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의 이야기가 아닐 수 있다
1.
주변에 아이가 아플 때. 마음이 참 안쓰러우면서도 한편으로는 나는 저런 걱정 할 일이 없구나 하고 안심. 아이들 관련 각종 나쁜 소문들이나 혹은 뉴스를 볼 때도 어쨌든 ‘남의 일’이라 주변의 부모들보다는 공감의 폭이 깊지 않음. 물론 아이들에 대한 학대나 아이들이 고통받는 온갖 소식들에 대해서 화가 나지만 뭔가 양심에 꺼릴 것도 없는 상황에 안도. 아이에 대한 욕구는 남녀별로 다소 다르긴 하고 또 출산 육아가 실은 독신에 있어 큰 변수를 주는 문제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접근할 수는 없음.
2.
어디로 갈까 누구의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됨. 어떤 숙소에 묵을까 언제 떠날까 역시 상대적으로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음. 그렇지만 어느덧 가볼 데 다 가보고 딱히 갈 곳이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됨. 여기서부터 독신의 부정적인 모습을 절감하기 시작하면서 다 부질없다. 결혼하고 싶다. 가족을 갖고 싶다로 선회. 독신 중 여성들은 서른 후반, 남자들은 마흔 초반에 이 단계에 접어드는 경우가 많음. 그리고 스스로에 대해서도 좌절하며 후회하기 시작. 그때 그 남자, 그때 그 여자. 괜찮았는데. 그때 그 남자 그 여자들은 대부분 결혼해버린 상황.
자존심을 버리거나 눈을 낮추거나 혼자서 끙끙 앓기 시작. 자존심과의 싸움질 본격적으로 시작. 이때 이 모든 상황을 타개하거나 아니면 도피하기 위해 업무 모드 전환해서 슈퍼 워커홀릭이 되는 경우도 적지 않음. 그러다 몸 탈 나서 병원행. 다시 한 번 인생 숙고하기 시작. 난 뭐 했나. 돈이고 지위고 다 부질없다. 내편, 내 아이 남들은 있는데 나는 왜 없나 모드.
3.
남자는 궁상, 여자는 히스테리. 독신의 삶에서 결국 마주치는 심리적 혹은 정서적 난제들. 주변 사람들은 느끼지만 본인은 스스로 아니라고 착각. 이게 독신에 대한 인식을 나쁘게 하는 주요 원인이기도. 독신남의 궁상은 그나마 연민이라도 자아내는데 허세는 분노를 자아냄. 독신녀의 히스테리는 B사감과 러브레터 등 문학작품의 소재긴 한데 원래 성격인지 히스테리인지 사실 종잡기 어렵다.
영화 '선생 김봉두'의 홀로 고스톱 장면
4.
독신의 핵심은 ‘자립’ 스스로 홀로 설 수 있느냐. 없느냐의 여부. 경제생활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나 사회생활에서의 나름의 능력 필요. 여기에 주관이 있는 사람일수록 자립의 가능 높음. 자립과 주관은 그래서 상호보완적. 타의가 아닌 본인의 선택으로 자립해 독신인 경우는 상대적으로 독신을 ‘생산적’으로 받아들이며 뭔가 자기계발을 하던 일에서 성과를 내던 문화예술에 빠지던 스스로 혼자서 이런저런 역할놀이하며 세월을 버텨냄. 그 와중에 은근히 재미와 보람과 자기만족에 빠지기도. 영화 선생 김봉두에서처럼 혼자 고스톱 치는 단계까지 가버리기도.
5.
삶의 우선순위가 다른 것일 수도. 당장 어떤 것을 먼저 할 것인가. 그 상황에서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하는 것을 후순위에 두다가 어느덧 다른 건 다 이루고 연애와 결혼(중매와 결혼도)만 남아 있고 나이는 청춘을 지나버렸음. 혹은 연애와 결혼(중매와 결혼)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었으나 그것만 빼고 다른 것만 잘 됨. 어쩌겠나 그건 팔자이고 운 일수도.
6.
독신에 대한 글을 쓰는 이유는 단지 독신이라는 이유로 틀린 인생을 사는 듯한 시선들에 대해 "아니다 그렇지 않을 수 있다"는 걸 글로서 보여주고 싶어서임. 뻔한 이야기지만 다른 게 틀린 건 아니니까. 세상이 달라져서 아니 세상이 이제 발전해서 개개인이 개개인으로 누릴 수 있는 게 많아지고 그럴 수 있는 환경으로 변했기에 그 상황에 적응하는 사람이 늘어났고 그게 독신일 수도 있다는 것. 그게 또 나일 수도 있다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