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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May 25. 2022

그게 어떤 것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어 나는...

아버지께서 돈을 떼이셨다. 친구라고 믿었던 거래처 사장에게 돈을 빌려주셨다가 돌려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그 사장과 가까이 지내지 말라고 어머니께서 몇 번이나 주의를 주셨지만 끝내 아버지께서 어머니의 말씀을 듣지 않으셨다. 결국 당시 1억원 가까이 돈을 허공에 날리셨다. 대학 졸업을 앞둔 무렵이었다. 


아버지는 망연자실했고 그 친구라고 믿었던 사장에게 독하지 못했다. 신용불량자가 될 처지였다. 어머니는 아들 둘 과외 한 번 제대로 못 시키고, 대학 입학해서도 해외연수 한 번 보내지 못했는데 정작 아버지란 사람이 그 많은 돈을 써보지도 못하고 사기나 당했다며 분노하셨다. 그 분노에 아버지는 오히려 화를 내셨다. 동생과 나는 양미간을 찌푸리며 일찍 학교에 갔고 막차를 타고 귀가했다. 


수습을 해야했다. 연체된 카드값을 갚아야 했고 물건값을 지불해야 했다. 집을 전세 놓고 가게가 있는 경기도 북부의 군사도시의 임대아파트로 옮기기로 했다. 내가 기억하는 열네 번째 이사였다. 전세금으로 급한 돈은 막았다. 어머니는 다시 가게에 나가 미군에게 물건을 파시기 시작했다. 너희들만 아니면. 어머니는 종종 한숨을 내쉬셨고 아버지는 화를 내진 않으셨지만 말이 없어지셨다. 




처음에는 어머니께서 저어하셨다. 살던 집으로 다시 들어가는 게 좋지 않다는 풍문을 어디서 들으셨나 보다. 성당 다니시는 분이 그런 거 신경쓰면 안된다고 했더니 더 이상 말씀하시지 않으셨다. 


지난 1월 세입자가 나갔고 2월 말부터 인테리어 공사를 시작했고 4월 중순에 공사가 끝나 이제 들어와 살 집이 되었다. 이와 함께 내가 살고있는 집이 팔렸고 오는 9월 초에는 그 집을 비워주어야 한다. 살고있는 집과 살 집. 걸어서 10분 남짓 거리. 주말마다 천천히 짐을 옮기기로 했다. 가구와 가전도 새로 들이기로 했다. 


오늘 아침 어머니가 인테리어 공사 끝나고 처음으로 우리 가족의 옛집이자 앞으로 아들이 살 집에 다녀가셨다. 가구 배송을 받을 사람이 없어 어머니께 부탁을 드려서다. 어머니께서 나 대신 가구를 받으셨고 매사 깔끔한 어머니는 또 청소를 해 놓고 가셨다. 




군 제대하고 졸업 전까지 살았던 집으로 20여년만에 다시 돌아온 셈이다. 희한하게도 그때 이 집에서 살았던 기억이 세세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군대에서 보냈던 공간과 기억들은 오히려 선명한데 여기서 살던 때 이 집에 대한 기억은 극히 파편적이다 못해 오류투성이었다. 


가령 호수도 잘못 기억하고 있었고 집안 구조도 내가 생각했던 것과 달랐다. 덕분에 내 기억력을 확신하지 못하게 됐고 마흔 중반에 꽤나 낯선 충격을 받았다. 내 기억의 불완전성. 그 불완전성 탓에 나는 누구를 오해하고 있을 수도 있고 혹은 미화하고 있을 수도 있을 테니 말이다. 그리고 같은 시공간에 있었어도 사람마다 기억은 다르거나 아니면 아예 기억조차 못할 수도 있음을 새삼스레 깨달았다. 어쩌면 어떤 대상에 대한 사랑과 애정 때문에 기억이 존재할 수 있다는 것도.




어머니께서 댁으로 돌아가시며 이렇게 카톡을 보내셨다. 


“베란다 의자에 앉아 밖을 보니 콘도 온 거 같네. 이 집 처음 이사와서 짐정리가 안 돼서 우리 모두 거실에 이불을 깔고 누우니 밖에서 물 흐르는 소리가 졸졸 나고 앞은 훤하니 너희들이 '와우' 콘도에 온 거 같네 했지. 앉아보니 그 기분이다. 좋네”


이 집. 부모님과 동생과 내가 모처럼 한 곳에 모여 이불을 같이 덮고 자던 ‘우리 집’이었고 무엇보다 어머니가 가족의 울타리를 다시금 감내할 수 있도록 했던 곳. 여기에 대한 구체적 기억을 어머니는 가지고 계셨고 나는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시 그 기억을 떠올리려다 보니 내게 소중한 것은 무엇인가? 는 질문을 또 꺼낼 수 있었다. 


바쁘게 살아가던 일상 속 갑자기 툭 튀어나온 과거가 무언가 애련하고 애잔할 때. 그리고 그 과거와 지금까지 어떤 무엇이 주욱 이어져 왔다고 느낄 때. 잠시나마 시공의 제약을 넘어 삶의 깊이를 느낀다. 그 깊이가 행복과 등치되지 않을지라도 삶의 어떤 본질을 상기시켜준다.


그게 어떤 것인지 정확히 설명할 수 없어 나는 글을 쓴다. 나 외에도 누군가 나와 비슷한 경험을 통해 그 순간 속에 있었을 것이라 믿어서다. 그 순간에 대한 연대를 확인하다보면 차분해지고 따뜻해지곤 한다. 그걸 전하고 싶고 남기고 싶다. 오늘 어머니가 느꼈을 그 감정같은 것부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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