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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누 Jan 25. 2021

왜 편해질 만하면 이직하시나요?

저는 계속해서 저를 담금질합니다.

처음 대학을 졸업하고 나는 제1금융권이라고 부르는 은행에 다녔다.

신입사원 기준으로 국내 탑 연봉에 정년까지 보장됐다.

입사 2년 만에 본사로, 본사에서 6년 동안 인사(HR) 업무를 하면서 탄탄대로를 달렸다.

'억'이 넘는 연봉에, 정년보장, 성공보장, 기혼에 자녀 둘.

그 상황에 나는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나에 대해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은 "축하한다. 잘 될 거다."라고 말했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왜 편한 직장을 버리고 나왔는지? 어쩌려는 것인지"의아해했다.


다음으로 이직한 회사는 시리즈 E투자를 앞둔 스타트업이었다.

스타트업계에서는 유명했지만 대기업 직원들의 눈으로 볼 때, 이 회사는 그냥 '바람 앞에 등불'이었다.

사람들은 '역시 밖에 나가보니 지옥이지? 직장 구하기 힘들지?'라는 측은한 눈빛으로 봤다.

하지만 불과 1년 만에 이 '스타트업'은 나의 직전 '은행'보다 더 큰 가치의 회사가 되었고, 내 인생에서 '인사(HR)'라는 커리어로 사람들 앞에 당당히 설 수 있는 '등불'이 되어 주었다.

그 회사에서 HRBP와 CoE의 다양한 HR 분야에서 리더를 했고, 회사의 이름을 달고 HR 전문 잡지에 기고를 하거나 강의도 했다.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면서 쪼그라들었던 연봉은 다시 '억'을 넘어섰고, 회사와 상사에게 인정받으며 그럭저럭 성공이 보장되어 보였다.

그 상황에서 나는 다시 회사를 그만두고 나왔다.

역시나 나에 대해 별로 관심 없는 사람들은 "축하한다. 잘 될 거다"라고 말했다.

역시나 조금이라도 나에게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왜 편한 직장을 버리고 나왔는지?" 다시 의아해했다.


나는 최근 갓 시리즈 A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에 합류했다.

이 회사는 누가 봐도 '풍전등화'다.

또다시 사람들은 '역시 밖에 나가보니 지옥이지? 직장 구하기 힘들지?'라는 눈빛으로 본다.

하지만 나는 자신이 있다.

몇 년 뒤에 이 '스타트업'은 나를 더 큰 사람으로 만들어 주고, 내가 지난 10여 년 동안 힘들게 일궜지만 스스로 포기했던 것들보다 더 큰 결실을 맺을 것이라는 것을.


만약에 내가 첫 직장에 계속 다녔다면 나는 이제 겨우 '차장'이 되었으며, HR 담당자가 아니라 영업을 하고, 전략도 하면서 Specialty를 잃었을 것이다.

HR 분야에 있었더라도 전문성을 찾거나 발전하는 것이 아니라, 매일 하던 일만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직을 통해 나는 '리더'가 되어 '나'와 '팀'을 성장시키는 일을 해 봤고 '좋은 리더'로 성장했다.

강의를 하고, 글을 쓰고, 후배들에게 뒤지지 않기 위해 새로운 HR 트렌드에 대해 계속 공부하며 발전했다.


두 번째 회사를 계속 다녔다면 나는 아마도 몇 년을 더 '팀장'에 머물고, 회사에서 정한 목표(방향) 달성을 위해 '지원하는 HR'을 했을 것이다.

하지만 이직을 통해 나는 더 큰 조직을 관리하는 자리에 있게 되었으며, 회사의 방향을 결정하는 자리에 직접 참여하여 '선제적인 HR의 역할'을 하기 위해 공부하고 있다.

기존에 해보지 못한 조직문화 만들기나 HRD도 주도적으로 시도해보고 있다.


나는 스스로 무언가를 찾아서 하는 것을 참 못한다.

학교 다닐 때도 '자가학습'보다는 '학원'에 가까웠고,

외국어든, 전공이든, 봉사활동이든, 취업이든, 모두 스터디에 가입해서 벌금을 내고, 선배들에게 욕을 먹으면서 성장했다.

사주를 봐도 누구 밑에서 일할 사주라고 이야기 들었고,

공무원이나 군인, 은행원, 변호사와 같은 관(官)과 관련된 일이 잘 맞다고 했다.

나 또한 정해진 틀 안에서 감시 또는 관심(?)을 받으면서 일하는 것이 힘들거나 불편하지 않다.


우리의 인생은, 커리어는, 목표는, 리더십은, 업무 전문성은 언제든 정체되는 순간 도태라는 위협을 받을 수 있다.

그 위협을 마주하기 싫다면 그전에 움직여야 한다.

스스로가 계속 움직이면서 발전해야 한다.

내가 이런 위협으로부터 나를 단련시키는 방법은 '극한'의 상황으로 나 자신을 내 모는 것이다.


1,000도가 넘는 화덕에서 시뻘건 쇠뭉치를 꺼낸다.

벌겋게 달궈진 쇠뭉치를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질을 한다.

"땅! 땅! 땅! 땅!"

요리조리 뒤집어가며 연신 두들겨 댄다.

달궈진 쇠를 쳐대고 찬물에 식힌다.

다시 화덕에 넣었다가 뺀다.

다시 모루에 올려놓고 망치질을 한다.

이렇게 여러 차례 풀무질과 망치질, 담금질을 반복한다.

망치를 쥔 대장장이의 이마에는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힌다.

엿가락처럼 휘던 쇠는 어느새 쓰기 좋은 칼로 변신했다.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 자신을 화덕에 넣었다 뺀다.

그럴수록 나는 쓰기 좋은 칼로 변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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