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간 두세 번가량 소개팅을 주선했다. 그때 알았다. 차라리 서로 마음에 안 들면 깔끔한데 한 사람이 일방적으로 마음에 들어한다거나. 혹은 둘이 통하는 줄 알고 사귀다가 깨지는 경우. 괜히 주선자가 곤란해진다는 것을.
대학교부터 몇 해 전까지 소개팅을 한 건 어림잡아 스무 번은 된다. 딱히 누군가에게 소개해달라고 부탁한 적은 없었다. 그럼에도 종종 지인들이 자리를 만들어 주었다.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어중간함. 그리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 정도만으로도 면피용 소개팅남 정도는 되었던 모양이다.
그중에 두 번 이상 만난 적은 드물었다. 상호 간에 이성으로 생각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주선해준 지인들은 그래서 부담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중간에서 난처한 상황에 놓이지 않을 것임을 예감했기에 그러했을 것이다.
이성을 만나는 데 있어 딱히 적극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굳이 소개팅 같은 것을 하지 않더라도 동성이 아닌 가까운 지인들 덕에 이성만이 줄 수 있는 섬세한 유대감 같은 것으로 만족해서였는지도 모른다. 그 유대감은 타자화 한 이성이 아니라 여성만이 가진, 남성에게서는 느낄 수 없는 요즘 말로 '캐미'라는 것인데 그 캐미가 나에겐 다행인지 불행인지 '무성적'으로도 잘 형성이 되어 소통의 관계를 형성했던 듯하다.
남자사람친구까지는 아니더라도 남자사람선배, 남자사람오빠. 남자사람후배, 남자사람사람 이 주로 내 포지션이고 역할이었다. 물론 나 역시 여자사람친구, 여자사람후배. 여자사람사람 등등으로 내 주변 이성들을 대했다. 어쩔수 없는 짝사랑이 간혹 불거지긴 했어도.
소개팅에서는 가급적 '이성적 매력'을 어필해야 한다. 허나 내가 그런 매력도 덜하거니와 정작 상대가 그런 매력으로만 나오면 또 은근히 난감했다. 그건 나이 먹어서도 별로 변화가 없으니. 어느새 혼자 살 궁리가 자연스러워지고 있다. 무성욕자는 아니지만 인생이 또 성욕 만으로 채워지지 않는다는 것을 또 세월이 차근차근 알려주고 있다. 이러다 햇볕에 광합성하는 날이 올련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