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치고 지나가는 것들

by 도정

'이해를 받는다.'라는 말은 굉장히 어렵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모여서 서로의 숲이 되어가는 과정은 정말 쉽지 않다.

나라는 존재를 완벽히 이해해 주는 사람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그나마 나를 이해한다고 느끼는 존재는 있을 것이다.

누군가에겐 친우일 것이고, 누군가에겐 평생의 동반자

또 누군가에겐 회사에서 쌓은 인맥들일 것이다.

사실 우리는 서로를 완벽하게 이해할 수 없다.

인간이 그렇게 간단하게 이해가 되는 존재라면, 더 이상 인간이 아닐 것이다.

하지만 이해받지 못하는 것과, 이해받고 싶은 것은 엄연히 다르다.

나 역시도 누군가에게 나를 이해해 주기를 바란다.

나는 나를 이해해 줄 수 있는 대상을 항상 사랑하는 연인에게서 찾았다.

하지만 늘 그렇듯, 만남이 있으면 이별이 있는 법이다.



나는 세상이 참 지루하다.

나에게는 비밀이 하나 있다.

자라오는 과정에서 생긴 특별한 초능력이 하나 있는데

사람과 대화할 때 늘 그 사람의 다음 문장을 예측하고 대화한다는 것이다.

예측 범위는 집중한다면 대화가 끝날 때까지 계속 예측할 수 있다.

30년 가까이 되는 벗, 나의 가족,

또 대학교에서 강의를 하던 교수님들

하물며 지나가다가 마주친 길을 물어보는 할머니 등

모든 사람을 예측하고 예상하면서 대한다.

이 초능력은 내가 키려고 하지 않아도 계속 켜져 있다.

내가 어떤 한 문장을 말했을 때 돌아올 대답을 예상하고

다음에 말할 문장을 준비한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나 우울해서 빵 샀어."

이런 질문이 왔을 때 사람마다 다르게 대답을 준비한다.

"ㅋㅋㅋ나도 그거 알아 '우울'에 집중해야 된다며?" 라던지

"왜? 어디가 우울해?" 라던지

"고생했다." 한 마디와 커피를 내미는 것을

사람마다 다르게 적용해 그 사람에게 맞춰서 한다.

이 간단해 보이는 대화의 3초도 안 되는 시간 동안

나는 머릿속으로 수백 개의 시뮬레이션을 돌린 뒤에 최적의 문장을 말하는 것이다.


이 대단하지 않은 초능력에는 장점이 있고, 단점도 있다.

장점은 평판이 좋아진다는 것, 대화가 잘 된다고 사람들이 날 찾는 것

누군가가 당신과 대화가 안 통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면

이 초능력을 이용해 보는 것도 괜찮다.

하지만 단점은 '나'라는 사람을 잃어버린다는 것,

내 예상이 늘 맞지는 않는다는 것.

가끔은 내가 하고 싶은 대로 대답해 버리는 순간

상대방은 낯선 기분을 느꼈다.

분명 앞에 앉은 사람과 대화하는 것인데 앞사람의 얼굴도 볼 수 없고

내 얼굴이 어떤지도 생각할 수 없다.

하물며 예상이 틀리면.. 그건 좀 끔찍하다.



하지만 유일하게 예상을 항상 벗어나는 존재들이 있는데,

그들은 나에게 여자친구라는 관계였다.

나는 '남자의 첫사랑은 무덤까지 간다.'라는 말을 꽤나 좋아한다.

남자의 첫사랑이 무덤까지 가는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그 시절이 행복해서나 그때가 너무 그리워서 그런 것은 아니다.

아마 후회라는 씁쓸한 감정일 것이다.

자신이 제일 못났던 시절에 멋있는 여자를 힘들게 했다는 후회.

내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잘 살았을 거라는 죄책감. 적어도 나의 경우에는 이렇다.


내가 고등학교 2학년으로 올라가던 겨울, 그러니까 18살 때

일요일마다 교회에서는 나의 주일학교 선생님이 되던 24살 누나였다.

고등부 예배를 들어가면 입구에서 환영해 주던 선생님들 중 하나.

그냥 저녁에 카페에서 커피나 한 잔 하면서 시시콜콜한 얘기를 하는 관계.


그날도 밤늦게까지 카페에서 커피를 한 잔 하다가

집에 같이 걸어가는 길에 그녀가 말했다.

"오늘도 고백 안 하면 나 너 내일부터 안 보려고."

이건 예상을 아예 벗어났다. 나는 준비도 되지가 않았었다.

학생과 성인의 신분도 있었지만, 교회 학생과 선생님의 신분도 있었기 때문에

하지만 나는 놓치지 않았고 바로 고백을 한 뒤 우리는 교제를 시작했다.

그녀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준 사람이다.

캐러멜 마키아토만 마시던 내게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가르쳐준,

걸을 때는 발을 맞춰 걸어주고, 낮이나 밤 그 모든 순간에 하는 사랑의 대화,

아무 의미 없는 날에 선물을 하면 상대가 굉장히 좋아한다는 것들을

나에게 가르쳐준 사람이다.

서로의 부모님이 교제 사실을 알게 되고, 우리를 뜯어말릴 때도

우리는 로미오와 줄리엣이 된 것처럼 더 그리워하고 더 붙어있으려고 했다.


하지만 늘 그렇듯 만남이 있다면 이별이 있다.

그녀는 낮에는 직장에서 돈을 벌었어야 했다.

하지만 나는 당연히 그 시간엔 학교에서 공부를 하는 시간이다.

우리는 서로의 시간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학교에서 즐겁게 생활하는 나를 불안해했고, 나는 그런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렇게 한 해를 넘기지 못하고 다음 가을이 올 때

어렸던 나는 이유를 대지 않은 이별을 고했고

그녀는 한 달 내내 우리 집 앞에서 헤어지게 된 이유를 듣기 위해 기다렸다.

나는 그녀가 모든 것을 가르쳐줬었는데, 내가 애초부터 인기가 많은 줄 알고

밖으로 놀아 다니느라 그녀를 만난 적이 없다.

그 한 달이 나에게는 그전에 함께했던 모든 시간을 덮을 정도로 후회되는 기억이다.



모든 사람을 예상하고 대하는 나에게는 첫사랑은 너무 어려운 시간들이었다.

투박한 말투로 그녀를 울리기도 했었고, 예상을 빗나간 대화에 나도 많이 울었다.

당연히 이해받은 적도 없고, 나도 그녀를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는 결국 이별까지도 나에게 가르쳐준 것이 하나 있다면

이해받지 못하는 것에 아파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세상에 나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나밖에 없다.

내가 아무리 사람을 다 아는 것처럼 예상하고 대화한다고 해도,

나는 그들을 이해하는 것이 아니다. 이해하는 것 같은 나 자신에게 취하는 것이지.


혹시 본인은 다르다고 생각하는가? 그렇다면 축하한다.

진심으로 축하한다. 인생에서 자신을 이해해 줄 수 있는 단 한 사람이라도 있다면

그건 혹자들에겐 수백억의 재산을 들여서라도 사고 싶은 관계일 것이다.


나는 사람을 잘 싫어하지 않는 걸로 주변에서 유명하다.

마음에 안 드는 사람이 있으면 찾아와 나에게 이야기하며

본인이 그 사람을 싫어하는 것이 정당한 건지 묻곤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렇게 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모른다.

나는 사람을 잘 좋아하지도 않는다.

그저 '음 넌 그런 사람이구나.' 하고 끝이다.


사랑이라는 명목으로 상대방을 내 마음에 가둘 수도 없고,

지나가는 바람을 손으로 잡을 수는 없는 법이다.

세상 모든 것이 나를 스치고 지나가도

나만 오롯이 서서 그것들을 사유할 수 있다면 그걸로 충분한 것이다.

누군가에게 나를 이해해 달라고 울부짖어도

결국 사람은 떠나고 남는 건 나라는 존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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