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지축이 흔들리는 시간

갱년기 우울과 불안에 대한 소회

by Justitia

막연한 두려움이 밀물과 썰물처럼 드나든다.

밀물이 되어 들어올 때면 작은 움직임 하나에도 쉽게 두려움은 절망으로 변하여 나를 포위한다.

그 감정이 나를 에워싸고 있는 동안에는 보이지 않는 선들이 내가 움직이기라도 한다면 어디서든 붉은 사선으로 변해 공격할 것 같은 두려움에 서서히 잠식당한다.

그렇게 시작된 절망은 순식간에 무한대로 넘어갈 것을 익히 알기에 마지막 깨어 있는 내 지성의 자락을 붙잡고 기도하며 발버둥을 친다. 끝이 아니라 새로운 시작임을 깨닫게 하소서!


그 깨달음의 주체는 누구일까?

끝없는 절망감과 자조의 주체는 누구일까?

모두가 "나"이다. 내가 나를 죽일 수도 살릴 수도 있는 주체인 것이다.

어느 날부터일까? 내 기억으로는 완경이 시작되면서부터였을 게다.

아니다.. 초경이 시작되던 해부터 40년에 가까운 시간 중에 한 달이면 열흘 가까이를 여자이기에 견뎌야 하는 시간이라 치부하기에는 너무도 길었던 시간들 동안 수도 없이 탈생리를 바랐던 나는 완경이 왔음을 느끼던 순간들의 초반에는 무척이나 기뻤고 홀가분했다.


그렇게 중년의 시간- 내려놓음의 시간-들은 시작이 되었다.

완경이 되면서 비로소 여자다움과 여자로서의 굴레에서 조금은 벗어나게 되었고 자식들이 품 안에서 벗어나면서 엄마로서의 의무에서 한 발 물러나게 되었으며 연로하신 부모님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겪으면서 자식이라는 애증이 교차하는 책무에서도 벗어나게 되었다.


이제 이론적으로 나는 인간사 모든 무게들로부터 홀가분해졌기 때문에 나의 감정 또한 가벼워지고 산뜻해져야 하는 게 맞는 말이었다.


그런데.. 갱년기가 시작되고도 한참이 지난 지금 나는 삶의 지축이 흔들리는 불안을 하루에도 몇 번씩 겪고 있다.


호르몬의 변화로 얻게 된 완경은 그동안 지겹도록 길었던 생리시간 동안 세뇌되어 버린 내 영육 탓인지, 여성으로서의 책무를 다했다는 홀가분함에 이어 오묘한 성의 정체성에 대한 자각을 불러일으켰다.


"나는 이제 여성과 남성으로 이분되는 세상에서 어느 쪽에 서야 하는가"


스물다섯이라는 상대적으로 이른 나이에 시작된 엄마라는 이름의 퇴직 없는 평생직업에서 아이들의 독립으로 시작된 반 자율적인 업무축소는 탈생리처럼 기쁨이 아닌 처음 느껴보는 상실감으로 시작되었다.


<빈 둥지증후군>이라 명명된 이름처럼 나는 갱년기의 시작과 더불어 첫 아이를 떠나보내야 했고 그 시간들은 너무나도 빠르고 자연스럽게 진행돼 미처 내 감정들과 이별을 하지 못하고 아이가 떠난 후에야 조금씩 하지만 불쑥불쑥 내뱉어야 했다.

하지만 그 감정표현 역시 <부모>라는 이름에서 자유롭지 못하고 <어른>이라는 자의식과 사회적인 통념 안에서 나는 끊임없이 통제해야 했기 때문에 참다가 분출돼 나오는 그것은 정말 불쑥 이었다. 다듬어지지 못한 날것의 감정들로 그전에 경험하지 못한 무디면서도 거친..


그리고 찾아온, 영원히 나에게는 없을 것만 같았던 부모와의 사별은 위태롭지만 나름 잘 버티고 있다고 자신하던 나의 중년을 박살 내 버렸다.


스물여섯의 나이에 유학으로 시작된 내 타향살이가 서른 해를 넘기리라고 상상해 본 적이 없기에 나의 기억과 정신연령은 늘 스물여섯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고 한국에 다니러 갈 때마다 새롭게 자각해야 했던 내 부모에 대한 아쉬움과 미련들이 시간이 지날수록 진해져 가고 있던 그 시점에 연달아 받게 된 부고는 갱년에 접어든 나를 박살 내기에는 완벽한 필요충분조건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형제들과의 불화.

고소로 치달은 막장 드라마 3년을 겪으면서 내 뇌리 깊은 곳에는 영원한 불치병이 돼버린 우울과 불안이 자리 잡은 것 같다.


하루에도 수십 번 감정의 롤러코스터를 타면서 멀미를 하곤 하지만, 멀미가 심할 때는 그만 내리고 싶기도 하지만 그래도 버티고 있다. 먹어야 하는 약들이 하루가 다르게 늘어나면서 이렇게까지 살아야 하는 이유를 나는 오늘도 열심히 찾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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