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순위에 대하여
청계천에서 ⓒ월영
살다 보면 우선순위가 결국 문제의 원인이자 답인 경우가 많다. 어떤 것을 먼저 생각하느냐? 혹은 어떤 것을 나중으로 미루느냐. 사람마다 비슷비슷해 보여도 차이가 나는 건 우선순위가 각기 달라서다. 사람마다 저마다 다른 인생인 듯 싶어도 결국 또 별다를 바 없는 삶이라 여기게 하는 건 우선순위를 매겨야 하는 그 개수들 자체는 엇비슷하기 때문일 것이다. 예컨대 관혼상제 같은 것들.
젊은 날엔 연애가 아니라 짝사랑에 더 익숙했기에 결혼은 그저 멀고 먼 남의 이야기였다. 실은 내 생계와 생존을 위해 직장을 잡아야 했고 업무와 조직에 적응해야 했으며 그 자체로도 벅찼다. 어느 정도 삶이 안정기에 접어들자 우선순위는 이제 ‘나’였다.
가지고 싶은 것들. 가고 싶었던 곳들. 굳이 둘이 아니라 홀로를 위해 샀고 다녔다. 물론 그 와중에 그리운 이도 있었지만 그게 우선순위는 아니었다. 남이 나를 얽매는 상황을 기피했다. 딱히 외롭거나 적적할 때면 가까운 지인들을 만나 술 몇 잔 기울이면 됐다. 게다가 조직은 한가할 틈을 주지 않았다. 이상한 오기가 일어 일이 죽나 내가 죽나 죽자고 일만 붙잡고도 있었다. 그러다 어느 날. 우선순위를 바꿔도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우선순위를 연애와 결혼으로 바꿨을 때 무슨 복이 있어서였는지 인연을 만났다. 덕분에 먼 곳에 떨어져 있어도 마음은 같은 방에 있다는 느낌과 몸은 마주하고 있어도 또 마음은 각각의 어딘가에 있을 수 있다는 느낌을 고루 경험했다. 서른 후반의 그 연애는 뜨겁고 차가웠으며 때론 계산적이었고 대책 없이 무구했고 또 무한히 다감했지만 결국 냉정했다.
'청춘'이란 수식어를 뗀 지금. 서글픈 것 중에 하나는 자의적으로 우선순위를 정할 수 있는 환경 자체가 멀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우선순위가 당신이고 연애였을 때 다행히 업무적인 면에서 여유가 있었다. 하나 공교롭게 이별을 고한 뒤에 우선순위를 선택하는 것도 사치가 됐다. 오직 월화수목금금금. 친구 녀석은 “그래서 네가 버틸 수 있는 거다”고는 하지만 요즘처럼 햇살의 따스한 기운들이 하늘로부터 내려오고 저녁 빛이 말랑말랑해지면 속절없이 일손을 놓고 멍멍해진다.
이러한 멍멍함을 오늘 하루 우선순위에 올린다 해서 월급이 끊기거나 세상이 망하지는 않을 것이다. 마침 외근을 핑계로 앉아 있는 카페에서 나오는 노래가 김동률의 '리플레이'
"넌 나를 사랑했었고
난 너 못지않게 뜨거웠고
와르르 무너질까
늘 애태우다 결국엔 네 손을"
봄이 이렇게 오고 간다. 어찌 보면 사계절의 우선순위인 봄이.
덕성여고 골목길 ⓒ월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