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에게 사심 없이 축하받는 일은 기쁘다. 축하받기 위해선 좋은 일이 있거나 계기가 있어야 한다. 별다른 이유 없이 오직 그날이란 이유로 1년에 한 번 축하를 받는 때가 있다. 바로 생일이다. 평범한 가정에서 태어난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일이 자신의 생애 첫 '축하받는 경험'일 것이다. 생일이 의미가 있는 건 내가 태어났다는 사실 그 자체보다 내가 어떤 행위나 결과 없이 누군가로부터 '축하'라는 정서적 지지를 받은 첫 번째 기억이란 점이다.
차분히 돌이켜 보면 유년 시절 어느 날에 내 생일이라고 부모님이 알려주셨고 맛있는 음식으로 상을 차려 주셨다. 그리고 어린 마음에 내 생일에는 모든 식구들이 나를 위해 하루를 보내야 하는 양 당연하게 생각했다. 어느 정도 커야 나뿐만 아니라 부모님도 생일이 있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자식들은 자신의 생일보다 부모의 생일을 먼저 알지는 못한다. 자식이 자신의 생일을 인지하기 전 부모가 먼저 내 생일이라며 어린 자식에게 축하를 해달라고 스스로 말하는 경우를 들어 보지 못했다.
실은 본인보다 부모에게 각별한 게 생일이다. 부모가 생일을 기억하지 못한다면 아이가 생일을 알 수 있는 방법은 없다. 내가 태어난 순간을 떠올려 봐도 기억이 날 리 만무하다. 내 기억의 시발점은 어머니 자궁을 벗어나 처음 빛을 본 그 순간이 아니다. 하지만 보통의 부모는 자식이 태어나 빛을 받아 반짝이던 그 생명체의 온기를 잊지 못한다. 게다가 어머니는 처음 자신의 뱃속에서 나온 자식이 현실의 시공간과 접촉한 그때를 오롯이 기억한다. 그래서 그 날은 어미의 일생 중 그저 흘러 보낸 수 만 번의 하루 중 하나가 아니라 오직 그 날 자체로 존재한다.
그런 맥락에서 태어난 날을 기억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생일은 인간이 동물과 다르다는 증거 중에 하나다. 시공간에 대한 인식, 본능이 아닌 이성 등 문명을 쌓아오며 인간은 생일을 기리기 시작했다. 그 연원은 자식을 낳은 어미에게 있었을 것이다. 꽃바람이 불 때 아이를 낳았지. 비가 내리는 날에 아이를 낳았지. 들판에 이슬이 맺히는 날 아이를 낳았지. 눈이 내리고 물이 어는 날 날 아이를 낳았지. 마침내 천지사방 변화를 관찰한 끝에 시공간을 나누어 월과 년을 규정할 수 있게 되자 인간은 자식을 낳은 시기를 기록했다. 그리고 어느 때부터 해가 바뀌어 그 날이 돌아오면 이를 기리고 축하했다. 추정해 보건대 인류 최초의 생일은 결국 자식을 낳은 부모가 자식이 세상에 나온 때를 기억했기에 시작했을 것이다.
만으로 마흔 하나, 한국 나이로 마흔둘. 생일을 맞았다. 종일 빠듯했던 일정에 오후 7시까지 일을 하고 금요일 오후 막히는 길 자동차 운전대에 괜히 짜증을 내며 부모님 댁까지 두어 시간 만에 왔다. 몇 달 만에 뵌 어머니는 미역국을 차려놓고 기다리고 계셨다. 식사를 마치고 아버지와 어머니가 불러주시는 생일 축하 노래에 42개의 촛불을 껐다. 아버지는 축하한다며 별다른 말씀 없이 어깨를 몇 번 두드려 주신 다음 이내 들어가셔 주무셨고 어머니와 식탁에 앉아 이런저런 이야기를 주고받다가 분가하기 전 내가 지내던 방에 들어와 누워 생각했다.
이십 대와 삼십 대 중반까지만 해도 생일에 오히려 기분이 가라앉거나 이상한 서운함이 들곤 했다. 이성에 대한 연애감정을 지닌 사람으로서 소위 '연인'이라 하는 이로부터 생일을 축하받은 기억이 드물어서다. 어느 때부턴가 생일은 남녀 사이에 특별한 날이 되었고 교제하는 연인이 없이 생일을 맞이하는 미혼 남녀들은 축하보다 오히려 주변에서 위로의 대상이 되었다.
다행히 나이를 물리적 세월로만 먹는 게 아니라서 몇 해 전부터 비록 '연인'으로부터 축하는 없지만(연인이 없으니 당연) 그렇게 서운하거나 우울한 느낌이 들지 않았다. 그 이유가 무엇인지 이제야 어렴풋 깨달았다.
나는 기억하지 못하는 내 생애 첫 순간. 그 날이 돌아올 때마다 변함없이 축하해준 첫 번째 대상. 그분들의 존재가 어느덧 내 또래 혹은 나보다 어린 연배의 이들 모두에게 동일하지는 않은 시기까지 왔다. 하여 생일이면 서러워 남몰래 눈물짓는 이들에게 또 나는 비록 늦게까지 짝을 만나지 못한 이일지라도 한없이 부러운 누구일 수 있음을 생일을 마흔 두번이나 지난 지금에야 겨우 눈치를 챘다. 그 깨달음이 올해 내가 받은 가장 큰 생일선물 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