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56
-가을밤의 허기도

by 월영

인정하기 힘들지만 속내를 들여다보면 그렇다. 종교적인 이유 등 특별한 소신 외에 혼자 사는 사람들. 여기에서 살짝 부언하자면 ‘내가 그래도 중간은 가지 않나?’라고 내심 자신감 있는 이들 마음 한구석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는 일종의 로망이자 착각이자 바람. 그리고 자신의 싱글라이프를 버티게 하는 근본적인 확신.


‘더 좋은 누군가, 혹은 더 매력적인 누군가, 더 나은 누군가. 궁극에는 나의 완전한 소울 메이트, 그러니까 천상배필이 있을 것이다.’


그 확신은 안타깝게도 나이를 먹을수록 주변 다른 사람들의 기혼 인생을 보거나 스스로의 이런저런 만남을 통해 강화한다.


예컨대 이렇다. 가까운 이들 중에 누군가는 어느 날 연애에 빠지고 결혼에 이른다. 그 결혼 이후에도 서로 간의 신뢰와 애정으로 ‘알콩달콩’ 살아간다. 아이를 낳고 가족끼리 의지하며 일상의 소소한 행복을 누리면서 그 행복에 대한 자부심에 굳이 숨기지 않는다. 배우자 흉을 보면서도 결국 남는 건 ‘그래도 내 사람이 있다’ 내지 ‘내 가족이 있다’로 귀결한다. 그리고 아무렇지도 않은 듯 한마디 한다. 너도 네 짝이 있을 거야.


반대의 경우도 있다. 연애를 하는 것 같아 보이지만 그 안에 불행이 스며있는 이들도 있다. 무언가 솔직하지 않은 상황에서 연애를 하다 헤어진다. 차라리 헤어지면 다행일 수도 있겠지만 그러다 또 쫓기듯 결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그 결혼 덕에 자신들의 숨겨진 재능을 발견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재능은 영화나 연극 드라마를 통해서만 빛을 발할 뿐 현실에서는 한마디로 정의한다 ‘위선자’ 순화하면 겉과 속이 다른 인생. 더 합리화하면 악연으로 만난 이들. 그들은 희망보다 원망이 익숙하다.


중간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중간은 중간. 별로 눈길을 끌지 못한다. 실은 대부분이 두 가지 상황을 오고 가면서 그야말로 ‘지지고 볶으면서’ 살아가기 때문이다. 기혼이나 커플 바깥 카테고리에서 홀로 살아가는 싱글들. 그들 중에는 ‘아 저 사람은 정말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인가 보다’ 고개를 끄덕이게 하는 사람이 있다. 그 짐작의 이유는 뻔하다. 외모와 성격, 주변 환경, 직업 등등에서 뭔가 한 가지 결핍되어 보이기 때문이다. 문제는 자신 또한 누군가에게는 ‘혼자 살 수밖에 없는 사람인가 보다’라는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인데 이를 인정하면서도 겉으로 표현은 하지 못할 수 있고 또 주변 사람들도 그저 모르는 척해줄 수 있다.


우리가 서로에게 진실만을 말한다면 이 세상은 얼마나 상처받은 영혼들로 가득하겠는가. 영혼도 발가벗겨 놓으면 부끄러움을 타기 때문에 거짓이나 혹은 입에 발린 말들로 서로를 가려줄 필요가 있다. 그러라고 또 우리 인간들이 유인원처럼 ‘우우. 와와, 끼룩끼룩’ 같은 의성어가 아닌 우아한 언어가 있지 않겠던가.


그렇다면 ‘내가 그래도 중간은 가지’ 내심 이러한 자존감인지 자만심인지 현실 도피인지 외면인지 주제 파악을 못 한 건지 아니면 이 시대에 남아있는 로맨티시스트인지 낭만주의자인지 모를 싱글들은 과연 어떻게 해야 하는가. 백마 탄 왕자님이 나타나겠지. 신데렐라 같은 공주님이 나타나겠지. 운명의 반쪽이 나타나겠지. 하며 마냥 기다리는 것만이 대책일까?


아쉽고 김 빠지게도 해답은 없다. 다만 한 가지 인정하면 마음이 놓이는 사실만 있을 뿐이다. 그러니까 앞서 말했던 이와 같은 생각 내지 확신. 다시 상기하면 ‘더 좋은 누군가, 혹은 더 매력적인 누군가, 더 나은 누군가. 궁극에는 나의 완전한 소울 메이트, 그러니까 천상배필이 있을 것이다.’라는 마음으로 또 하루의 허전함을 버티어 내는 사람이 그저 나 혼자는 아니라는 것이다.


게다가 그런 사람은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혼자 사는 이유에는 여려 이유가 있고 오로지 ‘운명의 짝’을 못 만났다는 것으로 단순화할 수 없어도 이미 대한민국은 30대와 40대 혼자 사는 인구의 비중이 15%를 넘어섰다. 그리고 이러한 추세는 더욱 가팔라질 것이다. 대한민국의 1인 가구는 전체 가구의 벌써 27% 수준이다.


무엇보다 생각을 달리하면 또 커플로 살거나 결혼을 하는 이유는 그만큼 혼자 살 수 있는 능력이 약하기 때문 일수도 있다. 왕자님이나 공주님이 인생에 나타나지 않을 수 있고 운명의 상대는 내 인생과 무관할 수 있으나 결국 천상천하 유아독존.


인생의 행복이 인연에서 온다면 인생의 불행도 인연에서 오느니 인연 없는 인생은 행복의 만족도는 모를 수 있어도 악연에 따른 인생의 불행은 감당치 아니해도 된다. 적어도 사람으로 득 볼 것도 손해 볼 것도 없다. 하여 누군가는 또 이런 인생을 마냥 부럽게 바라보기도 한다는 것을 떠올려보면 문득 밀려오는 가을밤의 허기도 그리 처연하지 만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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