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트를 나간다고 콧노래를 부르며 양말까지 장착했다.
엄마가 내 방에 머리를 빼꼼하며 묻는다.
'양말 짝짝이인 것 같은데?'
검정 양말을 신었는데 높이가 3mm가량 다른 짝짝이 양말이었다.
'에이, 누가 본다 그래.'
'너가 보잖아.'
엄마는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너가 보잖아.
충격이었다. 이 말이 마음을 멤돈다. 3주가 지났는데.
생각해보면 '너가 보잖아'는 엄마 삶을 관통하는, 아니 요약하는 말이었다.
간호사를 거쳐 우리를 낳고 쉬다가 사회복지사로 전향한 엄마는 늘 정직이 우선이셨다.
초등학생 때 엄마가 지하철에서 어려우신 분을 가리키며 1만원을 주시며 넣고 오라고 했다. 중학생 때 엄마가 구세군에게 1만원을 주시며 넣고 오라고 했다. 머리가 알량하게 큰 나는 말했다.
'엄마. 후원 횡령이 많다는 기사 봤어?
이 돈 넣는다고 그 사람들한테 다 전해지지도 않을텐데.'
'낸 것까지만 생각해.
후에 어떻게 쓰일지가 아니라, 낸다는 너의 행동에 집중.
아니 미노이마냥 엄마의 경쾌 심플 하지만 우문현답이라 할말 없어졌다.
결과가 아니라 너의 마음에 집중해.
내 자신이 본다는 것. 그것은 정말 강력하다.
엄마는 정말 단단하다.
내가 그럴 수 있을까. 생각하게 말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