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를 읽고
중고거래를 위해 보낼 물건을 상자에 넣고 그 위에 마스크팩 하나를 올렸다. 포장을 도와주던 친구가 얼마에 내놓았기에 서비스까지 챙겨주냐고 물었다. 가격을 들은 친구는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마스크팩을 도로 상자에서 꺼내려했다. 나는 마스크팩을 다시 넣고, 혹여 상자가 배송 중에 손상될까 염려하여 모서리까지 꼼꼼히 테이핑을 하고 포장을 마무리했다.
"흠.. 넌 명예가 중요한 사람이구나."
내놓은 물건의 가치보다 적은 돈을 얻고 이 정도까지 신경을 쏟는 걸 보면, 아마도 난 명예가 중요한 사람이 맞는가 보다.
명예- 하면 어떤 것이 머릿속에 그려지는가?
어떤 이들은 유명세를 지녔거나 선망받는 직업이나 위치를 획득한 사람들에게 있는 그 무언가를 떠올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의외로 명예는 타인들이 크게 의식하지 않을 만한, 가까운 사람들 외에는 누군가에게 별 영향력을 끼치지 않을 만한 비교적 평범한 사람들 역시 지니고 있다.
유명인의 명예와 일반인의 명예는 그 성격이 여러모로 다르겠지만, 일단 가장 큰 차이는 타인이 쥐어주었는 가 스스로 만들었는 가-이지 않을까 싶다. 유명인들의 명예에 대해서는 굳이 설명하지 않더라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머릿속으로 그리는 것이 일치할 것이니, 굳이 설명하지 않도록 하자.
일반인들의 명예는 스스로에게 부여한 어떠한 이미지에 따라 그들의 태도나 자주 하는 말습관으로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사람들은 어쩌다 맡게 된 역할들과 살다가 마주친 경험들을 통해, 탐이 나거나 동경하거나 자신에게 어울린다고 생각하는 조각들을 모으게 된다. 그리고 그 재료들로 일종의 사회적 옷을 지어 스스로에게 입힌다.
그렇게 자신이 입게 된 옷이 찢기거나 오염되지 않도록 노력하며 '나는 어떠한 사람이다.'라는 설정을 지켜내는 것, 그것이 바로 명예이지 않나 싶다.
소설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의 등장인물들 역시 저마다의 명예를 지닌 듯하다.
그리스인 닉의 금시계나 변호사 카츠의 100달러 내기와 같은 단서들은 그들이 지키고자 하는 게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하게끔 한다. 그들이 스스로에게 입힌 명예는 다소 우스운 인상을 줄 수는 있지만 단순하고 명확히 보이는 종류의 것이다.
그런데 소설의 주인공인 프랭크와 코라가 지닌 것이 무엇인지는 잘 보이지 않는다. 그들에게 명예 따위는 없다는 인상을 받기도 한다.
프랭크는 무일푼 떠돌이다. 떠돌다 우연히 들어간 식당에서 그는 여유를 부린다. 작은 사기를 부려 음식을 얻어먹으려 한 입장이었음에도, 주인이 제안한 일자리에 감지덕지하기는커녕 수락하는 과정에 허세를 섞는다. 자신을 거두어 주는 이의 아내를 보는 시선도 불순하다.
그가 어떠한 성장배경을 가졌고 왜 무일푼 떠돌이가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그는 '방랑'이라는 삶의 방식을 취하고 그에 걸맞은 태도를 갖추고 있다. 어쩌면 그것은 많은 삶의 이유로 인해 그가 스스로 입히기로 결정한 명예이자 나름의 품위 지키기였을 테다.
코라는 예뻤다. 자신의 외적 장점을 활용해 무언가 되고자 했으나 역량이 충분치 못했다. 그다음에는 금시계를 찬 남자의 아내가 되었다. 그의 식당에서 그녀는 적당히 눌어붙어있지 않고 최선을 다해 맛있는 요리를 한다.
이후 '지독한 고양이로서의 일'을 도모하는 명분으로, 남편 사업 안에서 자신의 비중과 프랭크의 몫을 강조한다. 무엇보다 가장 주요 명분은 '사랑'이었다. 재판의 과정에서 그 명분이 흔들렸을 때 그녀는 모든 것을 털어놓아 버린다. 결국 그 실토까지 활용되어 무사히 풀려나오게 되었을 때, 되려 그녀는 절망한다.
그렇지만 지옥 같은 혼란을 겪는 와중에도, 다시- 무언가가 되려고 노력한다. 뜻대로 되지 않는 삶의 여정 중에 자신 앞에 놓이는 재료들을 선택하지는 못할지언정, 그걸로 무엇을 이룰 것인지를 끊임없이 스스로 결정해 나간다. 그게 무엇이든, 그녀는 자신이 '될 수 있는 것'이라도 되려 한다.
프랭크와 코라가 겨우 추구하게 된 명예는 그나마도 잘 유지되지 못하고 자꾸만 삐걱거린다. 프랭크는 떠돌아야 하나 머물게 되고, 코라는 될 수 있는 무언가가 계속 바뀌는 상황에 놓인다.
프랭크가 방랑을 통해 선택한 '무(無)'는 코라와 사랑에 빠지며 흔들리고, 둘이 도망을 시도하며 다시 이어질 뻔 했으나, 코라가 돌아섬으로써 결국 좌절된다. 그는 방랑하며 싸움을 하기도 하고 무전취식을 하기도 하고 타인의 주머니를 털기도 했었으나, 살인을 저지르고 그 대상이 소유한 것을 취하는 사람은 아니었다. 그러나 머무름으로써, 그렇게 한다. 방랑자로서의 명예는 실추되고 만다.
코라는 선택한 것에 후회를 느낄 때마다 능동적으로 자신을 옮긴다. 옮긴 자리에서 주어진 것에 의미를 불어넣고 그것으로 자신을 일으키고 지탱하려 한다. 프랭크와 달리 코라에게 남편을 살해하는 것은 자신이 추구하고자 했던 것을 저버리는 게 아닌, 꾸준히 지킬 명예가 있는 사람이 되기 위한 과정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그녀가 지키려 했던 것들은 원치 않는 변수들로 번번이 손상된다.
내어주는 물건의 가치보다 적은 돈을 취함으로써 얻어지는 명예도, 값비싼 시계와 옷으로 매력을 덧씌움으로써 얻어지는 명예도, 이기고자 하는 이에게 승리를 갈취함으로써 얻어지는 명예도, 최소한 어느 정도의 사회적 경제적 기반이 확보되어야만 그 선명도를 유지하기에 용이하다. 명예를 얻기 위한 값을 치를 무언가가 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최소한의 안전망도 없이 삶의 곡괭이질을 힘껏 해보았지만, 어리석은 이도- 비열한 이도- 지닐 수 있었던 보잘것없는 명예조차 끝내 얻지 못한 채 아스라져버린 두 주인공이, 퍽 애잔하다.
[조금은 씁쓸한 명예에 대하여_ 도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