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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Jul 23. 2023

후배가 나보다 나은 길을 걸을 때


후배들을 만났을 때 10만원 안팎의 술값은 별다른 고민 없이 훌쩍 내는 선배가 되고 싶다. 


피곤이 쌓이고 쌓여 집에 가고 싶은 퇴근길에도 불쑥 전화하는 후배가 있어 “술 한 잔 사주세요”라고 하면 “그래? 어딘데” 하며 발걸음을 돌리는 선배가 되고 싶다.


딱히 내세울 건 없지만 그저 이런저런 이야기 들어주면서 “네가 잘못했네” 라고 다그칠 줄도 알고 혹은 “네가 잘했네” 편들어줄 수도 있는 유연한 선배가 되고 싶다. 


집에 찾아오겠다는 후배들에게 “잠깐만 10분만 기다려줘” 라고 말 한 뒤 주섬주섬 집안을 치우고 냉장고에 쟁여 놓은 맥주와 가벼운 안주를 꺼내 내심 설레는 마음 숨기지 못하고 현관문을 열어주는 선배가 되고 싶다.


열정적으로 일하는 후배들의 기를 꺾지 않고, 그 후배들이 일궈낸 성과에 진심으로 박수를 치고 그 몫을 내 것 인양 가로채지 않는 선배가 되고 싶다. 


후배가 나보다 나은 길을 걸을 때 ‘청출어람’은 숙명이고 진보. 라고 스스럼없이 받아들이되, 그 후배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선배로 남고자 나 역시 내 책임을 미루지 않고 내 힘껏 일하는 직업인이고 싶다.    


어느덧 나이를 먹고 주변에선 나를 선배라 부르는 사람이 더 많아졌다. 


한 때 사회의 진보를 거창하게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다르다. 나보다 나은 후배들이 계속 성장하고 그 후배들이 이 세대의 과와 공을 아로새겨 더 발전한 무엇을 이루게 하는 것이 진보라 생각한다.


받은 게 많았으니 주는 것도 많아야 할 텐데. 한동안 그리 살지 못한 듯하다. 받은 것만큼은 남에게 갚는 것이 어떤 주의나 사상 이전에 사람의 염치일진대. 그 역시 말 뿐이었던 듯하다.


모처럼 후배들과 이런저런 약속이 잡혀있는 한 주다. 


나는 어떤 선배로, 혹은 어떤 후배로 살고 있는지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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