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적지 않은 이들이 어느 정도 생활이 안정된 이후에도 뭔가 몰입하거나 관심을 가져야 할 상황에 놓이지 않으면 권태와 허무를 느끼고 삶의 의욕을 잃어버리곤 한다. 그런 상황이 과도해지면 우울증이 오고 극단적인 경우 자살 충동도 느낀다.
주변의 기혼자들을 관찰해보니 결혼에 따른 여러 가지 상황과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늘 새롭게 출제되는 듯했다. 당장 풀어야 할 문제들 덕에 딴 고민이 들어올 심리적 여유도 없어 보였다. 이를 달리 보면 대개의 사람들에게 결혼이 비록 자신을 희생하는 것이라 버거워해도 처자식/남편 자식에 대한 고민과 책임감 등이 삶의 허무를 지탱해주는 버팀목 역할을 한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게다가 자기 연민의 함정에 빠지지 않도록 발에 채워지는 족쇄이자 몸을 묶어주는 안전벨트이기도 하다.
하지만 혼자 사는 사람들은 다르다. ‘결혼’ 자체를 고민의 후 순위로 놓은 미혼자들은 상대적으로 다른 것에 몰입하거나 관심을 가질 수 있는 상황에 놓인다. 즉 혼자만의 시간이 많이 주어지는 데 이때 ‘결혼’을 대체할 뭔가를 찾아내지 않으면 또 인생의 무의미와 허무함에 빠진다. 그래서 일로 도피하는 경우가 많다. 거기에서 성취감을 느끼고 자기만족을 경험한다. 멀쩡해 보이는데(?) 혼자 살다 보니 주변에서 종종 ‘워커홀릭’이냐고 물어오는 경우가 생긴다.
2.
자주 속으로 되뇌는 말 중에 하나가 ‘월급 받은 만큼만 일하자’이다. 중요한 일이야 잘 해야겠지만 굳이 남보다 뛰어나게 일을 잘하고 싶은 욕심은 별로 없다. 인생에 있어 ‘일’ 자체에 과도한 가중치를 두지 않아서다. 세상에는 일 외에도 할 만한 게 너무 많다. 사람이 ‘일’만 하라고 태어난 것도 아니다.
대신 그간 미혼의 시간을 돌이켜 보면 사람들과 어울림이 있었고, 산이 있었고 여행이 있었다. 거기에 관심을 기울이고 몰입하면서 ‘미혼’에 따른 결핍들을 채웠던 듯싶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선택의 상황’을 즐겼다. ‘어떤 사람들을 만날까?’ 하는 것부터 시작해 ‘어디 산에 갈까?’, ‘무슨 장비를 살까?’ 등등. 여러 가지 상황을 머릿속으로 상상해 가장 적합한 것을 찾아내는 그 과정 자체에 흥미와 재미를 느꼈다.
미시적이고 개인적인 상황에서나마 내가 주도권을 가지고 내 의지대로 결정할 수 있는 것에서 작게나마 ‘권력’을 누리는 것이다. 허나 이것은 ‘결정 장애’의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결정 자체의 심리적 조마조마함과 머릿속 계산 자체에 머물러 결정을 내리고 실행한 결과를 감당하지 않으려는 태도로 봐도 틀리지 않다.
3.
마흔 살이 넘어도 어쩌다 보니 혼자 살고 있는 나를 위한 선물을 하고 싶었다. 지난 10여 년 간 나름 성실히 살아온 만큼 스스로 보상을 해주고 싶었다. 남들보다 큰돈 모으지는 못했어도 어느 정도 자금을 쓸 수 있는 여유도 있었다.
가장 하고 싶은 것은 여행이었다. 히말라야 트레킹을 보름 정도 다녀오고 싶었다. 하지만 돈은 있어도 시간을 도무지 낼 수 없었다. 연차가 아직 열흘 남짓 남았기에 이론상으로는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마흔 기념으로 2주간 여행 다녀오겠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한국의 직장은 거의 없다. 더군다나 부원도 부족한 부서에서 하루 연차도 버거운 상황. 몇 번이나 일정을 보다가 포기했다.
여행을 포기한 다음 떠올린 것은 차를 바꾸는 일이었다. 타고 있는 2005년형 SUV 차량 상태가 무척 양호했지만 뭔가 ‘큰돈’을 쓰고 싶은 욕망이 날로 커졌다. 그리고 자동차 회사 홈페이지부터 시작해 온갖 중고차 거래 사이트까지 ‘클릭질’을 시작했다.
녹초가 되어 집에 돌아온 밤에도 업무 시간에는 없던 생기와 활력이 종종 느껴졌다. 그 과정에서 새 차를 사는 데 따른 비용을 계산하다가 ‘잘 타지도 않는 멀쩡한 차를 굳이 바꿔야 할 필요가 있나?’는 문제로 되돌아기도 여러 번. 여기에 산에 갈 때 편한 사륜구동 자동차를 살까. 아니면 더 늦기 전에 스포츠카를 몰아볼까? 수입차 중고가 싸다는데 이참에 수입차? 같은 질문들을 또 반복했다. 그러다 보니 근래 다른 잡념들은 사라졌다. 오직 ‘차’를 고르는데 신경이 쓰여서다.
4.
이 차를 사면 어떤 점이 좋고 어떤 점이 나쁘고 등등의 시뮬레이션으로 벌써 국산차 및 수입차 수십 대의 차량을 비교 분석하며 대차대조를 했다. 결론적으로 ‘차’를 둘러싼 여러 문제들 덕에 혼자 살아 허허로울지도 모르는 일상의 시간들을 흥미롭게 보냈다.
이러한 스스로를 보면서 어쩌면 미혼과 비혼이 늘어나는 심층적인 이유 중에 한 단면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었다. 뭔가를 상상하고 가능성을 타진하는 그 과정이 주는 쾌감이나 만족감. 혹은 자족감, 그리고 자기합리화에 중독되면서 차를 사든 말든 빨리 결정하면 될 일을 몇 주 동안 끌고 끌었기 때문이다.
경우의 수가 계속 늘어나고 그 하나하나를 확인하며 내게 주는 만족감을 저울질하는 게 은근히 자아 충족감을 준다. 제한된 환경에서나마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무엇을 확인하는 순간들이기 그렇다. 물론 ‘사람’과 ‘물건’은 다르다는 것을 알면서도 말이다.
그게 습관이 되고 몸에 익으면 결국 누군가를 선택하고 혹은 누군가에게 선택을 당하고 그 관계를 위해 다른 것들을 포기하는 삶은 점점 더 멀어질 수 있다. 다만 나 역시 누군가에게 비교가 되었을 것이고 지금도 누군가를 속으로 비교할 수 있다는 것은 인정한다. 그러다 놓치는 삶의 안정감이나 혹은 타인과의 일체감은 내 인생에 부재로 남을 것 역시도. 비교와 선택의 긴장과 설렘을 즐기는 데 따른 일종의 형벌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