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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독신으로 산다는 것-79
수능의 추억

독신 공감

by 월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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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수학능력시험 전날 아주 친하지 않기에 서로 친분을 돈독히 하고 싶어 했던 지인들과 술자리를 가졌다. 수능시험으로 다음날 출근 시간이 1시간 정도 늦춰진 덕에 평소보다 마음 편하게 술잔을 기울일 수 있었다. 날이 날인만큼 수능시험이 화제에 올랐다. 서로 개인적인 이야기를 나눈 적이 드물었던 탓에 수능시험 이야기하다 자연스럽게 각자의 나이가 어느 정도 밝혀졌다. 먼저 학력고사를 봤던 세대와 수능세대가 나뉘었다. 수능세대 또한 1993년 처음 수능을 쳤던 수능 1세대와 그 이후 수능을 쳤던 이들로 나이순 서가 드러났다.


동석했던 지인들 중에는 마지막 학력고사 세대였다가 재수해서 수능 첫 세대였던 이도 있었다. 첫 해 수능 때 여름과 겨울 두 번 치렀다면서 도합 세 번의 대입고사를 치렀다고 자랑 아닌 자랑을 했다. 한반도 기상관측 이래 2018년 이전 가장 무더웠던 1994년 고3이었던 나는 여름방학 때 섭씨 33도가 넘나드는 교실에서 자율학습을 하며 북한이 서울을 불바다로 만들겠다는 위협 속에서도 공부를 했다고 으쓱거렸다. 나 보다 나이가 어렸던 지인들도 그들 나름대로 물수능, 불수능 등등 저마다 수능시험에 얽힌 추억들을 이야기하며 모처럼 학창 시절로 돌아간 듯 재미있게 추억을 곱씹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각자 고향이나 전공은 달랐지만 문과생이란 공통점이 있었다. 문과생들의 공공의 적이었던 수리탐구 1에 대한 각자의 실패와 좌절의 기억들도 되살아나기 시작했다. 이때 별 말없이 듣고 있던 학력고사 마지막 세대이자 수능 첫 세대였던 지인께서 학력고사 때 수학 찍어서 10점, 수능 때도 수리탐구 1 찍어서 10점 나왔다며 믿거나 말거나 같은 이야기를 하는 바람에 다들 술잔을 부딪히며 웃었다. 수리탐구 1을 찍은 사람이 그 분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유독 수학에서만큼은 반 평균을 깎아 먹었던 나도 수리탐구 1 점수가 나오지 않아 막판까지 마음고생을 많이 했다. 그런데 수능시험 당일 1교시 언어영역을 별 어려움 없이 풀고 나자 이상한 자신감이 생겼다. 2교시 수리탐구 1 시험지를 받고 내 운명을 운에 맡길 수 없다며 차근차근 풀기 시작했다. 나중에 성적표를 받고 후회했다. 그냥 운에 맡길 걸. 평소 찍었을 때보다 점수가 더 높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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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십 대 중반 무렵, 가까운 후배 녀석이 결혼을 앞두고 술을 샀다. 술에 취하더니 녀석이 꼭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서 약간 정색을 하며 조언을 했다. 소개팅과 연애도 수학처럼 일정 부분 공식이 있다는 것이다. 자신도 그 공식대로 해서 소개팅에서부터 연애를 시작했고 학창 시절 이성에게 특별히 인기가 없었음에도 결혼을 하게 되었다며 내가 그런 공식을 몰라서 연애를 못하고 있다고 안타까워했다.


그러면서 처음 만났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고 몇 시간 정도 같이 있고, 연락은 언제 해야 하고 등등 수식 외우듯이 외우라고 강조했다. 그 모습에 진심이 느껴져 고마웠지만 약간 서운하기도 했다. 중학교 때 이미 수학을 포기했던 수포자라고 내가 녀석에게 누차 이야기를 했건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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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중고등학교가 가까운 시내 커피전문점에 앉아 소일하고 있었다. 그때 요즈음 과외는 커피전문점에서도 많이 한다는 사실을 알았다. 대학생처럼 보이는 사람들과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함께 앉아 머리를 맞대고 자리 곳곳에 앉아 문제집을 풀고 있었기 때문이다. 마침내 옆자리에도 대학생으로 보이는 처자와 고1 정도로 보이는 학생이 수학 참고서를 펼쳐 놓고 함께 문제를 풀고 있었다. 둘은 문제 풀기를 잠시 멈추고 잡담을 시작했다. 자리가 가까워 본의 아니게 둘의 대화가 다 들렸다. 수능시험 난이도가 들쑥날쑥해서 가르치기 어렵다는 과외선생과 그래도 샘은 대학생이니 부럽다는 학생 녀석이 티격태격 말을 주고받으며 서로의 신세를 한탄하는 게 어쩐지 귀엽게도 느껴지고 짠하기도 했다. 그때 학생 녀석이 과외선생에게 약간 흉보는 어투로 물어봤다.


“쌤. 울 엄마가 그러는데 자기 땐 수능 일 년에 두 번 쳤데요? 엄마가 뻥친거죠? 어떻게 일 년에 수능을 두 번 친데요 말도 안 돼”


지금 생각해보니 내 옆자리의 그 학생과 과외선생은 당황했을 거 같기도 하다. 뜬금없이 옆 자리에 아저씨가 혼잣말 비슷하게 “94년에는 두 번 쳤어요.” 말하고는 후다닥 자리를 떴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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