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1 도전을 마친다는 것

도전을 마치는 건 그냥 도전을 마치는 거야.

by 만능다람쥐

이모티콘 작가로 도전한 지, 정확히 2년 7개월이 되었다.


남들이 그동안 뭐 했냐고 묻는다면 내가 말할 수 있는 것은 이모티콘 3개 출시한 것, 인스타그램 244명의 팔로워밖에 말할 게 없다. 인터넷에서 떠도는 억대 연봉의 이모티콘 작가를 나는 이뤄내지 못했다. 그렇다면 나는 재능 없고 실패한 작가일까. 허황된 꿈을 좇으며 현실을 보지 못하고 무모한 도전을 한 사람인 것일까.


사실 그동안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내가 이 도전을 한 것이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음을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눈에 보이는 성과밖에 없다고 생각했다. 인기 있는 캐릭터를 만들어내거나, 수많은 이모티콘을 출시하는 것. 그래서 적어도 직장인 월급 정도는 거뜬히 벌 수 있고, 어디 가서 당당하게 이모티콘 작가라고 말할 수 있는 것. 그 정도는 해야 이 길을 걷기로 한 것이 의미 있는 시간이 될 수 있는 거라고 생각했다. 이것들을 이루지 못하면 나는 그냥 시간을 허비한 것이고 남들이 나아갈 동안 삽질을 한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사실 오기로 버텼다. 2년 7개월이라는 시간을. 여기서 원래 내 자리로 돌아가면 너무 쪽팔린 거니까. 이모티콘 작가가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고, 이걸 해야 내가 행복하다고 큰소리쳤는데, 돈도 못 벌고 승인도 못 받은 내 모습이 너무 쪽팔리니까.


그런데 그 생각이 어제 바뀌었다. 도전을 마치는 것이 더 이상 쪽팔리지 않게 되었다.

어제 남자친구랑 자기 전에 통화가 그 계기가 되었다. 남자친구는 웹툰 작가로 10년을 일하다가, 애니메이션을 만들고 싶어서 작년부터 1년간 애니메이션을 만들었다. 유튜브 채널을 만들고, 12분짜리 영상을 5개월에 걸려서 만들어 업로드했다. 그렇게 1년동안 3개의 영상을 업로드했다. 그리고 올해 7월까지만 애니메이션을 하고 다시 웹툰으로 돌아가겠다고 말했다.


나는 이 도전의 끝을 슬프게 바라봤다. 하고 싶은 일을 현실이라는 벽에 가로막혀서 하지 못하게 된 것이니까. 그런데 남자친구는 이 끝을 슬프게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기뻐보였다. 남자친구는 애니메이션으로 본인이 어디까지 이뤄낼 수 있는지가 궁금했다고 했다. 그리고 할 수 있는 것들을 모두 하고, 이뤄낼 수 있는 것들을 보니 이제 이 도전을 마쳐도 후회하지 않을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나는 도전을 마치는 것은 실패라고 생각했다. 도전이 성공했다면, 그 도전을 마칠 일도 없는 거니까. 그래서 내가 이 도전을 마치지 않으려고 어떻게든 버티려고 한 것 같다. 근데 남자친구의 모습을 보면서 도전의 끝은 실패가 아니라 그냥 도전을 마친 것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내가 지금 이모티콘 작가로서의 도전을 마친다고 해도 아쉬움은 남겠지만, 나는 이 시간이 시간 낭비가 아니었다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다. 나는 그냥 내가 만든 이모티콘이 출시되는 경험을 하고 싶었다. 그리고 그걸 해냈다. 그림을 한 번도 배워본 적 없는 내가 그림으로 돈을 벌 수 있게 되었고, 어딘가에 소속되지 않고 단 1원이라도 벌어보는 경험을 했고, 이모티콘을 만들면서 수없이 많은 나를 발견하게 되었다. 정말 많이 울고 힘들었지만, 그만큼 행복할 수 있었다. 내가 이모티콘에 도전하지 않았다면 이 행복은 살면서 느끼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모티콘을 그만두는 거냐고? 아니, 그냥 이제 마음 편하게 도전을 할 수 있을 것 같다. 더 이상 성공에 얽매이지 않을 것 같다. 올해는 ‘이모티콘 작가로 어떻게 먹고 살 수 있을까?’를 주제로 많은 도전을 해보려고 한다. 그리고 안 되면 다시 내 자리로 돌아오는 거지. 다시 취업한다고 해도 슬프지 않게 기쁘게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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