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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카누 Aug 12. 2020

점점 나를 축내고 있는, 술

술이 나를 마시고 있는 중

원래 나는 술을 좋아하다.

어디 가서 빠지지 않을 주량은 가지고 있다.

어디 가서 실수하지 않을 자신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갑자기 술이 나를 축내고 있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멍청하게 이제야 알았냐?)

당연한 건데 못 느끼고 있었다고 하는 것이 맞는 말일 것이다.


며칠을 금주하고 맑은 정신으로(나는 맑다고 느꼈겠지만, 의사들의 생각은 전혀 다를 것 같지만...)

일을 하면 높은 집중력을 바탕으로 업무처리 속도가 빨라짐이 느껴진다.

(갑자기 갤럭시 S9에서 S20가 된 느낌)

내가 정한 우선순위에 따라 정확하고, 빠르게 업무를 처리하고,

퇴근 시점에는 '아...오늘 일 좀 했네.'라는 감정을 느낀다.


예전에 '팀으로 일하라'의 저자, 박태현님 강의를 들었다.

박태현님은 "나도 예전엔 술을 마시고, 윗사람들께 잘 보이려고 술자리에 많이 따라다녔다.

그땐 그렇게도 술을 많이 마시고 어떻게 그다음 날 일을 했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지금 생각해보니 그땐 일을 안 했던 것이었다.

술을 많이 마시고 일을 한다는 것은 공존 자체를 할 수 없는 일이다"라는 말을 했다.

헉...이 말이 훅! 들어왔다.

불과 1년 전 내가 이 얘기를 들었다면, '술이 약하신가 봐? 정신력으로 일하는 거지.

그렇게 술 먹고 일하는 게 멋진 남자지. 늙어서 그래. 난 아직 젊잖아.'라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아니란 걸 이제야 깨달았다.

술이 나를 조금씩 좀 먹고 있다는 생각이 확! 들었다.

내 기억력을, 자제력을, 결심을 약하게 만들고, (화도 많아지고...)

내 욕망과 욕구, 짜증과 날카로운 성격을 강하게 만들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좀(silverfish)이라는 녀석은 집안 곳곳에 숨어있다가 무명옷을 야금야금 조금씩 갉아먹는다.

워낙 천천히, 조금씩 갉아먹다 보니, 구멍이 날 때까지 알 수도 없다.

하지만 어느새 구멍을 뻥 뚫어 버린다.

그런데 우린 구멍 난 옷을 기워입나?

기워 입으면 예전처럼 멋진 스타일이 나나?

요즘은 그냥 버리겠지. 새로 사겠지.


몸속에 조직을 'tissue'라고 부른다.

내 몸의 tissue가 술에 의해 좀 먹듯이 갉아 먹히고 있다.

갑 티슈에 물방울 한 방울이 구멍을 내는 것처럼.

술이 내 티슈에 구멍을 내고 있다.

좀 먹은 옷처럼 구멍 난 내 몸은 기워 쓰기도 쉽지 않고, 멋진 스타일도 잃었다.

심지어 새로 사기는 더 어렵다.


우리는 좀이 내 옷을 갉아먹지 않게 하기 위해서 좀약을 사서 옷장에 넣는다.

돈 좀 있으면 스타일러를 사서 넣어두기도 한다.

옷이 더러워졌다 싶음 빨아서 청결을 유지하고 좀 먹지 않고 예방한다.

오랫동안 안 쓰면 비싼 돈 들여서 드라이클리닝도 해서 보관한다.


갑자기 이런 생각이 든다.

몇만 원, 몇 십만 원, 몇 백만 원짜리 옷도 이렇게 관리하는데...

나는 2억짜리 심장, 1억짜리 간, 5천만 원짜리 콩팥은 왜 그리 함부로 다루고 있는가?


누워서 잠시 그려봤다.

어제저녁 마신 알코올이 피와 함께 머릿속으로 들어간다.

알코올은 내가 모르게 아주 조금씩 Brain tissue를 갉아먹고 뇌를 돌아 나온다.

이렇게 내 머릿속은 점점 구멍이 날 지경을 향해 달려간다.


이 과정을 멈춰야 한다.

내가 60살에 몸이 망가져서 세상을  떠나는 문제가 아니라,

내 자식들이 커 갈 동안 해줄 수 있는 게 없는 아버지가 되는 것이 문제다.

회사에서 붙어 있고, 연봉을 올리고, 똑똑하게 오래오래 일하기 위해서,

술을 적게 마셔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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