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워 오브 도그: 에필로그(하)

소설 '파워 오브 도그'에 상상을 덧붙여 이후의 이야기를 그려보았다.

by 도제인


로즈가 다시 알코올중독에 빠졌을 때 피터는 생각했다. 엉망인 걸음걸이와 취기로 물든 양 볼을 감수하더라도 남자로 하여금 함께하고픈 마음을 꺼트리지 않을 정도의 매력을, 로즈는 앞으로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지금의 로즈는 해사한 빛이 얼굴에 깃들어있던 예전의 그녀에 비해 덜 매력적으로 보일 테고, 앞으로 점점 더 그렇게 될 것이다.

그러나 로즈의 아름다움은 보기 드문 수준 이었으므로, 모두가 혹하는 하나의 조건-'' 만 갖추게 된다면 그 빛이 더 바랜다 해도 '적당한 이'의 이상적인 여인으로서 부족함을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렇게만 된다면 더 안정적으로 내가 그려왔던 청사진을 박제하기에 용이하리라.

아직 조니가 살아있을 때 피터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그리고 있는 가족그림에 사랑하는 나의 아버지는 끼워 맞춰지기 어렵다는 것. 자신이 성공하여 아버지가 하지 못했던 부와 명성을 집안에 가져오게 된다면 '나의 고든 가족'을 이뤄낼 수 있을 거라고 스스로 세뇌하였지만, 돈이 부족하면 공부도 지속하기 힘든 악순환에 좌절한 피터는 끝내 아버지가 미워졌다. 그리고 그 미움을 품은 스스로에 대한 죄책감 역시 함께 커져갔다.

피터가 그렸던 청사진의 완성은 조니의 죽음으로 실현되기 시작했다. 피터에게 그의 죽음은 위대한 희생이었다. 나의 꿈은 그토록 사랑했던 아버지가 죽음으로 지켜낸 것이나 진배없기에, 이후 누군가의 희생을 망설이거나 그에 안타까워하는 것은, 아버지의 희생에 대한 모독이라고 피터는 생각했다. 필의 죽음을 고안했을 때에도 피터는 그렇게 생각하며 멈칫하는 마음을 다잡았다.


조지가 자동차 사고로 세상을 떠났을 때 로즈는 진심으로 슬퍼했다. 조지는 그녀를 실질적으로 돌봐주고 아껴주었었다. 그는 한 사람의 실체를 정확히 들여다보고 존중할만한 재능이 부족한 사람이긴 했으나, 상냥한 마음을 지닌 이였다는 걸 로즈는 잘 알고 있었다.

하나 남은 자식을 마저 잃은 노부부의 슬픔은 컸고, 피터는 장례식 직후 휴학을 하고 그들이 사는 호텔에 석 달을 묵으며 곁을 지켰다. 피터가 조지의 죽음에 자신들 못지않은 슬픔을 느끼며 진정한 위로를 전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는 인상을 받은 노부부는, 조지의 사후 정리를 할 때 버뱅크 목장이 로즈에게 상속되는 것에 대해 자신들의 권리를 최소한만 확보하는 조건으로 찬성했다.

로즈가 법적으로 버뱅크 목장의 주인임이 확정된 얼마 후, 그녀는 피터가 지냈던 방을 들여다보다가 평소 그가 관심을 두지 않던 분야의 책을 발견했다. 자동차 정비에 관한 책. 로즈는 그것을 물끄러미 내려다보다가 있던 자리에 두고 돌아섰다. 펼쳐볼 용기가 나질 않았다. 그녀는 필이 죽고 얼마 되지 않았을 때에도 피터의 방에 들어갔다가 의학서 한 권을 실수로 건드렸고, 그 책은 주인이 가장 많이 펼쳐본 페이지가 벌어진 채로 바닥에 떨어졌다. 그래서 로즈는 필이 어떻게 탄저균에 감염되었는지를 짐작할 수 있게 되었다.


조지가 죽은 후 사실 로즈는 평안을 얻어가고 있었다. 간혹 조지를 떠올리며 가슴 깊이 찔려오는 날카로운 슬픔에 몸서리치기도 하였으나, 어느새 로즈는 술을 끊고, 다시 원하는 식물을 심고, 편안할 때에만 피아노를 쳤다.

불편한 소문으로부터 몸을 감추기 위해 목장에 틀어박힌 후로는 옷 쇼핑도 그만두게 되었다. 로즈는 사용인들과 함께 쿠키를 굽기도 하고, 직접 잡초제거 작업을 하기도 했기에, 우아한 차림으로 아침을 시작했다가도 오후가 되면 사용인들과 별반 다르지 않은 차림을 하게 되었다. 그러다 점점 편한 옷만을 취하게 되었다. 마치 살아있을 적 필의 모습처럼. 목장 일꾼들은 처음에는 로즈를 어색해하였으나, 점차 그녀를 따르기 시작했다. 필이 살아있던 시절에도 일꾼들에게 로즈는 '좋은 여자'로 여겨졌었기에 그들의 충성심을 사는 것에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는 않았다.

그렇게 일상이 안정되어 가고 마음에 평안함이 스며들다가 아들의 비밀을 재확인하게 되었을 때, 로즈는 묻어놓았던 혼란함에 사로잡혔지만 이내 생각하기를 멈추었다. 그 비밀을 어떻게 다뤄야 할지 모르기도 했고, 그 일련의 결과가 이어지고 이어져 결국 현재의 평안을 주었기에.


'칼에 맞아 죽지 않게 이 목숨을 건져 주시고 저의 하나뿐인 소중한 것을,

개의 아가리에서 빼내 주소서.'


로즈는 아들의 비밀을 처음 짐작하게 되었던 날, 그 비밀을 암시한 의학서 옆에 놓여있던 종이에 적힌 성경구절을 떠올리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월랜드와의 결혼 계획은 로즈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구체화되고 있었다. 로즈는 월랜드를 손님 이상으로 대한 적이 없었으나, 그 둘에 대한 소문은 천파만파로 퍼져나갔다. 월랜드는 로즈를 마주칠 때마다 갈망의 눈빛을 감추지 않았고, 그것을 목격한 일꾼들이 부지런히 목장 밖으로 새로운 소문의 원천을 날려 보냈다. 그리고 그 소문에 대한 진위여부가 궁금하여 인사를 건네는 이들에게, 월랜드와 피터는 모호한 말과 긍정의 표정으로 답을 했다.

피터는 노부부를 찾아가 1년을 홀로 지낸 여인의 처량함과 대목장의 주인으로서의 버거움에 대해 토로했고, 월랜드는 예비신부의 옛 성씨를 존중하겠다는 선언으로 버뱅크와 연관 있는 모든 자들의 마음을 샀다. 버뱅크들의 입장에서는 이미 집안의 일원이 된 여인의 연애추문보다는 집안에서 인정하는 결혼이 훨씬 나았다.

그렇게 로즈의 세 번째 결혼은 그녀 주변을 둘러싼 실체 없는 것들이 만들어낸 힘에 의해 실제가 되어가고 있었고, 그 중심에는 피터가 있었다. 이미 사실로 여기고 있는 이들에게 거부의사를 강력하게 내보일 만큼의 의연함이 로즈에게는 없었다. 파혼 아닌 파혼으로 인해 새로 생성될 소문에 대한 짐작 역시 로즈를 무력하게 만들었다. 무엇보다 피터를 생각하면 머릿속이 새까매졌다. 로즈는 피터를 불렀다.


-피터, 나는 월랜드와의 결혼을 원하지 않아. 네가 내 의사를 밝혀주면 좋겠어.

-어머니, 월랜드는 우리에게 적합한 사람이에요. 그는 우리에게 좋은 가족이 되어줄 거예요.

-피터, 나는 그가 나에게 어떠한 것도 주기를 원하지 않아.

-어머니, 그동안 힘들었다는 거 잘 알아요. 하지만 이번엔 다를 거예요. 월랜드는 우리에게 위협이나 문제를 안겨주지 않을 거예요. 만약 그렇다 해도 이제 제가 해결할 수 있어요. 이제 우리에겐 그 정도 힘이 있어요.


결혼식을 보름 앞두고 로즈는 필이 묻힌 곳을 찾았다. 그녀는 자신이 원하는 차림으로 원하는 것들을 하기 시작하면서 종종 그를 떠올렸었다. 필이 자신을 보며 내비치던 경멸. 그 경멸이 자신이 지닌 어떤 것을 향한 것이었는지를 로즈는 이제 이해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자신이 그에게 느꼈던 두려움의 실체. 제멋대로인 차림으로 무례한 언행을 일삼던 그에게 왜 맞서지 못했는지, 왜 그 경멸을 스스로도 허용했었는지, 그녀는 자신이 오랫동안 잃었었던 것을 되찾는 시간을 잠시 누리면서 그 이유를 깨달았다. 그리고 자신의 내면에서 서서히 조각난 '그 무엇'의 파편들을 간신히 주워 완성했던, 그 꽃이 없는 꽃꽂이에 필이 '경의'를 표했을 때를 떠올렸다.

'그는 나의 적이었으나, 나를 구원할 단서를 건네고 있었구나.'

로즈는 필의 무덤 앞에서 울었다. 그녀의 입에서는 조니와 조지의 이름도 이어 나왔으나, 용서를 빌어야 할지 원망을 해야 할지 몰랐기에 그저 이름만 토해내었다. 마지막으로 피터의 이름을 불렀다. 어찌할 수 없이 피터는 로즈의 자식이었다. 로즈는 스스로를 구원할 힘은 부족할지언정, 아들의 죄를 책임질 힘 정도는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로즈가 피터의 눈앞에서 자신의 목을 찌른 건 그녀가 필의 무덤에 다녀온 지 나흘이 지난 후였다. 집안의 사용인들은 그 둘 사이에 어떤 대화가 오갔는지는 전혀 알지 못했으나, 의식을 잃은 자신의 어머니를 부여잡고 피터가 울부짖으며 반복했던 말은 기억하고 있었다.

용서 못해. 절대로 용서 못해.




나는 너를 보고 있다.

-로즈, 다행히 칼이 급소를 피해서 조치를 바로 취할 수 있었어요.

입을 열었으나 목소리가 나오질 않는다. 소리 없는 말들이 입가에 고일 새도 없이 증발해 버린다.

-로즈, 생명에는 지장이 없지만 성대를 크게 다쳤어요. 회복 불가능할 정도로요. 그러니 아무 말도, 아무 말도 하지 말아요.

피터는 나를 보며 희미하게 웃는다.

-로즈, 흉을 옅게 하는 수술은 몸이 회복되고 나서 하기로 해요. 제가 유명한 의사를 알아요. 다행이죠. 정말 다행이에요.

희망과 안도의 빛이 피터의 얼굴에 퍼져있다. 나는 절망을 숨기지 않으며 예쁘지 않도록 한껏 얼굴을 일그러트린다.


주여, 그저 저를,

개의 아가리에서 구하옵소서





[ 파워오브도그: 에필로그(하)_ 도제인 ]


매거진의 이전글파워 오브 도그: 에필로그 (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