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여섯의 패배감을 지우는 전환기 글쓰기

고입이라는 첫 계급장과 회복탄력성의 뇌과학

by 이연숙 박사

대한민국의 중등에서 고등으로의 전환기는 단순히 교복이나 등교 시간이 바뀌는 물리적 변화의 시기가 아니다.


지역에 따라 별도 시험 없이 주소지와 지망에 따라 평준화 무작위 배정을 받기도 하지만, 영재고, 과학고, 외국어고, 전국단위 자사고 등 이른바 '전기고' 입시 결과에 따라 열여섯 아이들의 세계는 무참하고도 선명하게 쪼개진다.



​이 치열한 관문을 통과한 소수의 아이들은 강렬한 자부심과 성취감을 안고 고등학교 생활을 시작한다. 하지만 낙방한 아이들은 인생 첫 실패라는 뼈아픈 상대적 좌절감을 맛본다.


무엇보다 심각한 것은 아예 지원 자격조차 갖추지 못해 일찌감치 특목고 진학을 포기하고 일반고로 향하는 대다수 학생이 겪는 짙은 패배의식이다.


입시라는 이름의 거대한 서열화 시스템 속에서, 아이들의 뇌는 고등학교 생활이 시작되기도 전에 막대한 정신적 부담감에 짓눌려 인지적 에너지를 낭비하게 된다.


​사회적 평가와 거절을 통증으로 느끼는 뇌
뇌과학의 관점에서 이 시기의 서열화와 박탈감은 뇌에 물리적인 타격을 가한다. 뇌의 전대상피질(Anterior Cingulate Cortex)은 신체적인 고통뿐만 아니라 사회적 소외나 거절, 지위의 하락을 동일한 '통증'으로 인식한다.


​고입 과정에서 자신이 '선택받지 못했다'거나 '평범하다'고 느끼는 순간, 아이들의 뇌는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Cortisol)을 분비하며 심리적 방어벽을 친다.


이 과정에서 이성적 판단과 학습을 관장하는 전두엽의 에너지는 급격히 고갈된다.



회복탄력성의 붕괴와 마이너스 시너지
이 거대한 상실감은 아이들의 마음 근력, 즉 '회복탄력성(Resilience)'을 급격히 떨어뜨린다. 교육 현장의 회복탄력성 연구를 살펴보면, 이 시기에 깊은 좌절감을 겪고 낮은 회복탄력성을 지니게 된 학생들이 학교에서 또래 집단을 형성할 경우, 학업 성취와 교우 관계에 있어 서로에게 강력한 마이너스 효과를 발휘하는 현상이 뚜렷하게 관찰된다.


​"어차피 우린 안 돼", "열심히 해도 소용없어"라는 집단적 패배주의가 서로의 거울 신경세포(Mirror Neuron)를 통해 전염되며, 건강한 동기부여를 마비시키고 결국 동반 하락의 늪으로 빠져들게 만드는 것이다.


​서사를 재구성하는 인지적 재평가 글쓰기
이 파괴적인 마이너스 시너지를 끊어내고 바닥에 떨어진 회복탄력성을 다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상처받은 서사를 객관화하고 다시 쓰는 훈련이 절실하다.


심리학에서는 이를 '인지적 재평가(Cognitive Reappraisal)'라고 부른다.


​독락서쾌에서 지도를 받던 예진 학생은 특목고 입시 실패 후 심한 무기력에 빠져 있었다. 예진 학생에게 합격과 불합격이라는 결과의 꼬리표를 잠시 떼어두고, 자신이 목표를 향해 치열하게 밤을 새웠던 '과정'과 그 안에서 겪은 감정들을 한 편의 수필처럼 글로 써보게 했다.


자신의 입시가 '실패로 끝난 부끄러운 결과'가 아니라 '내 한계를 시험해 본 치열한 도전의 서사'로 문장화되는 순간, 예진 학생의 뇌는 긍정적인 자아상을 재구축하기 시작했다.

​글로 쏟아낸 상처는 더 이상 뇌를 갉아먹는 고통이 아니다. 고입이라는 냉혹한 시스템 속에서 아이가 자신만의 고유한 가치를 지켜내고 잃어버린 에너지를 되찾는 데, '전환기의 글쓰기'는 가장 훌륭하고 단단한 심리적 방패가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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