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도 일을 나가지 못했다.
얼른 이 생활을 벗어나려면 일은 계속해야 하는데..
몇 주 전 할머니 댁에 가다가 오토바이에 치였던 무릎이 말을 안 듣는다.
왜 하필 주말에 치여서 선택지가 응급실밖에 없었을까
'차라리 평일에 사고가 나지..' 2평 남짓한 방에서 핸드폰을 보면서 뒤척이고 있었다.
그때 핸드폰이 울렸다.
"야 내가 아는 사람 결혼하는데 같이 축가 아르바이트할래?"
꽤나 오랜만에 연락온 친구 때문에 기쁜 걸까 일 때문에 기쁜 걸까
예비신부와 연락을 했다. 요컨대 목적은 예비신랑에게 비밀이기 때문에
본인과 연락하면서 조율 후 결혼식에서 한 번에 보여주자는 식이었다.
신부는 나와 또래였고 그때의 우리는 20대 초반이었다.(예비신랑이 나이가 굉장히 많았다.)
우리는 만나서 조율하기로 하고 연락을 하지 않았다.
그때부터였다. 단체 메신저에서는 조율 후 끊긴 이야기지만
나에게는 개인 메시지로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었다.
처음엔 '얘도 이 나이에 결혼하는 게 싱숭생숭하겠지..' 하는 생각에 몇 번 연락했다.
심심하다고 사진 좀 찍어달라길래 그냥 찍어 보냈다.
그게 화근이었다.
"잘 생겼다."
살면서 평생 들어본 적 없는 말이다. (나는 괜찮다. 정말 괜찮다.)
우선 나는 꽤나 많은 연애를 하면서 자랐다. 연애하고 싶은 사람과 항상 연애는 해 왔다.
하지만 그녀들에게도 잘 생겼다는 얘기는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다. 그래도 괜찮았다.
문제는 이 문장을 받은 사람이 자존감이 박살 날 대로 박살이 나 있던 시점이라는 것
이 자존감에는 여러 문제가 있었는데 크게 두 가지만 말하자면
첫 번째는 병원을 못 가 교통사고 후유증으로 몸이 말을 안 듣는다는 것이고.
두 번째는 전에 일하던 곳의 첫 출근날 실장님이 한 말이 비수로 꽂혀 있었다.
"어디서 이렇게 생긴 걸 데려왔어?"
정말 상대할 가치가 없는 말이었는데 돈이 급하고 어린 나에게는 어떤 것 보다 아팠다.
그렇게 며칠 동안 이야기가 이어지던 와중 돌연 그녀가 선언했다.
"나 결혼 안 할래 못하겠어"
제일 처음 든 생각은 '그러면 돈은 어떡하지..?' 뿐이었다.
하지만 이때부터 미친 듯이 연락이 오기 시작했다. 꽤나 적극적으로
내용은 '네가 좋다. 너 같은 사람을 만나고 싶다.'
처음엔 부담스러워서 피했지만, 점점 마음의 자존감이 떨어질 때면 어느새 나도 그녀에게 자존감을 주유받고 있었다. 세상의 비를 피하고 싶으면 나도 그녀를 찾아가기 시작했다.
그렇게 우리는 한참 뒤 연애를 시작했다. 어차피 둘 다 솔로고 20대의 연애인데 무엇이 문제인가
그렇게 한 달쯤 연애했을까 밤늦은 시간에 메신저가 울렸다.
"미안해.. 정말 미안해.."
그녀였다. 다시 결혼을 하겠다는 말이었다. 그 사람이 해주었던 따뜻한 말이 아직 남아있었다.
그때 한 번 더 울린 말
"나도 하기 싫은 결혼이야. 어떻게든 내가 어른들 설득해서 파혼하고 갈 테니 계속 만나주면 안 될까?"
미친 말이다. 이건 말이 안 된다. 절대 그러자고 말해선 안 된다.
"파혼하면 얘기하자."
나는 여기서 더 확실하게 끊어냈어야 했다.
그때부터 지옥의 시작이었다.
파혼했다고 와서 다시 연애하다가 다시 결혼하겠다고 헤어지기 일쑤였다.
그런 일이 10번 정도 됐을 때쯤
나도 같이 미치기 시작했다. 만남과 이별을 수없이 계속하며 나에게 남는 건 따뜻한 말들 뿐이었다.
그렇게 지옥 같은 시간이 지나고 결혼식 날짜가 되었다.
내가 축가 아르바이트를 받았던 그 날짜였다.
나는 이제 축가도, 축하도 할 수가 없었다.
이제 그녀의 멘트가 바뀌었다.
"이혼하고 너한테 갈게. 나는 너랑 같이 살 거야."
미친 사람. 이제 더 이상 정상적인 연애가 아니다. 미친 사람 둘이서 미친 짓을 하는 것뿐이다.
"응 그래."
나는 점점 피폐해지기 시작했다. 그녀와 내가 나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지 못했고
세상이 나쁜 것이고, 그녀 옆에 있는 사람이 나이기를 바랐다.
더 이상 세상에서 나에게 비를 피할 수 있는 곳이 되어주는 사람도 없었다.
술자리는 좋아하지만 술은 좋아하지 않았는데
매일 빈 병을 옆에 두고 취할 때까지 마시다가 잠드는 날이었다.
연락이 되지 않는 엄마, 매일 음주와 흡연으로 없어지는 통장잔고, 그녀가 해준 따뜻한 말들만
나에게 남아있었다.
그렇게 산 것도 죽은 것도 아닌 삶을 살다가 친구들의 가벼운 번개 같은 모임 소식이 들렸다.
나는 그 자리에 참석했다. 일상 이야기를 하며 점점 취해가고 있었다. 나는 취했다.
"나 남편이 있는 여자를 만나고 있어."
술에 취해 10명 남짓한 친구들의 테이블 위에 폭탄을 던져버렸다.
자 이제 누가 폭탄을 받을 것이냐
하지만 반응이 이상했다.
"ㅋㅋㅋㅋㅋ야.. 결국 거기까지 갔구나."
"아니 도대체 어떻게 만난 거야?"
"와 진짜 재밌네 썰 좀 풀어줘"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는 사람, 재밌다는 사람, 술안주가 필요했는데 잘 됐다는 사람.
이런 반응을 원하지 않았다. 그런데 왜인지 아무렇지 않은 일 같은 느낌이 들어 즐겁게 이야기를 막 했다.
그렇게 웃고 떠드는 밤이 깊어 가고 세상이 푸르스름 해 질 때 즈음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들 중 제일 친한 친구가 말했다.
"음.. 근데.. 너 너무 너만 생각하는 거 아니야? 왜 너네 둘 사랑 얘기에 꽂혀있어.
배신당하고 있을 남편 입장은 생각 안 해?"
순간 누가 망치로 머리를 후려친 줄 알았다. 정말 생각도 못하고 있던 관점이다.
그 후로 그들은 나에게 조언과 위로를 아끼지 않고 해 주었다.
이들은 본인의 벗이 잘못된 길로 가는 걸 알기에
큰 일을 작은 일로 만들어주고, 대수롭지 않은 척 넘겼던 것이다.
그들이 해주는 다양한 이야기를 듣고 내가 더 이상 혼자라는 것이 아닌 걸 느끼는 순간
많은 게 달라졌다.
더 이상 그녀와 데이트했던 곳은 사랑이 아니었다.
그곳은 내가 얼굴도 모르는 남자의 신혼 동네였다.
그들의 결혼 생활이 아무리 잘못된 것이더라도
그건 역겨운 사람들이 더럽히는 것이었다.
"그만하는 게 맞는 것 같아. 이건 아니야."
이 말을 마지막으로 모든 연락을 끊었다.
그렇게 더러운 연애가 끝났다. 헤어지고 몇 년 동안은 연락이 왔던 것 같다.
10년이 지난 지금도 친구를 통해 소식이 들려온다. 다른 남자랑 바람나서 이혼했다던가.
나는 로맨스가 아니었다. 내가 해도 불륜이고 남이 해도 불륜이다.
나는 쓰레기였고, 해서는 안 될 짓을 했다.
하지만 하나만, 정말 딱 하나, 못된 쓰레기의 마지막 변명을 말하자면
내가 빈 병으로 방바닥을 가득 채우고 잠들던 때에도
나를 위해 기도하는 내 가족이 있었고, 나의 눈에 보이지 않는 친구들의 노력이 있었다.
그들은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
내가 나를 사랑하지 못해서, 내 삶을 사랑하지 못해서
달콤한 사랑을 말하는 사람에게 모든 것을 내 던지고 살았다.
내 주변을 돌아보면 되는데, 그건 정말 간단한 일인데
내가 못 보는 것이었을까 안 보는 것이었을까
과거로 갈 수 있다면, 그때의 나에게 가서 단단히 얘기할 것이다.
벗어나라. 그곳은 네가 뒹굴기엔 너무 더러운 곳이다.
그것은 사랑이 아니다
더러운 사람이 되기 싫으면, 너에게 사랑이어도 제발 벗어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