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이 끝나고 더 이상 시원한 비가 아닌 아름다운 눈을 기대하는 때가 오면 어김없이 그때가 떠오른다.
나에게 가난이 치부가 아님을 가르쳐 준,
넘치는 행복이 아닌 채우는 행복을 가르쳐준 당신과 그때가
김치는 원체 먹기가 싫었다.
특유의 이상한 냄새와 매운 것도, 단 것도 아닌 맛이 싫어서 급식으로 나오면 항상 다 버렸다.
나의 불호와 상관없이 이 맘 때가 되면 모든 집들이 큰 대야에 배추를 절이기 시작한다.
하지만 우리 집 큰 대야의 쓸모는 그것이 아니다.
며칠 전부터 도시가스가 끊겼다.
몸이 안 좋은 엄마와 이제 자라는 아이에게 도시가스가 없는 겨울은 너무나 가혹할 것이다.
하지만 아들은 씻어야 하기 때문에 가스버너를 꺼내 아직 끊기지 않은 수도로 물을 받아
팔팔 끓인 뒤 대야에 넣고 그가 충분히 씻을만한 미온수를 만들어준다.
그 뒤의 이야기는 아들은 모른다 그녀도 그렇게 씻었기를 바랄 뿐
금년에는 무슨 이유에선지 엄마가 김장을 같이 하자고 한다.
아들에게 주어진 임무는 깍두기 무를 써는 것. 처음으로 칼을 잡고 무를 썰어본다.
무를 네모 반듯하게 깍둑깍둑 썰면 어쩐지 기분이 좋다.
엄마는 옆에서 배추와 양념 그 외의 모든 것들을 담당하고, 아들은 무만 썬다.
이런 기분은 아들에게 굉장히 낯설다. 우리 엄마는 나에게 본인의 꿈을 투영하는 사람이었다.
본인이 하지 못한 음악과, 이루었던 공부, 미술, 골프 등등등 나열하자면 3일 밤낮을 새워야 할 것이다.
그렇게 엄하던 엄마와 둘이 도란도란 김장하고 있으니 아들은 어쩐지 포근하다.
그런 기분으로 무를 썰다 보니 해가 뉘엿뉘엿 질 때쯤 김장이 끝났다.
나는 뭐가 그렇게 신기했는지 냉장고 문을 연채로 내가 만든 깍두기를 하염없이 응시했다.
그 작은 락앤락 통에 담긴 본인의 깍두기가 뭐가 그렇게 소중했던 걸까
며칠 뒤 학교를 다녀오니 공부방에서 아이들을 가르치고 있을 엄마가 없다.
병원에 실려갔다더라.
나는 모태신앙이다. 토요일마다 교회에서 하는 제자육성 프로그램에 항상 참여했다.
하지만 실려갔다는 말을 듣곤 병원에 가는 내내 하늘에 대고 쌍욕을 퍼부었더랬다.
'이래선 안된다고, 당신의 딸이 왜 저렇게 살아야 하냐고
이게 신이라면, 혹여 우리 엄마가 죽게 된다면 나는 당신을 찾아가 당신도 죽이겠다.'
하지만 신이긴 했나 보다. 엄마는 죽지 않았고, 며칠만 입원하면 된다고 하더라
밤늦은 시간에 공부방에 딸린 방에 초등학생 혼자 돌아왔다.
물을 데워줄 엄마가 없다. 배고픈데 어떻게 먹어야 할지 모른다.
냉장고 문을 열었다. 그 작은 락앤락 통이 보인다.
고사리 같은 손으로 밥을 짓고, 락앤락 통을 꺼내 차디찬 바닥에서 아이가 밥을 욱여넣는다.
깍두기가 아직 무르익지 않았다. 그럼에도 먹는다.
그 아이가 욱여넣은 건 밥뿐이 아니다.
눈물, 다행, 꿈, 추위 모든 것들을 엄마와 함께 만든 깍두기에 얹어 같이 넘긴다.
그렇게 어린아이의 더없이 따뜻했지만 추웠던 겨울이 지나간다.
결혼 적령기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아이를 낳지 않는다면, 그 이유는 무엇이냐고
여러 가지 이유들 중에 내 눈에 들어온 건
'나처럼 살게 하기 싫어서'
나는 여전히 가난하다. 내 대에서 엄청난 일을 하지 않는 한 내 아이도 가난할 것이다.
한 때는 가난한 가정을 원망한 적도 있다.
이제는 옛날이 되어버린 깍두기 이야기도 본인은 잊은 채
엄마는 아직도 나에게 아무것도 남겨준 게 없다며 미안해한다.
우리 엄마는 확실히 그 위의 할머니부터 이어진 가난을 물려주긴 했다.
하지만 내가 물려받은 건 가난만 있는 것이 아니다.
냉장고 속의 깍두기는 내 대에서 끊기게 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물려받은 건 그깟 가난 때문에 폄하되기엔 너무 빛나는 것이 많다.
수능이 끝나고 아름다운 눈을 기다릴 때가 되면 항상 생각난다.
차디찬 바닥, 대야, 깍두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