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54
-나름의 식신로드

by 월영

퇴근길 전철역에서 마을버스를 타지 않고 집까지 종종 걷는다. 큰길로 걸어올 때도 있고 골목길로 걸어올 때도 있다. 며칠 전 큰길 대신 골목길로 걸어오는 데 3층 건물 1층에 조그만 식당 하나가 눈에 띄었다. 대개 주택가 골목의 식당이란 분식집이나 백반집인데 그곳은 함박스테이크와 파스타 전문이라고 붙여놨다. 테이블은 대여섯 개로 많지 않았다. 눈짐작으로 대여섯 평 되는 규모. 흘깃 보니 30~40대로 보이는 여자분 두 분이서 운영하는 듯했다. 과하거나 어색하지 않은 적당한 인테리어에. 처음 장사를 하는 거 같지 않은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애초 먹고 싶었던 저녁 메뉴가 있었지만 여의치 않아 동네로 가는 지하철을 탔다. 동네 전철역에 도착할 때까지만 해도 혼자 먹기 가장 만만한 초밥에 맥주 한 잔 먹고 들어가려 했지만 지하철 계단을 올라오면서 마음이 바뀌었다. 그 식당이 생각나서다. 결국 함박스테이크를 파는 식당에 갔다. 들어갔더니 테이블 하나에만 남녀 커플이 식사를 마치고 담소 중이었다. 메뉴판을 첫머리에 놓인 것은 함박스테이크. 그중 제일 비싼 1만 2000원짜리 토마토 핫 소스 함박스테이크를 시켰다. 물론 병맥주 하나도 곁들여서.


동업자인 듯 보이면서도 약간 도제 지간인 거 같은 두 분은 이야기를 주고받으며 바로 조리를 시작했다. 찬장 후드나 주방 세팅 해 놓은 것이 간결하면서도 짜임새 있어 보였다. 5분 정도 흐른 뒤에 메뉴가 나왔다. 양파를 태운 것이 약간 아쉬웠지만 1만 2000원짜리 치고는 구성이 알찼다. 무엇보다 자체적으로 만든 피클이나 밑음식들이 마음에 들었다. 밥 역시 적당히 찰지면서 밥알이 살아 있었고 계란이나 소스가 눙이겨져서 흐물거리지 않았다. 샐러드도 아삭 씹는 맛이 났다. 함박스테이크 특유의 달달한 육즙에 과하지 않은 매콤함이 잘 어울렸다. 또 먹는 나를 신경 쓰지 않고 각자 일을 분담하는 모습도 편안함을 주었다. 가게 안에 TV는 켜놓지 않았지만 음악이 괜찮았다. 아델을 비롯해 최신 팝이 적당한 볼륨으로 흘러나왔다.


누군가 없다는 이유로 지금 내가 누릴 수 있는 일상의 다양한 즐거움과 만족을 외면하는 것도 결국 나 스스로 자신을 불행하게 하는 일이다. 게다가 맛있는 음식은 혼자 먹어도 맛있다. 게다가 맛이 주는 만족감은 관계에서 얻을 수 있는 교감의 기쁨과 달리 지극히 자기중심이며 동물적인 본능을 총족시킨다. 그 충족은 생존경쟁에서 남과의 비교를 통해 소진되고 소모된 우리의 자존을 되살려준다.


오늘 간 동네 식당은 전반적으로 만족스러웠다. 본 메뉴뿐만 아니라 사이드로 나오는 음식들에도 손맛과 주방의 정성이 느껴졌다. 옆의 커플이 먹은 접시를 보니 봉골레 파스타였던 듯. 접시가 깨끗했고 바지락 껍데기가 넉넉히 쌓여 있었다. 그간 퇴근길 동네에서 함박스테이크나 파스타, 스파게티를 먹을 때가 마땅치 않았는데 이 집 덕분에 메뉴가 하나 더 늘었다. 이렇게 해서 퇴근길 나름의 식신로드가 거의 완성 단계에 이르렀다. 초밥은 어디, 떡볶이는 어디, 어묵은 어디, 튀김은 어디, 국수는 어디, 백반집은 어디, 누룽지 먹고 싶을 땐 어디, 버거가 먹고 싶을 땐 어디, 부대찌개가 먹고 싶을 때는 어디, 커피가 마시고 싶을 땐 어디 등등.


그 길에 동반자가 있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않더라도 종종 내 허기를 채우러 기죽지 않고 갈 것이다. 같이 갈 사람이 없다는 이유로 먹고 싶은 음식조차 먹지 못하고 미루기에는 인생이 그리 길지 아니하다. 무엇보다 모르는 남에게 정성껏 음식을 차린 이들에게 잘 먹었습니다. 맛있게 먹었습니다. 하고 인사하며 나올 때 형성되는 묘한 공명은 또 마음으로 느낄 수 있는 일상의 맛이기도 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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