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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Mar 25. 2017

독신으로 산다는 것 27
'결혼 없는 삶에 대하여'

좋거나 싫은 게 아니라 귀찮은 것과 귀찮지 않은 것으로 나뉜다. 혹은 피곤한 것과 피곤하지 않은 것으로 가늠한다. 나이를 먹을수록 명확해지는 판단 기준이다. 기준이 명확해지면 실수할 일이 적다. 분명히 긍정적인 변화다. 하나 이성과의 관계에도 이와 같은 기준을 적용하니 문제다.  


20~30대에는 이성을 보는 기준이 끌리거나 끌리지 않거나 였다. 대부분 외모나 분위기에서 바로 판가름 났다. 그런데 나이를 먹고사는데 치이면서 달라졌다. 


이른바 ‘썸’의 기운이 온다 하더라도 그 설렘은 잠시. 하루를 넘길 때마다 가지고 있던 기운을 모두 소진하면 저 사람으로 때문에 피곤하거나 귀찮은 일이 생기지 않을까? 미리 짐작해버린다. 


사람이 귀찮고 피곤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상대가 나에게 과도하게 의지하거나 기대려는 것이 느껴지기 때문이다. 혹은 그 사람이 가진 게 많아 무언가 상대적 우월감을 뽐내려 할 때도 피곤하다. 


젊었을 때야 혈기가 넘치고 일상을 유지하는 데 큰 에너지가 들지 않으니 그런 것을 나에 대한 애정이나 관심, 혹은 참을만한 단점으로 받아들이며 상대에게 에너지를 투입할 수 있었다. 


그런데 서른 중반을 넘어선 직장인 남자들은(여자들도 마찬가지겠지만) 그동안 쌓아놓은 사회적 지위나 관계를 유지하고 또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 자기가 가진 에너지의 100도 모자라 120, 200을 가져다 바친다. 그러다 보니 외모 등에 호감을 느껴 이성을 만났더라도 소진된 자신의 에너지 탓에 갈등한다. 이성에게 에너지를 쏟아부으면 내 일상을 유지하기가 어려운 게 엄연한 대한민국 대다수 미혼들의 현실이다.


때문에 누군가 만나서 바로 촉각을 곤두세운다. 저 사람은 나를 피곤하게 할 사람인가 아닌가? 뭔가 낌새가 느껴지면 바로 차단. 나를 피곤하게 하면 바로 선을 그어버린다. 그리고 차츰 누구에게도 간섭당하지 않고 나를 위해 온전한 시간을 누릴 수 있는 싱글의 삶에 서서히 침식당하고 익숙해져 간다. 또 회사에서 몰려드는 업무에 눌리다 보면 어느새 결혼 적령기는 훌쩍 넘어 마흔이 넘도록 혼자 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남의 이야기인양 쓰고 있지만 아쉽게도 아니다. 


이런 삶에 대해 나쁘다 좋다 하기는 어렵다. 사회가 점점 빨리 변해가고 가족의 유형도 다양해지고 30년 후에는 오히려 결혼하는 게 대단하다고 여길 수도 있다. 유럽만 봐도 어느새 동거가 보편적이다. 해서 한국사회에서도 세월이 더 흐르면 독신이나 싱글라이프, 비혼 등도 삶의 한 유형으로 자연스럽게 자리 잡으리라 예상한다. 


다만 한국사회에서 아직은 결혼이란 제도가 가지는 장점이 있긴 하다. 장점이라기보다 대다수가 결혼하기에 그 이유만으로 사회의 다수로 자리 잡는다. 사회의 소수에 대해 한국 사회는 아직 너그럽지 못하고 소수에 놓이면 이래저래 사회적 관계망 속에서 마치 죄인인양 살아야 한다. 결혼으로 인해 그런 쓸데없는 피곤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게 장점은 장점이다. 


그 결혼이 ‘지옥’으로 들어가는 또 다른 문이라고들 해도 기혼자들에게 묻는 말과 미혼자들에게 묻는 말의 결은 확실히 다르다. 후자에게 묻는 말들에 더 가시가 돋쳐 있거나 혹은 은근한 하대가 묻어있다. 즉 무언가 하자가 있어 장가나 시집을 못 간 거 아니냐는 직설화법의 다른 표현들이다. 소위 결혼 적령기를 넘어선 미혼으로 살면서 겪는 커다란 스트레스 중 하나다. 


그러나 역사를 돌이켜보면 사회의 제도나 관습이 고정 불변은 아니다. 대부분의 미혼 청춘남녀들이 꿈꾸는 낭만적인 연예 결혼은 18세기 이후에나 가능했고 한국에서는 기껏해야 100년 채 안 된 결혼의 유형이다. 세계 전체 인구로 보았을 때 아직 연애결혼보다 중매나 가족 간에 일방적인 결정으로 결혼하는 경우가 더 많다. 결혼해서 아이를 낳는 것 또한 바뀌었다. 한 세대 이전 만해도 두 명은 기본이었지만 지금은 외동자녀도 적지 않다.  


하여 결혼제도 자체도 조금씩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그 제도 안에 들어가다가 나오는 일도 지금보다 더 손쉬워질 수 있다. 지금까지 우리 사회는 그저 ‘결혼’을 삶의 당위로 놓고 교육이나 사회 시스템 자체를 설계했다. 그런데 이런 당위로서의 결혼이 앞으로 사회의 절대다수의 경우로 유지되지 않을 것이란 게 미래학자나 사회학자들의 공통적인 견해다. 지금의 20~40대는 그 과도기에 놓여 있을 뿐. 


무엇보다 사람이 혼자인 삶을 진정으로 고민해봐야 결혼을 해도 결혼의 완결성을 높일 수 있다. 대부분 결혼의 파탄은 서로의 성숙하지 않은 면들이 부딪혀 상승작용을 일으켜 일어난다. 홀로 있는 시간을 가지면서 결혼 없는 삶을 살 것인지, 아니면  둘이 살 것인지 많이 고민해보고 내면을 성숙시킨 이가 그런 과정을 생략한 채 결혼한 이보다는 삶을 더 안정적이고 덜 이중적으로 사는 모습을 볼 때가 적지 않다. 애초부터 천생배필로 만나 서로의 삶을 자연스럽게 성숙시켜주는 관계가 아닌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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