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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독신 공감

1인분 살림도 재미가 있나요?

by 월영

요즘 살림하는 게 재미있다. 이사를 하면서 살림살이를 들이고 조립하고 정리하고 정돈된 집을 보면서 흡족해하는 과정을 몇 차례 반복하다 보니 그렇다.


오늘도 퇴근 후 저녁을 차려먹고 쿠팡에서 배송받은 작은 장 하나를 조립해 서재방의 잡동사니들을 다 집어넣었고 다이소에서 사 온 주방용품으로 싱크대 주변을 정리했다. 덕분에 이삿짐으로 가져온 그릇과 컵과 이런저런 주방기구들을 꺼내서 수납할 수 있었고 한결 집안이 깨끗해졌다. 그렇게 하라고 누가 시킨 일은 물론 아니다.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자기가 흥미를 느껴 무언가를 할 수 있으면 그게 또 일상의 행복이 아닐까 싶다. 자기가 사는 집을 자기의 취향대로 꾸미고 정돈하는 일이 아마도 내가 어렸을 적 어른들이 곧잘 말했던 ‘살림하는 재미’의 원형일 것이다.


자기 마음에 드는 물건을 골라 집안에 들이고 그 물건들의 배치를 고민하고 궁리하면서 느끼는 일종의 자기 주도성. 거기서 본인의 안목도 확인할 수 있고 타인의 손으로 만들어진 용품들의 용도와 쓰임세와 만듦세를 신기해하면서 결국 사람은 사람이 만들어 놓은 그 환경 안에서 살 수밖에 없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한다.


그래서 사람은 사람에게 착해야 하고 그래서 사람은 사람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데 이런 나이브한 감상은 물론 와인을 한 병 따서 한 잔 했기 때문에 드는 생각임을 인정하더라도 평온한 일상을 사는 1인으로서 응당 갖춰야 할 마음가짐 아닐까 싶다.


세상의 앞선 흐름들을 확인하고 그 안에서 얼마나 치열한 경쟁들이 벌어지고 있는지 확인하는 게 내 직업이지만 그런 세상의 흐름과는 별개로 내 일상생활에서의 자기중심은 흐트러지지 말아야 내가 타인이 정한 욕망에 휩쓸리지 않고 내가 정말 흡족해하는 무엇을 향해 한 걸음씩 나아갈 것이다.


그 한 걸음씩 나아가는 동력이 부모님께서, 특히 어머니가 한 가정을 건사하기 위해 꿋꿋하게 지켜왔던 살림 하는 과정의 엄정함이고 반복이고 인내고 또 은근한 자기만족이었을 것이다. 그걸 내가 체험하고 즐기고 있어 다행이다.


국어사전에서 다행은 ‘흡족하거나 마음이 놓이는 상태’를 뜻한다. 저녁 먹고 거의 4시간 동안 정리 정돈한 뒤 집을 보는 내 마음이 그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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