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알못을 구제해 주다.
내가 손 흥민 선수를 처음 알게 된 건 독일로 유학을 와서도 몇몇의 한국 학생들과 작은 모임을 만들어 매주마다 축구를 하는 축구광 남편으로 인해서였다.
한국과 비교할 때 워낙에 유흥거리? 가 없는 독일에서 학업과 일로 지친 심신을 축구로 해소하겠다는 남편을 말리고 싶지 않았고 가끔씩 주말에 아이들을 데리고 축구장에 나가 구경하는 재미도 쏠쏠했기 때문에 나 역시 축알못이었지만 열심히 옆에서 귀동냥을 하곤 했었다. 참고로 나는 축알못이기도 했지만 전혀 관심도 없었다. 툭하면 작은 부상들을 달고 오는 남편을 보면서, 부상으로 뛸 수 없는 상황에서도 굳이 운동장에 나가 쳐다보기라도 하는 그 마음들이 와닿지 않았고 30년 전만 하더라도 축구는 남자들의 운동이라 생각했었다.
어느 날 남편은 한국에서 아직은 어린 소년 하나가 독일의 분데스리가로 축구유학을 온다는 소식을 알아 내서는 가벼운 흥분으로 열심히 소년에 대한 정보를 찾기도 하는 모습을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손흥민의 시작이었다.
그 후 강력한 유망주로서의 첫걸음을 떼고 이유가 모호한 손흥민 배제설이 나올 때마다 남편은 흥분을 했고 <인종차별>을 고성으로 말하기도 했지만 나는 축구를 몰랐고 관심도 없었기에 흥분하던 그가 신기하기만 했고 손 선수의 경기의 직관은 원했지만 가난한 유학생으로서 언감생심이던 그의 바람도 "뭘 저렇게까지.." 싶었다.
2015년 손 선수의 프리미어리그행이 결정되면서 남편의 흥분은 점점 짙어지기 시작했고 지금까지로 이어진 손 선수로 인한 <무한 토트넘 사랑>의 막이 올랐다.
다행스럽게 한 시간 시차인 영국인지라 그리 어렵지 않게 경기를 챙겨 볼 수 있었기에 일주일에 한 번 내지는 두 번의 경기를 무슨 일이 있어도 시청을 하면서 본인의 축구지식을 아낌없이 토로했기 때문에 나와 아이들은 싫어도 알지 못해도 들을 수밖에 없는 환경이 되었다.
그러는 와중에 그때까지도 어린 티가 물씬 나는 손 선수의 모습이 처음으로 내 시야에 들어왔고 우리 역시 오랜 유학생활을 끝내고 여주권을 얻기 위해 현실에서 거의 사투를 벌이는 삶을 살고 있었기에 동병상련의 마음을 품었던 것인지 축구선수 손흥민보다 한국의 젊은 청년 손흥민에게 더 관심이 생겼다.
명성이 주는 부와 화려함 보다는 독하고 잔인한 프리미어리그에서 상대적으로 갸녀린 동양선수 손흥민의 미소는 나를 점점 매료시켰고 가식이라 생각했던 그 미소와 미소보다 아름다운 그의 인성은 십 년이 지나면서 축구에 열광하지만 그만큼 평가에는 야박한 관중들 또한 변화시켰다고 자신한다.
어떤 이들은 손 선수의 미소조차 인성조차 계산된 전술이라 평가절하하기도 한다. 유독 같은 한국민들이.. 만에 하나 그렇다한들 어떡하리? 십 대의 어린 나이부터 계산된 인성이 삼십이 넘어서까지 계속됐다면 그것은 이미 체득화된 그의 것이 아닌가?
거의 모든 경기들을 찾아보면서 변화한 것들에는 선수의 일장월취하는 축구실력과 영국에서의 그에 대한 평가뿐 아니라 나의 보잘것없는 축구상식과 축구를 보는 눈도 포함이 돼있었고 아들이 없는 남편에게 같이 앉아 축구를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큰 딸아이가 있었다.
<스며든다>라는 말의 의미를 나는 몸으로 시간으로 경험으로 알게 되었던 것이다.
그렇게 손 선수에게 스며들면서 프리미어리그에서 공공연하게 일어나는 인종차별에 대해서도 알게 되었고 손 선수에게 자행되는 불합리하고 불공정한 여러 내용들에 대해서도 분노가 올라오기 시작했다.
모두들 손흥민 선수의 스승이라 추앙하는 포체티노 역시 나는 그렇게 대단하게 보지 않는 이유 역시 케인과 비교해서 현저하게 보였던 차별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PK 권한은 물론이고 프리킥조차 매번 양보를 강요당했고 포지션조차 내몰릴 때도 많았고 아무리 잘하고 있어도 교체출전 시키던 순간들을 나는 기억한다.
그럼에도 내가 좋아하고 응원하는 선수가 미소로 받아들인다니 "그래! 존중하자!"
사실 그가 그 잘난 축구영웅 손흥민이 분데스리가와 프리미어리그에서 받아야 했던 차별의 근원은 그때까지만 해도 <듣보잡 아시아의 작은 나라에서 온 축구 좀 하는 동양인 청년>이었다. 나라는 별 볼 일 없어도 줄줄이 축구영웅을 뽑아내는 브라질도 아니고 아르헨티나도 아니고 포르투갈도 아닌 천성적으로 작은 체구와 여린 몸을 가지고 어쩌다 한 번씩 나오는 축구영웅의 나라, 한국출신이라는 핸디캡을 손흥민이 뒤집어 놓은 것이다.
물론 이전에 차붐이 있었고 지성 팍이 있었음을 인정한다. 하지만 그때가 시발점이었다면 손흥민의 시대에 와서 정점을 찍었다고 생각한다.
그가 세운 대기록들을 일일이 열거하기에도 별 의미가 없이 어떤 수식어 없이도 그는 전 세계의 탑들 중 하나인데 분데스리가에서의 차별이 없었다면, 프리미어리그에서의 차별이 없었다면 더 큰 기록들을 세웠을 거라 의심하지 않는다.
나는 K-문화의 선봉장이 손흥민이었음을 독일에서 30년 넘게 살면서 분명하게 확신할 수 있다. 싸이도 있고 BTS 도 있고 다방면에서의 문화예술인들이 지금도 한국알리미로 활동하고 있고 앞으로는 더 많이 나오겠지만 누군가 나에게 그 시발점을 묻는다면 내 대답은 늘 하나였다. " 손 흥민"이라고.
실제로 이곳에서 여러 가지 알바를 하면서 학업과 가정생활을 했던 나는 최악의 직장동료가 우연하게 내가 그가 덕질을 하던 손흥민의 나라에서 왔다는 걸 알고 쭈그리가 되는 경험을 했고 처음 독일에 왔을 때만 해도 코리아라고 하면 7:3 정도의 비율로 모르던 이들이 "아! 코리아? 흥민 쏜? 쏘니!"로 바뀌는 현장을 살아냈기에 손흥민이 우리에게 준 것은 비단 축구의 승리와 개인의 영광이 아니었다.
그래서 손 선수의 <나라사랑>이 유별나지 않을까 미루어 짐작하곤 했던 나는 한국의 축구협회의 오랜 관행과 낡은 행정, 잘못된 운영들에 대한 소수의 비판이 시작될 때 걱정을 많이 했었다. 행여라도 그 순수한 <미소청년>이 마은 가득 충만한 <애국심>으로 혹여라도 상처받지 않을까라는..
한국의 오래된 시스템마다 충만한 학연과 지연이라는 고정적인 병폐를 나도 익히 보고 듣고 겪어봤기 때문이었지만 그래도 손흥민은 다르겠지 라는 기대도 사실 있었기에 그가 가고자 하는 발걸음을 지켜봐 주는 것이 올바른 팬의 도리라고 생각은 했었기에 지금까지도
응원해 왔다.
그런데 그가 그토록 사랑하고 틈만 나면 외치던 그의 나라 <코리아>에서 지금 그가 겪고 있는 일들을 보면서 나는 이제 그만하라고 부탁하고 싶다.
타국에서 살면서 겪는 설움은 그래도 참으면 참을 만하다. 왜냐고? 아무리 큰 설움을 겪어도 그 당시의 나에게는 비빌 언덕이라는 게 존재하니까.
어린 시절에 아무리 가진 게 없고 나약한 부모라 할지라도 아이들은 부모가 최고였고 밖에 나가서 싸우거나 억울한 일을 당하면 곧바로 튀어나오는 말이 "우리 엄마(아빠)한테 이를 거야!" 였던 것처럼 밖에 나와 사는 우리에게는 작고 약해도, 여러 가지 결함을 가지고 있더라도 내 나라가 최고니까.
집 밖에 나오면 효자효녀가 되고 나라밖에 나오면 모두 애국자가 되는 데는 그렇듯 그리움이 깔려 있는 것이다.
그런데 그렇게 그리던 곳에서 말도 되지 않는 또 다른 차별과 수모를 겪어야 한다면 그 상처는 지우기 힘들 테니까.. 나는 내가 사랑하고 응원하는 선수가 그렇게 되지 않기를 간절히 바랐는데 현실은 늘 잔인하다.
축구협회와 현 국대감독이 손 선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지만 "설마.. 손 흥민을?"이라고 넘겼는데 월드컵 전 마지막 평가전을 마치고 쓰인 기사와 감독의 인터뷰를 보면서 대한민국 국민으로서, 한국 축구를 응원하는 사람으로서, 영웅 손흥민을 사랑하는 팬으로서 실망을 넘어선 분노를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대다수의 국민이 축협과 감독을 향해 잘못을 지적하고 나서자 교묘하게 선수의 에이징커브를 들고 나온 지극히 몇몇의 스포츠 기사와 비겁한 감독의 언론 플레이..
현 감독의 손흥민 무시와 비하는 이미 오래전부터 기사화되었고 현장에서 잠깐씩 비치는 모습을 보고도 보이지 않는 부분까지를 짐작하게 만드는 재주를 가진 인성의 소유자임을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까지? 할 줄은 미처 몰랐다.
본인의 부족한 국가대표 감독으로서의 무능과 무지성, 무책임이 빚은 지금의 상황을 예상하고 <욕받이>로 사용하기 위해 손 선수를 받아준 게 아니라면 더 이상 비겁해지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손 선수가 나온 뒤 토트넘을 보면서 느껴지는 바가 없는가? 그것은 우연이 아니라 필연이었다. 선수 한 명의 끊임없는 희생과 열정이 만들어 냈던 기적을 그는 토트넘에서 만들었고 우리는 보았던 것인데 그것마저 부정하려 하는가? 대한민국 축구팀은 손 선수가 없어도 건재할 거라는 아니 후배들이 클 수 있어서 더 좋은 결과를 낼 거라는 희망찬 청사진을 그리고 있는가?
그래서 나는 손 선수에게 "이제 진짜로 여기까지야"라고 말하고 싶은데 아마도 그는 멈추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마음이 아프다.
어떤 상황에서도 예의와 미소를 잃지 않던 그가, 무례한 팬에게 짜증을 낸 동료를 붙잡고 인사하게 하던 그가 정색을 하고 내뱉었다는 "리스펙"이라는 단어가 유독 가슴에 와서 박히는 이유이기도 하다.
*큰 딸네의 깜짝 이벤트로 토트넘에 가서 직관할 수 있었던 2024년 늦여름의 어느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