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52
-인간과 교감치 않고

고흐를 떠올리며

by 월영

토요일 오전. 남자는 반 고흐 전시회가 열리는 시립미술관으로 갔다. 오전 10시가 조금 지난 시간이었지만 미술관 안은 사람으로 붐볐다.


반 고흐. 백여 년 전 프랑스에서 숨을 거둔 네덜란드의 화가. 목사의 아들로 태어나 목사가 되려다 화가가 된 사내. 인간과 교감하지 않고 인간을 사랑했던 인간. 그래서 스스로 미치광이가 되어 자살한 영혼.


남자는 스무 살 중반 반 고흐가 동생 테오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예술가들의 내적 고뇌에 대해 어렴풋이나마 이해했고 자신의 편견을 반성했다. 그리고 언젠가 고흐의 실제 작품을 본다면 그 앞에서 ‘당신의 삶을 오해해서 미안하다’ 고백하고 싶었다.


그때 남자의 고민은 젊은 날 고흐의 고뇌와 크게 다르지 않아서였다. 남자는 신에게 가고 싶었고 그림은 아니지만 문학이 세상의 전부인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남자는 고흐처럼 신에 대한 믿음을 마음으로 도전하지 않았고 않았고 영혼을 맞바꾸는 소설가나 시인이 되지 못했다. 그리고 남들과 같이 밥벌이를 고민하며 평범하게 살아가는 소시민이 되었다. 남자는 그에 따른 말도 안 되는 부채감이 있었다.


남자는 고흐의 자화상 앞에서 십 여분 동안 멈춰있었다. 고흐는 모델을 구할 돈이 없어 자화상을 많이 그렸다고 한다. 그의 생전에 팔린 그림은 단 한 점. 남자는 고흐의 일생보다 복 받은 자신의 일상을 비교하며 안도했고 안도했지만 몇 차례 묘한 쓴웃음을 참지 못했다. 남자는 고흐의 그림들을 앞에 가서 뜯어보고 뒤에 가서 쳐다보고 전시관을 맴돌며 멀찌감치 바라보기를 반복했다.


그렇게 두 어 시간이 흘렀다. 남자는 '사이프러스와 별이 있는 길'을 다시 한번 응시하고 고흐의 작품들과 안녕했다. 살아생전 다시 저 그림을 볼 때 그 앞에서 어떤 말을 고흐에게 전할 수 있을까. 그 순간을 기약하면서 남자는 시립미술관을 나섰다. 들어갈 때보다 서 너 배 길어진 줄이 덕수궁 돌담길까지 늘어져 있었다. 살아생전 외면받은 영혼이 죽은 다음 이처럼 추앙받게 되는 것. 예술이 지닌 잔인한 숙명을 고흐는 자신의 삶에서 직감했기에 이승의 삶을 견딜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남자는 그 예술의 주체가 되지 않은 평범한 인생에 대해 오랫동안 감내하고 감수하고 또 음미하기로 새삼스럽게 마음먹었다. 남자는 십여 년 후 반 고흐의 작품 중 절반가량을 소장하고 있다는 네덜란드의 반 고흐 미술관에 가봐야겠다는 다짐도 했다. 그 길에 누군가 함께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잠시 들었지만. 고흐의 그림만큼은 혼자 봐야 한다는 생각에 고개를 저었다.


남자는 MP3 플레이어에 담아온 ‘빈센트’를 들으며 덕수궁 돌담길을 돌아 나왔다. 고흐의 그림은 백 년 후에도 영속하겠지만 자신의 영혼은 그렇지 않으리라는 생각에 남자는 묘한 스산함에 잠시 몸을 움츠렸다. 그러나 다행히 봄볕이 따스한 토요일 오후였다. 남자는 빈센트를 몇 번이나 반복해 들으며 그저 발길 가는 대로 걷고 또 걸었다.


눈에 보이는 광화문 거리의 부산함 뒤로 고흐의 그림에서 봤던 프랑스 아를르의 풍경과 프로방스의 그 빛나는 어둠과 뜨거운 태양 틈 사이로 묻어나는 연두와 노란 빛살 가득했던 밑밭의 따사로움이 아른거렸다. 어느새 봄볕의 아지랑이가 도로 위에서 춤을 추고 있는 3월의 토요일 오후였다.


-10여년 전 서울 시립미술관에서 열린 고흐 전시를 봤다. 이후 고흐의 작품을 보러 네덜란드에는 가지 못했지만 이후 한국에서 열린 고흐 전시와 프랑스 오르세 미술관에서 고흐의 그림을 몇 번 직접 친견했다. 지인의 고흐 미술관 여행기를 읽고 잊고 있던 글을 다시금 꺼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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