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다가올 30대가 너무 기대돼."
연말을 맞이해서 다들 들떠있는 술집에서 그녀가 기대에 차서 말했다.
얼굴의 반은 될 것 같은 안경, 어깨 조금 아래로 내려오는 보기 좋게 말린 머리, 피곤해 보이지만 전혀 생기가 사라지지 않는 얼굴.
그 앞에 앉아있는 푸석푸석한 피부, 잘라야 할 때가 지나서 지저분한 머리에 표정 없는 얼굴로 앉아있던 그는 생각했다.
'그래 너는 이런 사람이었지. 어쩌면.. 나는 너의 이런 모습이 사랑스러워서 지금까지 계속 사랑하나 보다.'
...
나는 어려서부터 남들 눈치를 많이 보면서 자랐다.
중학교 1학년, 우리 부모가 서로 죽일 듯이 싸우고 집을 나간 날.
이미 어느 정도 자란 나는 누구 곁에서 살아야 할지 곧 정해야 한다는 것을 직감했는지도 모르겠다.
엄마와 아빠 둘 다에게 잘했으며, 혹여나 엄마가 숨죽여 울 때는 자리를 비키곤 했다.
할머니를 만나면 아무렇지도 않은 착한 아이를 연기해야 했고, 엄마한테는 든든한 아들을 연기했어야 했다.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었어야 했다.
그녀도 나와 별반 다르지 않은 어린 시절이었다. 나보다는 그녀가 더 힘들었을 것이다.
나는 나만 건사하면 되지만 그녀는 밑에 동생이 둘이나 더 있었기에.
하지만 그녀는 나와 다른 선택을 했다. 성장 과정에서 자신의 주장을 오히려 더 명확하게 하고, 얻어낼 것이 있다면 가족과 싸워서 쟁취해 내는 인생을 살아왔다. 그러면서 동시에 밑에 동생들도 챙겼다.
그녀도 어른이 될 준비가 되지 않았는데, 어른이 되고 있었다.
둘의 연애는 정말 하나부터 열까지 맞는 것이 없었다.
가치관부터, 먹는 것, 심지어 잘 때의 온도까지 모든 게 다르지만 정말 너무 다른 것을 딱 하나 뽑아보자면
'남들의 시선과 생각에 본인의 원래 모습까지 바꿔버린 그'와
'남들의 시선과는 별개로 본인의 원래 모습을 굳힌 그녀'가 제일 다를 것이다.
어쩌다 유명한 가수의 콘서트장에 가게 되면 그는 항상 앉아서 박수를 쳤고, 그녀는 일어나서 춤추고 환호했다.
...
"너의 30대가 기대가 되는 이유가 어쩌면 너의 20대가 너무 빛났기 때문에 그게 후회되지 않는 것 같아."
잠깐의 생각을 끝내고 20대를 후회하고 있는 내가 말했다.
"응 맞아. 나는 정말 때로는 너무 힘들고 무너질 듯이 슬펐지만, 그랬기에 지금의 내가 있는 거잖아."
정론이다. 정말 빌어먹게 찬란한 말이다.
혹여나 누가 볼까 남들의 눈을 피해서 주차장 한편에서 소리 없이 울던 그와
늦은 저녁 번화가 길바닥에서 남들과 상관없이 엉엉 울며 자신의 감정을 쏟아낸 그녀는
후회와 기대에 대한 가치는 같았겠지만, 그 너머에 있는 '나'에 대한 가치는 너무나 달랐을 것이다.
그녀의 곁에 있으면 어쩌면 나도 누군가의 시선으로 만들어진 내가 아닌 '나'를 찾을 수 있을까
이 마음은 사랑의 감정도 맞겠지만 그보다는 빛나는 것에 다가가는 불나방의 마음일 것이라.
혹시나 눈치를 보느라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못한다면, 나는 40대가 될 때 똑같이 30대를 후회하겠지
너의 20대가 빛났던 이유는 열심히 노력하며 살았던 것도 분명 도움이 되었겠지만
나는 감정에 솔직한 네가 빛나 보인다.
흑백 세상에서 나 자신도 가지지 못한 색깔을 온몸에 형형색색 두르고 있는 네가 나는 부럽다.
우선 나는 너부터 질투하겠다. 이게 나의 감정이라면 널 사랑하는 동시에 질투하겠다.
당시에는 너무 힘들었지만 쏟아내는 감정들이 자양분이 돼서 나무가 된다면
나도 이것부터 시작해야겠지 결국 우리는 숲이 될 거니까.
그와 그녀의 30대는 후회로 남지 않기를
혹여 쏟아내서 힘들어하는 그녀를 본다면
토닥토닥 해주며 그 하나로 괜찮다고 말해주는 미래의 그녀가 있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