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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 66 -행복 뒤에 감당해야 할

고양이 동거기

by 월영

"앞으로 계속 신경 쓰셔야 합니다. 마음의 준비를 하셔야겠어요."


수의사 선생님은 염려를 담아 진단 결과를 알려주셨다. 알레르기든 아토피 든 간에 앞으로 키우는 데 비용도 많이 들겠거니와 평범한 고양이와 달리 계속 특정 사료만 먹여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해주셨다. 그 말을 듣고 녀석이 왜 유기가 되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수의사 선생님은 "유기묘는 잘 살피고 데려오셔야 하는데"라고 말끝을 흐리셨다. 오히려 내가 담담히 답해드렸다. "뭐 어쩔 수 없지요. 제 팔자려니 하겠습니다."


임시보호를 해주셨던 분은 미리 언질을 주셨다. 피부병이 있고 병원에서도 정확한 원인을 찾지 못해 사료에 따른 알레르기인지 살피기 위해 특정 사료만 먹이고 있다고. 그 사료를 거의 다 먹었을 무렵 우리 집에 왔다. 임보를 해주신 분은 처음보다는 피부가 많이 좋아졌다고 했다. 실제로 그랬다. 사타구니 정도에만 피부병의 흔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당부대로 가져온 사료만 먹였다. 하지만 종종 사료를 남겼고 계속 같은 사료만 먹는 것이 불쌍해 캔 사료 등을 준 것이 화근이었다. 피부에 발진이 일어났고 그루밍을 과도하게 하며 자기 살을 뜯었다. 구토도 했다. 문제는 내가 녀석을 종일 지켜보지 못했다는 것. 어느 날 퇴근해 보니 녀석의 몸 여기저기의 털이 뜯겨 있었고 붉은 발진이 나 있었다. 답답할 거 같아서 채우지 않았던 넥 카라를 서둘러 찾아 채웠다.


책을 찾아보고 인터넷을 뒤졌다. 정확한 진단을 하기 어려웠다. 고양이도 소양증, 즉 가려움증이 있고 이것은 유전적인 경우가 있다는 글을 읽었다. 고양이 서적에서는 강박증이 있는 고양이도 있다고 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자학적으로 그루밍을 해 자기 살을 해친다는 것이다. 결국 후배가 운영하는 동물병원에 데리고 갔다. 그 녀석에게 괜히 부담이 될까 싶어 연락을 하지 않고 갔다. 마침 그 병원이 공사 중. 다른 지점으로 갔고 그곳에서 진단을 받았다.


"형. 그 고양이 제가 직접 보진 못했는데 우리 선생님이 안타까워하시더라고 " 후배가 따로 전화해 냥이에 대한 이야기를 더 전해주었다. 노령묘에 피부가 좋지 않은 고양이. 특정 바이러스나 감염이 아니라 태생적으로 피부 알레르기나 아토피가 있어 완치가 어려운 고양이. 전해 들은 우리 집 냥이에 대한 진단이었다고 한다. 어리고 건강한 고양이도 많은데 왜 굳이 그렇게 고생이 빤히 보이는 고양이를 데리고 왔냐는 말까지는 하지 않았지만 그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이 전해졌다. "뭐 별수 있냐. 그래도 데려 왔으니 잘 돌봐줘야지. 다음엔 너한테 진단받을 테니 잘 봐주셔라."


고양이를 데리고 오려고 했을 때 수의사 후배가 있다는 것도 고려를 했다. 게다가 녀석은 고양이 전문. 물론 그 말을 녀석에게 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시절 연합동아리 후배. 한 20년은 제대로 연락하지 않았던 녀석이었기에 그랬다. 그래도 주변에 아는 수의사가 있다는 사실은 고양이를 데리고 오는 데 30% 정도는 영향을 끼쳤다.


처음 냥이를 진단한 수의사 선생님의 권유대로 털을 깎았다. 올해 첫 한파가 왔던 지난주 수요일이었다. 점심시간 짬을 내어 게이지에 넣고 병원에 가는 동안 냥이는 크게 야옹거리지 않았다. 병원 미용실에 맡겨 놓고 오후에 업무를 본 뒤 퇴근길에 데리러 갔다. 풍성했던 털 밑에 가려져 있던 몸 곳곳의 피부염증이 뚜렷이 보였다. 미용을 해주신 미용사께서 말했다. "고양이가 너무 순해요. 이렇게 순한 고양이 오래간만에 보네요.. 그런데 피부가 너무 좋지 않아서요. 원래 그랬나요?" 한 달 전에 데리고 온 유기묘라고 설명을 해드리고 고양이 미용도 처음이라고 말씀드렸다. 약용샴푸로 목욕을 해주는 방법 등을 물었다. "따뜻한 물로 해주셔야 하는데 쉽지 않을 거예요. 하지만 애가 너무 순하니까. 한 달에 한 번 정도는 약용샴푸 목욕을 해주면 좋을 거예요."

집으로 오는 길. 얌전했던 냥이가 갑자기 게이지 안에서 요동을 쳤다. 크게 야옹거렸다. 집에 와서 보니 케이지 안에 변을 봐놨었다. 적잖이 긴장하고 스트레스를 받았던 거 같았다. 고양이 전용 물티슈로 몸 곳곳을 닦아줬다. 그제야 냥이는 그르렁 거리며 자기가 좋아하는 거실 구석 책장 끝트머리로 가서 잔뜩 몸을 웅크리고 졸기 시작했다.


병원에 다녀오고 털을 깎은 뒤 냥이의 행동이 다소 달라졌다. 그야말로 서슴없이 내 몸에 안긴다. 야옹야옹 거리는 건 이제 일상이고 잠시라도 내 곁에 있으려 한다. 약을 발라주려면 한동안 실랑이를 해야 하지만 그래도 이제 눈곱을 떼어줄 때는 한결 얌전해졌다. 누워 있으면 배 위에 올라와 이른바 식빵 자세를 하고 나를 내려보고 거실 책상에 앉아 있으면 무릎 위로 올라오거나 어깨를 타고 오른다. 눈두덩이와 머리 위 정수리. 턱 아래, 목덜미 등을 쓰다듬어줄 때 골골거리는 소리는 더 커졌다. 뭔가 하려고 시선을 거두고 있으면 앙앙 거리고 얼굴을 와서 비비적거린다.


처음 냥이의 피부 발진을 봤을 때 마음이 아팠다. 그 아픔의 경도가 지금까지 느껴보지 못한 수준이었다. 부모님이 아플 때 느끼는 철렁거림은 아니었지만 약간의 짜증과 함께 말 못 하는 냥이가 또 얼마나 아팠을까. 싶어 애련했다. 약을 발라주기 위해 기어이 싫다는 녀석을 붙잡고 난리를 피고 나면 야속함이 이런 마음인가 싶었다. 너를 위해 내가 고생을 하고 있는데 정작 너는 나의 마음을 몰라주는구나.


동시에 세계를 인식하는 정보의 양과 사고의 패턴이 다른 존재를 위한다는 게 또 얼마나 쉽지 않은 일인가. 새삼스런 깨달음이 왔다. 유년시절 혹은 학창 시절. 내 어떤 행동들에 대해 화와 짜증과 호소와 역정을 동시에 내셨던 어머니의 모습도 생각났다. 약 바르길 거부하는 냥이를 앉혀놓고 알아듣든지 말든지 혼잣말하고 있는 나를 거울을 통해 물끄러미 봤을 때다.


이제 냥이가 우리 집에 온 지 5주 정도가 지났다. 냥이의 시간이 인간보다 4배에서 5배속으로 흐른다 하니 녀석에게는 서 너 달은 흐른 셈일 것이다. 우리 집에 충분히 적응을 했고 또 새로운 동거인에 대한 탐색도 끝냈을 것이다. 허나 아직도 나는 냥이가 어떤 존재이고 어떤 성격이고 어떤 개성을 가지고 있는지 잘 모르겠다. 고양이를 키우는 이들의 블로그 등을 살펴보니 고양이는 애초부터 그런 생물이란다. 합리와 논리로 이해하고 받아들이기 어려운 그저 자기 마음대로의 존재.


그런 존재와 함께 사는 게 피곤하고 귀찮고 역정이 날 때도 있다는 걸 이제는 머리가 아니라 마음으로 안다. 그 마음을 알게 되다 보니 또 어리고 무지한, 자신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생명을 키우는 일이 어떤 것인지에 대한 아주 약간의 가늠도 할 수 있다. 그 가늠을 어떤 이는 20대에 경험했고 대부분은 30대 초입에 한다. 그 가늠 덕에 또 뭔가 삶의 또 다른 면을 체감한다. 체감하는 것이 다양해지고 많아질수록 또 다른 존재에 대한 이해, 아니 오해는 덜 할 것이다. 나 외의 존재에 대해 오해하지 않으려는 삶. 이게 또 하나의 성숙이고 발전일 것이다.


냥이가 피부병이 있다는 말을 듣고 입양을 결심했다는 것을 누구에게 말하지는 않았다. 나 역시 약간의 피부염증을 갖고 있어서다. 고등학교 때부터인가 스트레스를 받으면 오른쪽 허벅지 부분을 긁기 시작했다. 그것이 버릇이 되었고 지금은 마치 약간의 화상을 입은 것처럼 그 손바닥 반만 한 부분이 거죽 거죽 하게 변색되어 있다. 환절기가 되거나 혹은 스트레스를 받으면 희한하게 그 부분이 또 간지러워 긁곤 한다. 어느 해 보니 내 바지 대부분이 오른쪽 허벅지 부분만 색이 바랜 걸 보고 놀랐다. 습관적으로 그곳을 긁었던 증거여서다.


퇴근하면 냥이가 현관문 앞으로 나와 한번 쓰윽 본 다음 또 못 본 척하다가 샤워하러 들어가면 야옹 거리며 인기척을 한다. 그러다 혼자 또 어딘가 가려운지 피부를 긁으려 애쓴다. 그럴 때 가서 녀석을 꼬옥 껴안고 아이 달래듯 추켜올려 창밖을 보며 이랬어 저랬어하며 달랜다.


냥이가 자식처럼 커서 내 말을 알아듣고 혹은 내 삶의 일정 부분을 부양해주지 않겠지만 지금의 내 삶에 주고 있는 한 가지는 분명하다. 살아있는 생명 자체의 소중함. 그 소중함은 아주 단순해서 서로 온기를 확인하고 말없이 시간을 보내는 순간에 찾아온다. 그 순간을 '일상의 행복'이란 상투어로 표현하기는 아쉽지만 또 다른 말을 찾아내지 못하기에 그대로 적어둔다. 그 행복 뒤에 감당해야 할 사람의 도리가 있고 이제는 그 도리가 무엇인지도 어렴풋 감이 잡힌다는 말과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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