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긍지: 한나의 중심

영화 ‘더 리더: 책 읽어주는 남자’를 보고 주인공 한나에 대하여

by 도제인

형량을 선고받는 날 아침,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잠시 바라보다가 이내 수건을 적셔 몸을 닦아내기 시작한다. 언뜻 성급해 보이는 움직임이지만, 손이 닿아야 할 곳을 정확히 짚어가며 닦아내는 동작의 짜임새가 제법 탄탄하다.

집과 직장과 마이클을 떠나기로 결심한 날, 집을 비우기 전 우유병을 씻어낸다. 병에 물이 반 조금 넘게 찼을 때 탁, 한 손으로 병 위를 막고 흔들기를 몇 회 반복하고 탁, 병을 뒤집어 물을 쏟아내고 탁 물기를 털고 병을 일으켜 세울 때까지, 서너 번의 탁 은 다음 진행사항의 안내만 슬쩍할 뿐 그 일련의 동작이 이어지는 흐름을 방해하지는 않는다.


심장을 내달리게 할 만한 상황 앞에서도 행동의 절도가 굽혀지지 않는, 한나는 그런 사람이다. 어떤 일을 할 때이든 불필요한 동작이라고는 숨 한 번 더 내쉬는 것조차 포함시키지 않는 그녀의 움직임들은 사유함과 말하기가 일상에서 차지하는 부분이 다소 협소한 여느 사람들에게서 엿보이는 단순함 혹은 우직함과는 거리가 있다.

사람마다 영리함의 타고난 용량이라는 게 있다면 그녀는 평균치보다 큰 용량을 가지고 태어나, 그 중 상당비율을 근육과 신경 쪽에 쏟으며 성장한 사람 같다. 그래서 한나가 육체의 일을 할 때(특히 자주 반복해 온 일)의 모습은 흔히 쓰는 '노련하다' 란 표현보단 '우수하다'가 보다 걸맞아 보인다.


30년을 넘게 무리 속에 섞여 살아온 사람이라면, 사회에서 활용될 수 있는 기능으로 사람들을 줄 세웠을 때 자신이 어디쯤 설 수 있는지에 대해 대강이라도 가늠하게 된다.

한나는 비교적 넘치는 편이라 볼 수 있는 자신의 역량을 인지하며 살아왔을 거고, 그건 스스로를 바라보는 자신에 대한 이미지에도 영향을 주었을 테다. 영화 곳곳에서 그녀는 가족과 교육이 부재한 성장배경을 가진 그 시대의 여성이 가지기에는 꽤 견고한 자기 확신적인 태도들을 보여준다. 아마도 지금껏 삶의 행보를 통해 축적된 자신의 기능성에 대한 자긍심이 그 태도들의 원동력이 아니었나 싶다.

그리고 그 때문에, 한나는 문맹이라는 자신의 요소를 하나의 문제로 받아들이기보다 들춰보기 힘겨운 오점으로 인식하는 듯하다. ‘똑똑하고’ ‘유능한’ 자기 이미지에 문맹이라는 핸디캡은 어울리지 않는다. 육체이든 정신이든 자신의 것을 내보이는 데에 망설임을 거의 섞지 않는 그녀가 그것만큼은 삶을 걸고서라도 숨기는 모습은 어찌 보면 의외이고 의아스럽다. 본래의 행동패턴에서 벗어나야 할 만큼, 한나가 자신과 문맹이라는 어색한 조합의 서걱거림을 견디지 못했으리라 짐작해 볼 수 있다.


과거 한나의 정서를 일깨워주던 마이클의 책 읽어주기는 몇십 년이 지나 다시 제 역할을 이어서 한다. 마이클의 녹음파일은 글 배우기를 위한 길잡이가 되어주기도 했지만, 정서적 지원체로서의 의미가 더 크지 않았나 싶다. 마이클의 의도와 상관없이 한나는 그 의미를 마음에 담았기에, 자신의 '오점''문제' 정도로 희석시킬 용기를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그렇게 시작된 한나의 글 배우기는 자신이 가까스로 허용한 제한된 통로를 통해서만 이루어진다. 기댈 수 있는 것에 기대기보다, 스스로 선택한 것에만 기대는 그녀의 모습에서 다시 한번 깊은 긍지감을 엿볼 수 있다.

또한 영리함을 부어 견고해진 그녀의 육체성은 이제 육체에서 벗어난 면을 성장시키는 데에 쓰이게 되는 듯하다. 한나가 글을 배워가는 장면들을 보다가, 앞서 군더더기 없이 확신에 찬 동작으로 몸을 닦고 병을 씻던 그녀의 모습이 떠올려지는 걸 보면 말이다.

문맹임을 비밀의 영역으로 내려 앉히는데 큰 역할을 한 한나의 긍지감과 육체성은, 이제 그것을 꺼내놓고 해방시키는 동력으로 작용하게 되는 것이다.


긴 시간 동안 서툰 편지를 보내고 그에 대한 적절한 답(그녀가 요구했던 책을 마이클이 녹음해서 다시 보내준 것)을 받는 과정을 반복한 후, 마이클을 다시 마주한 한나는 얼굴에 해사한 빛을 띄우며 그를 맞이한다.

그러나 마이클은 한나에 대한 사랑의 마음 옆에 원망과 혼란의 마음을 같이 두고 있었고, 굳은 표정과 날카로운 질문으로 그것을 드러낸다. 그리고 한나의 답에 마이클은 그녀와의 만남을 다소 성급하고 어색하게 마무리한다. 이후 마이클은 자신의 혼란을 어느 정도 정리했는지, 그녀가 살 집을 다듬고 그림을 걸고 마중 가기로 한 날에는 꽃을 준비하기도 하지만, 이미 한나는 마이클과의 전 대면 이후 자신의 삶을 정리할 결심을 하고 이를 실행에 옮긴다.


“죽은 사람은 죽은 사람이니까.”

“글을 배웠지.”

마이클의 질문에 대한 한나의 대답들은 견고한 육체성을 지닌 자의 문장답다. 그 말들에 대한 마이클의 반응은 한나에게 자신의 원천에 대한 부정으로 느껴지지 않았을까 짐작해 본다.

한나가 감옥에서 보낸 시간 동안 자신의 판단으로 희생된 사람들에 대해 사죄의 마음을 얼마만큼 가졌을지, 생존자의 딸에게 자신의 전 재산과 메시지를 남긴 것이 마이클과의 만남에서 급히 들어찬 깨달음 때문일지 아니면 이미 스며들고 있었던 뉘우침 때문일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분명한 건, 한나는 마이클의 질문에 그가 원하는 방식으로 답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마이클이 원하는 방식으로 죄의식을 풀어낼 수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이유는 삶을 거치면서 스스로에게 겨우 입힐 수 있었던 자기 긍지의 본질이었기에, 마이클의 반응에 대한 그녀의 낙담은 타당해 보인다.


[ The 긍지: 한나의 중심_ 도제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