체에 전적으로 의존한다는 생각이 그렇다. 이는 오래전부터 공상과학소설이나 영화, 애니메이션에서 자주 다루어온 유체이탈에 대한 상상과 연결된다.
가상공간과 신체의 관계에서 신체에 대해 이러한 결론을 내리는 것은 자연스레 물질성과 신체성을 하위에 두게 만들고, 가상성의 바탕을 이루는 정보화와 탈물질화를 물질보다 더욱 본질적인 것이라 인식하게 만든다. 신체와 정신을 각각의 독립된 실체로 보는 심신이원론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인간은 신체보다 정신을 중시하는 경향을 보였다. 인간의 오랜 욕망은 신체로부터 탈피함으로써 그보다 우위에 있는 정신을 해방시키는 것이었다.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러한 욕망들은 탈신체화(disembodiment) 담론으로 이어졌다.
탈신체화를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가상공간은 그들의 욕망을 구현시킬 수 있는 매체가 되는데, 기술을 통해 인간의 시·공간적 한계를 극복할 수 있을 것이라는 탈신체화 담론은 기술 진화론적, 기술 낙관론적 관점과 비슷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 포스트휴머니즘 가운데 기술 애호적 견지를 보이는 입장인 트랜스휴머니즘(transhumanism), 트랜스휴머니즘의 극단이라고도 불리는 기술적 포스트 휴머니즘(technological posthumanism) 혹은 급진적 포스트휴머니즘(radical posthumanism)*이 기술 낙관론과 상통하는 대표적인 관점이다.
* 포스트휴먼을 인간이 완전히 탈신체화하여 디지털 속에 정보로 업로드되거나 아예 기계와 결합된 상태로 규정하고, 기술을 통해 인간의 삶을 급진적으로 변형시키는 결과로 나타나는 '특이점'에 중점을 둔 입장에 대해 야니나 로(Janina Loh. 1984- )는 '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 이원봉은 '급진적 포스트휴머니즘'이라 하였다 (야니나 로,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조창오 (역), 부산: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이원봉,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이 될 수 있는가?: 포스트휴머니즘 논쟁을 통해 본 휴머니즘의 의미와 한계」, 『인간연구』 37 (2018) 참조.).
이러한 입장에 따르면 정신은 개별적으로 인식의 주체가 될 수 있기 때문에 완성적인 인간, 이상적 포스트휴먼이 되는 것은 애벌레가 번데기에서 나비로 탈바꿈하듯 육체를 완전하게 벗어나는 데 있다고 본다. 그 극단적인 예시가 바로 인간의 뇌에 있는 마음을 컴퓨터나 다른 매체로 옮기는 '마인드 업로딩(Mind Uploading)' 개념이다. 로봇공학자 한스 모라벡(Hans Moravec, 1948- )이 『마음의 아이들 (Mind Children)』(1988)에서 인간의 마음이 유기체인 뇌로부터 기계라는 새로운 몸으로 이동한 것을 '변신((metamorphosis)'이라고 표현한 바 있다. 매체 철학자 야니나 로에 따른 기술적 포스트휴머니즘의 사유는 생물학적 신체의 필멸성이라는 한계와 사멸의 유기적 과정으로부터 마음을 해방시킬 것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녀는 이어서 모라벡이 서술하는 '변신'은 육체로부터 극단적으로 변화한 것으로서 생물학적 '묘지'와 다르지 않다고 설명한다. 인간이 몸을 떠나더라도 다른 물질과 결합되어 있다면 기술적 포스트휴머니스트들에게 있어 그것은 여전히 인간인 것이다.
물론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신체는 유체이탈이나 마인드 업로딩의 실천이 아니며, 이를 '환상'으로서 경험하게 한다고 말하는 것 역시 (아직까지는) 과장이다. 기술적 인터페이스와 가상신체에 행위성을 부여하는 행위자(신체)의 존재를 무시하고 이를 탈신체화 담론과 연결 지으며 마인드 업로딩과 동일선상에서 논의하는 것 또한 비약이며 극단적인 시도다. 이 때문에 탈신체화 담론의 "신체로부터의 해방"은 유기체적인 몸에 기반한 시스템을 일소하지 못하기에 사변성에 그칠 뿐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헤일스는 가상의 공간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살아가는 상황에도 이러한 영역을 탐험할 때 결코 현실의 물질세계는 대체될 수 없다고 일축했다. 그리고 인간이 미디어 환경을 구성하고 경험하기 위해, 그리고 정보가 패턴으로서 존재하기 위해 신체는 필요하다고 역설했다. 이 관계를 설명하기 위해 헤일스는 신체(body)와 신체화(embodiment), 그리고 기록(inscription)과 체현(incorporation)이라는 용어를 병치하는데, 먼저 신체는 기록과 같이 어떤 특정 현상과는 별개로 작용하는 추상적인 기호체계이다. 신체화는 수행적이며 특정 상황과 인간이라는 환경에 구속되어 있어 특정한 체현 행위를 통해 예화 될 때에만 존재한다. 신체는 하나의 개념으로서 어떤 매체로 옮겨지거나 다른 매체로 옮겨지는 것과 상관없이 존속되지만, 하나의 개념으로서만 작용한다. 이와 반대로 신체화와 체현은 '신체'라는 기호가 담긴 매체와 상호작용함으로써 특수성이 비롯되기에 매체와 분리될 수 없다. 이를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신체에 비추어보면, 가상신체는 실재하는 몸으로부터 신체의 기호가 옮겨진 매체이고, 우리는 가상신체를 통해 미디어 환경과 상호작용함으로써 이전과 다른 방식으로 신체화 및 체현할 수 있는 주체가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기술 환경에 적응하고 이를 받아들이는 포스트휴먼 주체가 되는 것이다.
장소가 형성된 사이버스페이스에서 포스트휴먼의 주체성은 '다중 정체성'으로 구성된다. 시각이 지배적인 미디어 환경에서 다중 정체성은 매개의 과정을 거쳐 형상화된 이미지로 나타난다. 사용자는 사이버스페이스에 입장할 때 그 공간에서 사용할 이름을 설정하고, 외모, 성별, 피부, 종을 설정하며 현실의 '나'가 아닌 다른 존재를 시뮬레이팅한다. 그리고 현실의 '나'가 관계 맺는 방식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타인과 상호작용한다. 그곳에서 '나'의 정체성은 현실과 다를 수 있고, 욕망에 따라 언제든지 자신을 새롭게 규정할 수 있으며, 또 언제든 타인에게 보여주고 싶은 모습으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서 사이버스페이스는 가상 존재의 강력한 '다형성(polymorphism)'이 작동하는 공간이다. 이런 방식으로 '가상 자아(virtual self)'를 만들어내는 개개인의 정체성을 문화 이론가 스콧 부커트맨(Scott Buckatman)은 '단말기 정체성(terminal identity)'으로 설명한다. 이는 현실과 가상공간 사이에서 개인의 정체성이 나뉘고 분열되는 것이 아니라, 주체가 가상공간마다 정체성을 다중으로 분산시키고, 분산된 네트워크들과 연결되어 있는 그 주체가 하나의 단말기가 된다는 것을 말한다.
그러한 장치(가상의 평면)에 설치된다는 것은 한 번에 두 개의 평면 위에 존재하게 되는 것이다. 즉, 실재하는 신체는 현실 세계에 있고, 현상적(phenomenal) 신체는 가상현실에 투영된다. 메를로-퐁티(Merleau-Ponty)의 현상학을 통해 과장하자면, 세계와 신체는 지속적으로 변화하는 피드백 루프로 구성되어 단말기 없이 단말기 정체성을 생성한다고 할 수 있다. 즉, 사이버 주체를 형성한다.
- Scott Buckatman, Terminal Identity: The Virtual Subject in Postmodern Science Fiction, Durham & UK: Duke University Press, 1993, p. 187 참조.
그는 사이버스페이스의 데이터 흐름에 '잭 인(jack in)'하는 것을 "순수한 인간 존재의 불연속성을 위장하는 것"이라 하였다. 단말기 정체성을 가지는 주체는 현실의 공간과 사이버스페이스 사이를 이동하며 체현되고, 시뮬레이션되고, 수정되고, 개조되고, 확장되면서 인간의 주체성을 점점 더 비고정적으로 변형시킨다. 즉, 미디어 환경 내 포스트휴먼의 주체성은 더 이상 자연적인 신체, 변화할 수 없고 매개될 수 없는 신체가 아닌 변형 가능한 비고정적 신체와 자아를 통해 재구성되는 것이다.
미디어 아티스트이자 영화감독 안가영 작가의 작품 〈KIN거운 생활: 온라인(KIN: Online)〉(2020-2021)을 통해 사이버스페이스의 가상신체와 다중 정체성에 대해 조금 더 이야기해 볼 수 있다. 〈KIN거운 생활: 온라인〉은 안가영이 김태연 작가, 김수희 공간 연출가와 함께 진행한 VR 워크숍과 게임문화 연구를 기반으로 제작한 작업으로, 이동의 자유가 사라진 사람들이 온라인으로 모이면서 메타버스 플랫폼인 '브이알챗(VRChat)'에 터전을 잡은 것으로 배경을 설정하여 총 세 명의 예술가 '혜지', '민지', '지혜'와 그들의 캐릭터가 겪은 경험을 들려주는 머시니마(machinima)** 작품이다.
** 머시니마(machinima): 기계를 의미하는 머신(machine)과 영화를 의미하는 시네마(cinema)의 합성어로, 기존의 게임이 제공하는 엔진을 이용해 만든 애니메이션 영화를 의미한다 (위키백과 참조.).
세 사람 모두 각자의 사연으로 도망치듯 떠나오거나, 돌아갈 곳이 없어 오게 되거나, 있던 곳으로부터 쫓겨나면서 킨 쉘터(KIN Shelter)라는 공간으로 오게 된다. 작품에서 킨 쉘터는 소외된 자들, 언제든 다른 존재들로 대체될 수 있고 버려질 수 있는 존재들, 돌아갈 곳 없고 환영받지 못하는 자들을 위한 피난처이자 임시 거주지이다.
브이알챗 플랫폼 안에서는 기본적으로 선택할 수 있도록 주어지는 아바타들을 비롯해 특정한 월드맵에서 제공하는 공용 아바타를 사용하거나, 혹은 직접 모델의 데이터를 구해 아바타에 씌우며 새롭게 커스터마이징 하는 방식으로 등록하고 착용할 수도 있다. 공용 아바타를 포함해 개인 아바타는 브이알챗 안에서 많게는 100개까지도 업로드 가능했다. 가상 자아를 드러내는 아바타는 우리의 단말기 정체성의 일부를 이루는데, 종류가 다양하고 자유롭게 탈착이 가능한 가상 자아는 일종의 유니폼과 페르소나로 기능한다. 공용의 아바타의 경우 '나'와 같은 모습을 한 여러 개체를 플랫폼 내 어디에서든지 볼 수 있기 때문에 사용자에 대한 그 어떤 정보도 알 수 없다. 공용 아바타는 실제 사용자의 다중 정체성 페르소나들 중에서 한 단계 더 입혀진 페르소나인 것이다.
〈KIN거운 생활: 온라인〉은 세 사람이 자신의 경험을 차례대로 들려주면서 스토리텔링이 시작된다. 혜지는 브이알챗 안에서 모든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받는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만들고 싶어 오랜 시간을 쏟아 단 하나뿐인 아바타를 완성한다. 그리고 같은 공간에 접속해 있는 다른 플레이어들에게 자랑스레 보여준다. 그러나 공유설정 기능을 꺼두는 것을 잊어버린 탓에 보여주는 순간 모두가 자신의 아바타를 복제해 버린다.
'가상 자아'로서 만들어진 혜지의 정체성은 타인들에게 하나의 밈(meme)으로 쉽게 사용되고 쉽게 버려지는 옷으로 전락하고, 정작 혜지 자신의 캐릭터는 산산조각 난 채 가상을 떠돌게 된다. 모든 것이 복제되고 변질되기 쉬운 디지털 가상 환경 내에서 정체성은 휘발적이고 가볍고 비고정적인 것이다. 이것이 단말기 정체성의 특징이다.
모든 사람들이 가상 환경으로 이주함에 따라 예술의 영토 역시 가상의 사이버스페이스로 이동하였다. 민지의 이야기는 이러한 상황에서 예술가의 고군분투를 보여준다. 그녀는 미디어 아티스트로서 작가 생활을 이어가고 뒤처지지 않기 위해 브이알챗 계정을 만든다. 다른 젊은 작가들과 함께 이용하지만, 그들이 사이버스페이스에 쉽게 적응하고 전유하는 데 반해 민지는 단순한 조작조차 힘겨워하며 조금씩 소외되기 시작한다. 목각인형과도 같은 민지의 기본 아바타는 디지털 리터러시(digital literacy)를 따라가지 못하는 부적응자의 모습을 보여준다.
지혜는 브이알챗을 돌아다니다가 자신이 예전에 즐겨했던 게임에 등장하는 '미야'라는 여성 캐릭터의 외형을 한 사용자를 우연히 만난다. 지금은 사라진 게임에 향수를 간직하고 있던 지혜는 사용자로부터 그 게임 캐릭터 미야의 스킨을 공유받고 자신의 아바타로 등록한다. 그런데 미야의 모습으로 한국인들이 모인 공간에 들어갔다가 다수의 사람들로부터 성희롱을 당하는데, 이는 과거 미야 캐릭터가 공공연히 소스 복제되어 불건전한 사이트에서 성적 착취의 대상으로 쓰이고 있었던 것이 이유였다.
이러한 내러티브 구조를 통해 안가영은 가상신체로 미디어 공간에 확장된 인간이 마주칠 수밖에 없는 가상 자아의 인권, 특히 여성 캐릭터의 성적 대상화의 문제를 이끌어왔다. 실제 사용자의 모습을 볼 수 수없는 채로 부유하는 사람들은 스크린이라는 벽을 이용해 더 과감해지고 적나라해지기 때문이다.
이런 시선의 감옥에서 지혜는 미야 캐릭터에게 새로운 삶을 주고자 온갖 무기가 장착된 사이보그의 모습으로 신체 개조를 감행하지만, 트롤러(troller)로 취급받으며 신고를 받고 비활성 상태가 되어버린다. 이렇게 소외된 세 사람은 킨 쉘터를 자신들이 추방되어 도망치듯 오게 된 피난처로 여김과 동시에 안락하고 원하는 삶을 주체적으로 살 수 있는 안식처로 삼는다. 그리고 브이알챗의 가상 캐릭터의 안식을 위해, 그리고 이 플랫폼을 이용하게 될 예술가들을 위해 가상 세계의 튜토리얼을 선언하는 등 미디어 환경에서 타자가 되어가는 사람들을 위한 연대의 불씨를 마련한다.
미디어 환경을 부유하는 포스트휴먼 주체는 비고정적이고 불확정적으로 자아를 교체하거나 자아에 이입하는 방식으로 주체성을 구성한다. 이것이 가능한 이유에 대해 제이 데이비드 볼터(Jay David Bolter, 1951- )와 리처드 그루신(Richard Grusin, 1953- )은 우리의 상황을 바꾸지 않고 공간을 회전하여 시야를 이동시키고 방향도 전환시킬 수 있다는 디지털 매체가 가진 특징 때문이라고 말한다. 문화적 의미에서 이러한 유연한 방향 전환 가능성은 유동적인 관점을 가지게 하며, 따라서 다중적·다층적으로 자아 개념을 확립하도록 한다. 즉, 미디어 환경 속의 포스트휴먼은 주어진 환경 안에서 취할 수 있는 모든 관점들을 교차하는 네트워크에서 주체성을 구성한다고 할 수 있다.
본 글은 기술 매체와 인간의 관계를 "매체를 통한 인간 감각의 확장", "인간의 기술적 구성"으로 보는 관점을 바탕으로, 가상신체를 통해 미디어 환경에 적응하며 살아가는 동시대의 양상을 포스트휴머니즘의 맥락에서 고착했다. 사이버스페이스로 확장된 포스트휴먼은 실재하는 몸을 대신할 가상신체를 이용하여 '나'와 얽힘으로써 신체화 및 체현을 통해 구현된다. 이러한 포스트휴먼의 주체성은 다중·단말기 정체성으로 설명된다. 아바타로 가상적 자아를 만들어내는 개개인은 자신의 정체성을 다중으로 분산시키고, 분산된 네트워크를 연결하는 하나의 단말기가 된다. 단말기 정체성을 가지는 주체는 주체성을 비고정적으로 변형시키며 시뮬레이션한다. 이는 다양한 관점을 교차시킬 수 있는 디지털 매체의 특성에 기인한 방식이라 할 수 있다.
안가영 작가의 작품은 미디어 환경을 살아가는 포스트휴먼이 맞닥뜨리는 두 가지 양상의 비인간(nonhuman, inhuman)들과의 조우를 보여준다. nonhuman으로서의 비인간은 가장 존재 그 자체이며, inhuman으로서의 비인간은 스크린을 사이에 두고 현실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잔혹하고 비인간적으로 욕망을 표출하는 불특정 다수의 개체들을 의미한다. 이들과의 상호작용과 그 미래는 그다지 긍정적인 것처럼 보이지 않는다. 우리는 예측 불가능한 비인간들과의 관계 가운데 우리의 자아와 정체성마저 변화하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점점 더 가상현실이 우리를 매개하는 정도가 높아질 앞으로의 미래에 우리 주체성이 구성되는 방식 또한 이보다 더 많은 변화를 맞이할 것이다.
* 참고문헌 (이탤릭체 표기는 볼드체 표기로 대신합니다.)
1. Balsamo, Anne, Technologies of the Gendered Body: Reading Cyborg Women, Durham & London: Duke University Press, 1996.
2. Bolter, Jay David & Richard Grusin, Remediation: Understanding New Media, Cambridge: MIT Press, 1999.
3. Bukatman, Scott, Terminal Identity: The Virtual Subject in Postmodern Science Fiction, Durham & UK: Duke University Press, 1993.
4. Pepperell, Robert, The Posthuman Condition: Consciousness beyond the brain, Bristol: Intellect, 2003.
5. Wilde, Poppy, "Avatar affectivity and affection," Transformations, 31 (2018), pp. 25-43.
6. 심혜련, 「매체, 몸 그리고 지각」, 『한국영상학회』 14 (2016), pp. 121-133.
7. 야니나 로, 『트랜스휴머니즘과 포스트휴머니즘』, 조창오 (역), 부산: 부산대학교출판문화원, 2021.
8. 이원봉, 「포스트휴머니즘은 휴머니즘이 될 수 있는가?: 포스트휴머니즘 논쟁을 통해 본 휴머니즘의 의미와 한계」, 『인간연구』 37 (2018), pp. 57-83.
9. 캐서린 헤일스, 『우리는 어떻게 포스트휴먼이 되었는가: 사이버네틱스와 문학, 정보 과학의 신체들』, 허진 (역), 파주: 플래닛, 2013.
10. 한스 모라벡, 『마음의 아이들』, 이인식·박우석 (역), 파주: 김영사, 2011.
11. KIN online - AnGaYoung (cargo.site) (안가영 작가 홈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