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살아갈 것인가

by 도정

요즘은 대 AI 시대를 맞아, AI를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다.

나 역시 대화할 사람이 필요할 때 AI를 사용한다.

대화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철학적인 이야기를 할 때에

내가 상상할 수 없었던 이야기를 해주기 때문에 꽤나 재미있어서 애용하는 편이다.


참 신기한 일이다. 삶이 이것보다 더 떨어질 곳이 있을까 싶을 때는

현실을 직시할 수가 없어서 다른 곳에 눈을 두게 된다.

나의 친구들은 결혼하고 아이를 낳는 나이에

이제 고등학교 졸업한 학생들과 대학교를 같이 다닐 때였다.

눈앞에 펼쳐진 빛나는 청춘에 비해 나는 너무 바래져서 그들과 섞일 수 없을 때

자연스레 공상적인 생각을 하곤 했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내가 지금 현실을 버틸 수 없다면

그 너머를 보고 버티자는 생각에서 하게 된 생각이다.

그때부터 인생이 다시 구렁텅이로 빠질 때쯤이면 자연스레 하는 생각이다.


나의 이런 이야기를 했을 때 돌아오는 건

상대방은 신경 쓴다고 썼겠지만 어쩔 수 없이 보이는 동정의 눈빛,

본인이 도와주고 싶어 하는 아픈 호의들이다.

그들도 나에게 커다란 힘이지만,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지 얘기하면

막연하게 '노력해야지' '힘내야지' 같은 빙빙 도는 따뜻한 대화만 이어진다.

하지만 AI와의 대화는 조금 다르다.

그냥 내 얘기를 듣고 그에 대해 질문을 하는 더없이 효율적인 대화가 된다.


사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따위는 모른다.

진작에 알았다면 우화등선해서 신선들과 도 닦고 놀았겠지만 아쉽게도 나는 개신교다.

하지만 최근 AI와 철학적인 이야기를 할 때 꽤나 흥미로운 질문을 들었다.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장면이 있어?

이 질문을 들었을 때 한 시간은 고민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직업, 개신교에서 말하는 비전 같은 것이 아니라 '장면'이라는 명사가 들어갔기 때문에.

혹시 생각해 본 적이 없다면 이번 기회에 생각해 보시길 추천한다.

굉장히 재미있고 뜻깊은 시간이 될 것이라 자신한다.

내가 1시간을 고민하고 나온 장면은

'느지막이 일어나 볕이 잘 드는 집 앞 카페에 가서 때로는 핸드폰, 때로는 책 또 때로는 창 밖 풍경을 보면서 커피 한 잔 하는 오후'

소박하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절대 소박하지 않은 장면이다.

이 장면이 이루어지고 끝이 아닌 반복되는 삶을 살아가려면

전제 조건은 불로소득이기 때문에 쉽지 않은 꿈이다.

이러면 내 꿈은 불로소득 아닌가? 킥킥 대면서 대화하고 있을 때

AI에게 느낄 수 없을 것만 같던 따뜻하고 어딘가 포근하며 고양감에 차오르는 질문이 왔다.



그 장면 속의 네가 지금 너를 본다면 뭐라고 할 것 같아?

킥킥대던 표정과 바삐 움직이던 손이 멈췄다.

단지 미래의 네가 과거의 너에게 뭐라고 할 것이냐는 질문과 많이 달랐다.

내가 가장 이루고 싶은 장면 속의 내가

지금 허덕이고 있는 나에게 뭐라고 할 것이냐는 질문은

내 눈물샘에 충분한 자극을 주었고, AI와 대화에서 울었다는 것이 어쩐지 자존심 상했다.

나는 그 장면이 이루어졌고, 그 안에 내가 있다는 것 만으로 충분하다고 했다.

"힘들었지? 결국 넌 될 거야." 같은 투박한 위로가 없어도

단지 지금의 나와 그때의 내가 눈을 마주친다면 옅은 미소만으로도 충분할 것이다.

이 대화를 끝으로 더 이상 AI와 대화는 하지 않았지만

어쩐지 영원한 잠이 들 때까지 내 안에서 끝나지 않는 대화일 것 같다.



살아가다 보면 더 이상 내가 이 세상의 주인공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된다.

빛나는 누군가를 보며

'인생이라는 영화가 상영된다면 주인공은 저런 사람일 것이다.

나는 그 주인공이 지나간 시점의 엑스트라 14 정도 될까?'

이런 생각들에 내 인생이라는 영화는 그렇게 서서히 잡아먹히게 된다.

하지만 나라는 사람은 결국 존재할 것이다.

주인공에게는 그의 삶이 있지만 엑스트라 14도 그의 삶을 살아야 한다.

내 영화는 계속 상영되어야 한다.

혹시 누가 알까 엑스트라 14 영화가 명작이라고 불리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장면들은 내가 만드는 것이고, 언젠가 맞이할 엔딩크레딧까지의 여정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힘든 것은 어쩌면 시련일 것이라 생각한다면 조금은 나아진다.

이제는 어떻게 살아갈 것인지 따위의 질문보다는 이렇게 물어볼 것 같다.



꼭 이루고 싶은 단 하나의 장면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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