뻔한 이야기

by 도정

나는 이전에 이야기한 적이 많지만,

음악을 꽤나 열심히 배우고 연습만 20년을 가까이하다가 포기한 사람이다.

나의 슬픈 사연으로 뻗대려는 것은 아니다.

살아가면서 무엇인가 포기한 사연은 그리 대단한 사연은 아니기 때문에.

문제는 30대가 된 지금 내 인생이 이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는 것,

그래서 내 삶이 어디로 갈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사람이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힘든 일을 몇 번이나 겪을까?

이제는 웃으면서 술안주로 얘기할 수 있는 것들이

당시에는 얼마나 무너지는 일들이었을지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뻔한 문장이, 너무 당연한 말들이 다시 짚지 않으면 기억이 안 날 때가 있다.



나의 고등학교 3학년 1분기는 조금 특별했다.

친구들은 입시곡 연주를 위해 피아노 건반을 넘나들고 있을 때

우리 엄마와 아빠는 사선을 넘나들고 있었다.

정말 신기한 건 우리 부모님은 이혼을 했는데

어떻게 아들이 제일 중요한 시기에 둘 다 죽을 수도 있다는 말을 들을 수 있는가?

그들이 원망스럽다는 말이 아니다. 그저 살아있는 것에 감사할 뿐이다.

대학교가 문제가 아니라, 나의 부모가 죽을 수도 있다는 두려움이 문제였던 것이다.

시간이 한참 지난 지금은 웃으갯소리로 아빠와 유산에 대해 이야기하곤 하는데,

당시의 어렸던 나는 받아들일 수가 없어서 자는 시간 빼고는 하루 종일 게임만 했었다.


그렇게 부모님이 사선에서 살아 돌아오고 입시기간이 끝났을 때

재정적으로 힘든데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음악 한다는 이유로 홍대 앞에 작은 연습실에서 살았었는데

이상하게 아르바이트 자리를 알아보면 항상 면접까지 갔다가 떨어졌다.

나중에 알게 된 건 홍대는 남자 아르바이트생을 뽑는 기준이 다르다는 것이다.

설거지같이 주방에만 있는 일이 아니면 남자는 잘생겼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잘생기지 않았다. 그래서 일을 6개월을 못한 적이 있다.


그렇게 일을 못하던 내게 유일한 일자리는 피시방 야간 아르바이트였다.

남자만 할 수 있었고, 외모와 크게 상관없으니..

야간 업무는 크게 두 가지밖에 없다.

22시가 되면 전 좌석을 돌면서 신분증 검사를 해 미성년자들을 내보내고,

새벽이 되면 전 좌석을 청소하는 것.

그날도 아침에 퇴근해서 다음 날 야간 출근을 위해 잠을 자고 일어났을 때였다.

전화기가 터질 것처럼 울리고 있었다.

내용은 내가 어제 신분증 검사를 안 해서 미성년자가 22시가 넘었는데 자리에 앉아있었다는 것.

근데 하필 누군가가 미성년자인걸 알고 신고해서 새벽에 경찰이 그를 인계해서 데려갔다는 내용.

일어나자마자 식은땀이 줄줄 흘렀다.

머리가 지근거린다는 느낌을 처음 받은 순간이었다.

손이 벌벌 떨리고 내가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인터넷 검색뿐이었다.

'청소년 보호법 처분.'

그도 그럴 것이 미성년자가 22시가 지나도 자리에 앉아있으면

매장은 최악의 경우 영업정지를 당한다.

그렇다면 나를 고용한 사장님이 나를 고소해도 할 말이 없다는 것이다.

하지만 CCTV를 통해 그 미성년자는 내 눈을 피해 도망 다녔던 게 증거가 됐고

보호관찰 중인 상태였다는 게 참작이 되어서 아무 일도 없었다.



훨씬 힘든 일도 있었지만, 제일 최근에 두려웠던 일은 이 정도가 있다.

사실 그리 큰 일도 아니었고, 지나고 보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일이다.

남들은 대학교 입시를 준비할 때 부모를 떠나보낼 준비를 했던 것도,

소송 위기에 처해서 바들바들 떨었던 때도,

당시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어서

그저 슬퍼하고 아파하기만 했던 때는, 이미 지나고 보니 아주 맛있는 술안주다.

뻔한 이야기를 할 것이다. 정말 뻔한 이야기고 너무 닳고 닳은 문장이다.


"시간이 해결해 줄 거야."


이미 수백 번은 들었을 이 한 문장은 다시 짚지 않으면 도무지 익숙해지지가 않는다.

내가 아무리 힘들어서 주저앉아있어도 시간은 흐르고 있다.

오늘 출근해서 어떤 힘든 일이 있었더라도 결국 퇴근시간은 오는 것처럼.

무엇인가를 포기하고, 떠나보낼 준비를 하거나

말도 안 되는 사건의 중심에 내가 있다고 해도 결국 시간은 흐르고

원래의 나로 데려다줄 것이다.


너무 힘들어 손 쓸 수가 없는 시기가 다시 찾아온다면,

결국엔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사실만 생각하고 살아가려고 한다.

혼자 밥을 먹고, 혼자 울음을 삼키며 살아가는 시간이 영원하지는 않을 것이다.

결국 시간은 우리를 더 나은 곳으로 데려다줄 것이다.

내가 나의 남은 시간을 포기하지만 않는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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