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51
-내 삶의 한때 주인공이었을

영화 '건축학개론'

by 월영

왜 궁금하냐고 남자는 성난 눈동자로 여자를 향해 묻는다. 남자는 정말 몰랐을 것이다. 아니 자신이 없었을 것이다. 여자도 나를 좋아했을 것이란 확신이 끝내 들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좋아하는 여자가 나를 좋아할 확률이 사실 얼마나 될까? 소심하고 순진한 남자는 그 확률 게임이 난생처음이었다. 게임의 룰도 모르는 상황, 승자가 되기에는 모든 것이 서툴렀다. 그러나 어쩌랴. 돌이켜 보건대 그 불안과 열패감이 이십 대 초반. 풋풋한 새내기 대학생의 숨길 수 없는 모습이자 우리 순박한 청춘들의 자화상이기도 했을 터이니.


영화 ‘건축학개론’은 첫사랑에 관한 영화다. 1996년 서울의 대학교 신입생들이 주인공이다. 남자는 건축학과 새내기, 여자는 피아노를 전공하는 음대생이다. 제주도에서 피아노 학원만 다녀 서울 음대로 진학한 여자는 아나운서가 꿈이다. 그 꿈을 위해 방송반에 들었고 신입생 여자라면 누구나 호감을 느낄만한 방송반 선배 때문에 전공과 상관없는 건축학개론을 듣게 된다. 남자와 여자는 거기서 만난다. 건축의 기본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동네에 대한 애정에서부터 비롯한다는 교수 덕분이었다. 교수는 각자 동네에 대한 숙제를 내주었고 남자는 여자가 같은 동네에 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통학하는 버스 노선이 같아서다. 그리고 여자는 어리바리한 남자에게 같이 숙제를 하자고 제안한다.


아마도 남중, 남고를 거쳐 또 남자들만 많은 공대에 들어간 남자는 그리 예쁜 여자와 말을 섞은 것이 처음이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쉽게 말을 놓지 못한다. 하지만 남성보다 정신적 성숙 속도가 빠른 여자는 동갑인 남자의 모습이 마냥 귀엽고 우습다. 짝사랑하는 방송반 선배도 있지만 마음 편히 대할 수 있는 남자랑 친해진다. 둘은 따로 만난다. 숙제는 핑계가 됐고 계속 만난다. 여자의 속을 알 수 없는 남자는 연애라면 도가 튼 것 같은 친구에게 그저 털어놓을 뿐이다. 재수생이면서도 고등학생, 중학생과도 연애를 하는 친구는 담배를 길게 피우며 숙맥인 남자를 위해 여러 조언을 아끼지 않는다. 영화의 웃음은 그 지점에서 발화되고 소소하게 터진다.


바다가 보이는 제주도에 집을 짓겠다며 어느덧 서른 중반이 되어 다시 찾아온 여자. 남자는 첫눈에 여자를 알아보지 못한다. 기억에서 여자를 애써 지웠을 테니까. 둘의 기억은 과거와 현재를 오가며 씨줄과 날줄처럼 얽히고 풀리기를 반복한다. 그 반복의 과정에 배어있는 정서는 ‘풋풋함’과 ‘아련함’이다. 보이지 않는 밀고 땅기기와 의심. 이제 자동적으로 계산되는 미래에 대한 수 싸움. 일상은 안으로부터 헝클어지고 정리된 감정들은 다시 흐트러지기 시작한다. 이 모든 것이 ‘첫사랑’이었기에 비롯되었다는 것을 관객들은 여자의 그 한마디에서 아! 하며 알게 된다. 그 찰나 자연스럽게 내 첫사랑의 기억으로 장면 전환이 된다. 영화의 여러 평범한 부분이 한 번에 해소되는 클라이맥스며 이 영화의 가장 큰 매력이 발산되는 지점이다.


자신을 되돌아보고 가슴 한 구석을 먹먹하게 할 때, 영화는 상업의 외피를 잠시 벗고 작가의 작품으로 변모한다.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은 전자보다 후자 쪽이 더 많은 지분을 가지고 있다. 그런 면에서는 주제 자체가 유리했다. 사실 첫사랑이란 그것이 미완이던 아픔이던 혹은 현재건 간에 인생에 새겨지는 첫 작품이 아니던가.


다만 ‘첫사랑’을 소재로 했다고 다 자신의 첫사랑을 되돌아보게 하지는 않는다. ‘건축학개론’은 그런 측면에서 첫사랑을 주제로 한 한국 영화 중 작품의 범주안에 들었다. 엔딩 크레디트가 올라갈 때 영화 속 주인공보다 내 삶의 한때 주인공이었을 그대가! 어쩔 수 없이 떠올려졌을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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