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항과 무기력의 뇌과학, 그리고 관계의 회복
중학생 자녀를 둔 부모들의 하소연은 놀랍도록 비슷하다.
"초등학교 때는 책도 잘 읽고 스스로 숙제도 하던 아이가, 중학생이 되더니 만사가 귀찮다며 방문을 닫아버려요."
"도무지 공부를 하는 건지...... 건성건성.... 정말 돈이 아깝다는 생각이 듭니다."
성적은 떨어지고, 늦잠을 자며, 스마트폰만 들여다보는 아이를 보며 부모는 배신감마저 느낀다.
잔소리는 곧 날카로운 갈등으로 이어지고 집안은 매일 살얼음판이 된다.
하지만 이 참담한 일상의 붕괴는 아이가 나빠져서가 아니라, 아이의 뇌가 거대한 '공사 중'이기 때문에 벌어지는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브레이크 없는 스포츠카를 모는 뇌
미국 펜실베이니아 대학교의 신경과학자 프랜시스 젠슨(Frances E. Jensen, 2015) 교수는 저서 『10대의 뇌』에서 청소년기의 뇌를 '성능 좋은 엔진은 달렸지만 브레이크가 고장 난 차'에 비유했다.
중학생 시기에는 감정과 충동, 보상을 추구하는 변연계(Limbic system), 특히 '편도체'가 폭발적으로 발달하여 성인의 수준에 도달한다.
반면, 충동을 조절하고 계획을 세우며 결과를 예측하는 이성의 뇌, 즉 '전두엽(Prefrontal cortex)'은 20대 중반이 되어서야 공사를 마친다.
이 지독한 '발달의 시차'가 중학생의 무기력을 설명한다.
당장의 도파민을 분비하는 게임이나 자극적인 영상 앞에서는 편도체가 격렬하게 반응하지만, 미래의 보상을 위해 인내해야 하는 독서, 학업, 근면한 생활 등 '전두엽(집행 기능)'이 필요한 과제 앞에서는 뇌가 작동을 멈추는 것이다.
중학생의 일상이 저조해지는 것은 반항이 아니라, 뇌의 지휘 통제실이 일시적으로 셧다운 된 상태를 의미한다.
편도체를 자극하는 잔소리, 전두엽을 깨우는 글쓰기
일상의 루틴이 무너진 아이에게 부모가 쏟아내는
"너 왜 성적이 떨어졌어?",
"언제까지 누워만 있을래?"와 같은
추궁은 불난 뇌에 기름을 붓는 격이다.
예민해진 편도체는 부모의 걱정을 '생존에 대한 위협(공격)'으로 인식하고, '싸우거나 도망치기(Fight or Flight)' 반응을 일으켜 방문을 쾅 닫게 만든다.
이때 대면 충돌을 피하고 멈춰버린 전두엽의 시동을 다시 거는 가장 안전한 도구가 바로 '비동기화된 글쓰기(Asynchronous writing)'이다.
독락서쾌에서 지도를 받던 중학교 2학년 민재 학생은 극심한 무기력증으로 학업을 거의 놓은 상태였다.
민재 학생에게 거창한 논술이나 독서록 대신, 자신이 가장 깊이 빠져 있는 게임의 세계관과 캐릭터 분석을 노트에 적어보게 했다.
도파민이 분비되는 관심사를 주제로 삼자 연필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파편화된 관심사를 글로 정리하는 과정 자체만으로도 전두엽의 논리 회로가 서서히 자극을 받는다.
교환 일기, 갈등을 멈추는 완충 지대
부모와의 관계 회복을 위해서도 글쓰기는 탁월한 처방전이 된다. 얼굴을 붉히며 말로 싸우는 대신, 식탁 위에 노트를 하나 두고 서로 짧은 글을 남기는 '가족 교환 일기'나 '쪽지 대화'를 시작해 보자.
"오늘 학원 가기 정말 싫었지? 그래도 다녀와 줘서 고마워." 부모가 먼저 편도체를 다독이는 짧은 글을 남기면, 아이 역시 즉각적인 방어기제를 내려놓고 자신의 복잡한 심경을 단 몇 줄이라도 적어낸다.
글을 쓰기 위해 잠시 멈추어 생각하는 찰나의 시간 동안, 아이의 전두엽은 차분하게 상황을 객관화하는 '메타인지'를 가동한다.
무너진 중학생의 일상을 당장 예전처럼 되돌릴 수는 없다. 하지만 부모가 기다림의 시선을 보내고 아이가 자신의 감정을 한 줄의 글로 꺼내놓을 때, 요동치는 사춘기의 뇌는 마침내 쉴 곳을 찾고 다시 성장의 궤도에 오를 준비를 마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