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동아리 여자 동기 녀석이 오래간만에 홈피에 와서 글을 남겼다. 몇 달 전 녀석의 홈피에 새로운 글이 올라왔다는 것을 보고 오래간만에 찾아갔더니 갓난아기를 안고 있는 녀석의 사진이 보였다. 결혼 3년 만에 한 생명을 잉태하고 이제 엄마로 불리는 삶을 살게 된 것이다. 그 사진에 축하의 인사를 남겼다. 그에 대한 안부를 전한 모양이다.
녀석의 외모는 학교에서도 손꼽혔다. 녀석을 따라 동아리에 들어왔던 동기 남자 애들도 있었다. 복학생 형들은 녀석을 놓고 서로 실랑이를 벌였다는 사실을 나중에 알게 됐다. 해가 지나 남자후배들 중에도 녀석을 보고 동아리에 가입한 놈들도 숱했다. 남자 동기 중의 한 명은 녀석을 짝사랑하느라 눈물을 쏟기도 했다.
다행히 나는 녀석에게 한 번도 이성적인 끌림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물론 녀석도 마찬가지였을 게다. 그래서 아무리 녀석에 대한 주변의 이야기를 들어도 그런가 보다 했다. 대신 녀석은 신앙심이 깊었고 그 신앙심이 부러웠다. 그 신앙의 방식이 나와는 달랐지만 녀석의 신앙으로 인해 내가 부끄러운 적이 종종 있었다. 따로 만나 수다를 떨고 시간을 같이 보낼 정도로 친밀하게 지내지는 않았지만. 그래서 서로에 대해 신뢰는 있었던 것 같다. 내가 가장 마음 아팠던 것에 대해 녀석에게 털어놨었고 녀석 역시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가장 먼저 도움을 청했다. 내가 생전 처음 운구를 했던 게 녀석의 아버지 장례식이었다.
결혼 후 3년 간 녀석은 아이를 갖기 위해 무던 애를 쓴 모양이었다. 한 번의 유산으로 심신의 상처를 입었고 다시 아이를 가졌으나 위험했던 순간이 있었다고 적었다. 그래서 동기들에게 제때 연락을 하지 못했다며 미안해했다. 그간의 사연을 읽다가 알 수 없이 가슴이 찡했다. 나와 같은 해에 태어났지만 지금 내 삶과 녀석의 삶은 크게 달랐다. 그 간극에는 내가 미처 가늠치 못할 삶의 깊이와 고통. 그리고 환희가 묻어있었기 때문이었다.
감기만 앓아도 세상만사 다 귀찮고 퍼져버리는 게 내 삶의 모습이다. 하지만 녀석은 몇 차례 입원과 수술을 경험했고 그 와중에 아이를 잃었고 천만다행으로 아이의 엄마가 되어 지금 행복을 만끽하고 있다. 그런 소식을 담담히 전하는 녀석의 마음이 고마웠다. 내가 한 사람에게 그래도 무언가를 털어놓을 수 있는 존재로 살았구나 싶어서였다.
녀석 외에도 결혼을 한 동기 여자 녀석들은 가끔 내게 안부를 전하며 마치 누이라도 된 양 넌지시 장가 언제 가냐고 물어온다. 어느새 애들 엄마가 된 그녀들이기에 전처럼 삐닥히 답하기도 어렵다. 자신의 몸뿐 아니라 남편과 아이들의 삶까지 곁들어 건사해야 하는 그네들의 삶을 나는 존경한다. 그런 모습은 결국 나를 키운 어머니의 삼십 대와 일치한다. 내가 기억하는 어머니의 삼십 대가 어느덧 내 여자 동기들의 삶과 겹치기 시작하니 '세월 빠르다' 고 한숨을 한 번 내쉬어 본다.
녀석이 쓴 안부에 어떤 말을 써야 할지 고민하다 자판을 두드리게 됐다. 녀석에게 내가 해 줄 수 있는 건 이렇듯 너에 대한 이야기를 글로 남겨주는 거라고 적어보련다. 그리고 그 횟수가 자주는 아닐지라도 우리가 나이를 먹어가는 동안 간혹 너의 이야기가 내 글에 등장할 것이라고 덧붙이련다. 우리는 같은 해 태어난 동기이고 유별한 남녀 사이지만 그래도 서로 평등하게 바라볼 수 있는 친구로 만났기 때문이니까.
-이제 대학 동기들의 아이들은 어느새 초등학교 저학년도 아니고 고학년이다. 다시금 세월이 빠르구나 싶다. 그 세월이 흘러도 따라갈 생각은 아니하고 제자리에 있는 이들이 있다. 물론 그들 중에 하나가 나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