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증 모임

by 도정

10년 전 즈음에 친구들과 우울증 모임이라는 것이 있었다.

우리끼리 모여서 우울감을 나누던 모임은 아니고,

그저 고등학교 친구들 셋이 자라는 과정에서 우울증에 걸렸는데

원래 친했던 사이기 때문에 같이 커피 마시고 술 마시면서

서로 힘든 건 다 잊고 재미있게 이야기하던 시간들이다.


우리들은 우울증을 가지고 있었다.

연유는 제각각이다. 가정의 불화,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확실 등등

이유가 제각각이어서 그런지 증상도 셋 다 달랐다.

한 명은 기면증, 또 한 명은 불면증 그리고 나는 무기력

한 명은 못 자고, 한 명은 너무 자고, 나는 168시간을 누워있을 수 있다.


우리들은 대학생이 되면서 자연스레 멀어지는 시기에도 멀어지지 않았다.

셋 다 대학교를 가지 않았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쉬는 날이면 만나곤 했다.

만나서 무슨 이야기를 하냐 물어본다면 당연히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 따위는 없었다.

게임과 음악 이야기, 본인이 어제 해가 중천일 때 잠들었다는 이야기,

다른 동기들 근황, 남편이 있는 여자를 만난다는 이야기 (예전글)

기면증과 불면증 둘이 합치면 정상인 아니냐는 시시콜콜한 이야기들..


어쩌다 눈이 펑펑 오는 날에도, 너무 더워서 움직일 수도 없는 날,

칼바람이 불어 걸어 다닐 수가 없는 날씨에도 그들은 만나서

"사나이라면 아무리 추워도 아이스 마셔야지~ "

"야 이렇게 추운 날에는 뜨거운 아메리카노지"

같은 대화들을 하면서 시간이 흐른다.

다른 친구들은 재수, 삼수해서 대학교를 가는 동안 그들은 계속 함께했다.

누군가가 군대를 가기 전까지..

그들은 모르겠지만, 나는 그들에게 정말 많이 의지했다.



시간이 많이 흐르고 더 이상 예전처럼 그들은 만나지 않는다.

셋이 모이는 일은 아예 없고 나만 그 둘을 따로 종종 만나곤 한다.

우선 기면증 친구는 제일 심한 우울감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는 꿈을 꾸면 거울 속 본인의 모습에서 손이 나와

본인 목을 조르는 꿈을 꾸곤 했다.

이 친구는 살기 위해서 운동을 시작했는데

생각보다 본인의 삶과 운동이 잘 맞았나 보다.

시간이 많이 흐른 지금은 내 몸통과 그의 허벅지 굵기가 비슷하다.

언젠가 한 번 만나 같이 술을 마시다가 내가

"너는 어떻게 우울감을 이겨냈어? 운동 때문이야?"

라고 물어본 적이 있는데

"아니 나는 이겨낸 적은 없어, 아직도 그래.

운동은 하고 있으면 아무 생각이 안 들어서 그저 하는 것뿐이야."

라는 말을 했었다. 나도 집에서 운동은 하지만

저만큼 하면.. 그래 아무 생각도 안 날 것 같긴 하다.

나는 나의 우울감은 공상적인 생각들을 하면서 이겨냈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내고 왔었다.


마지막으로 최근에 불면증 친구를 만났다.

그는 우리들 중에 제일 본인의 우울감을 숨기는 친구였다.

우울감을 얘기하면 남들이 불편해하기에 우리한테도 항상 조심했었다.

이 친구는 입버릇처럼 하는 말이 있다.

"이 정도면 오래 살았잖아~ 이제 가야지.."

그렇다고 정말 시도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입버릇이다.

시간이 많이 흘러서 그랬을까 이번에는 우울감에 대해 둘이 대화할 일이 있었다.

그는 약을 먹고 있었고, 그 약이 듣지 않으면 점점 독한 것

그것도 안 되면 약의 개수를 늘린다고 했다.

나는 그에게 '인생에서 꼭 이루고 싶은 장면'이 있냐 물어봤었다.

그는 분명한 꿈이 있었다. 자신은 모든 것을 잃어도 베푸는 삶을 살고 싶다고..

나는 그와 대화하면서 알 수 있었다.

그와 나는 똑같이 음악을 대하는 것이 부담이었던 사람이었다

하지만 앞에 거대한 벽에 있다면,

그는 우울감과 함께 그 벽을 오르는 사람. 그래서 어쩌면 더 힘들어 보이는 사람.

나는 저 벽만 생각해도 우울감이 올라오기 때문에

오랜 시간이 걸려도 우울감을 피해 돌아가는 사람이다.


그와 이야기하면서 느꼈다.

나는 우울증을 이겨낸 것이 아니다.

또다시 우울감을 느끼게 되는 것이 두려워서

우울감을 주는 모든 것들을 피하면서 살았다.

늦은 나이라는 것이 나에게 우울감을 주기 때문에

고등학생들이 하는 머리스타일을 하고,

옷을 어려 보이게 입으며 어쩌다가 신분증 검사라도 하면 기뻐했다.

음악을 늦게까지 잡고 있던 것도

음악은 배고픈 게 당연하다는 인식이 있기에

그걸 이용해서 음악을 붙잡고, 열심히 하면서 살지도 않았다.



그 어렸던 아이들 셋 중에 누구도 우울증을 이겨내지 않았다.

한 명은 다른 것에 집중하는 시간으로, 또 한 명은 정면으로 마주 보는 것으로,

나는 마음 한편에 있는데 이겨낸 줄 알면서 살았다.

우리는 우울증과 함께 10년이 넘는 시간을 살아가고 있다.

세상엔 우울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정말 많다.

내가 겪고, 지켜본 바에 의하면 우울증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단지 살아가다 보면 걸릴 수 있는, 여름마다 모기가 무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은 일이다.

여름이 지나면 괜찮은 것 같다가도

다시 다음 여름이 되면 나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언제든지 또 물리고 그러면 며칠 간지러워서 긁게 되는 그런 일

이건 친구와 대화할 때 나왔던 말이다.



"우리는 어쩌면 성공을 겪어보지 못해서 그런 것 같아.

계속 실패하다 보니, 실패가 익숙해져서 그 패배감에

작은 성공에 기뻐할 수 없고, 더 큰 성공을 해야지만 성공이라고 느끼는 거지."


나의 인생은 실패의 연속이었다.

평생의 시간을 포기했고, 새로운 삶을 살아가야만 하는 부담이 있다.

하지만 이런 우울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만으로 성공이라고 치기로 했다.

너무 힘들어 주저앉았든, 더 걸을 수가 없어 잠깐 앉아있든,

앞으로 나아가는 길이 어디인지 몰라 갈림길에 멈춰서 있든,

또 후회와 미안함, 배신감 모든 감정에 사로잡혀 있는 오늘 하루이더라도.

오늘 하루를 살아낸 우리는 성공한 것이지 않을까?

원래 이런 말 낯간지러워서 잘 못하지만 오늘만 변덕스럽게 하자면..


오늘 하루도 살아내느라 고생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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