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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월영 Apr 01. 2017

독신으로 산다는 것 28
'홀로 자가 처방전'

독신공감

1
나이를  먹을수록 결혼식장보다 초상집에 가는 횟수가 늘어난다 요 며칠 부고를 들은 게 네 분. 조부모상이 아닌 모두 부모상이다. 거래처의 머리 허연 실장님도 어머니를 잃은 아들. 미운 정이 더 많이 들었던 동아리 선배도 이제는 아버지를 잃은 아들. 등등등. 
     
혈육이 이 세상에서 숨을 쉬지 않는다는 것을 확인하고 받아들여야 할 때의 그 극심한 상실감에 대해 (설사 그 혈육과의 감정이 마냥 행복한 것은 아니었을 지라도) 나는 감히 몇 마디 보태기 어렵다. 할아버지의 염을 한 적은 있지만 애끓는 슬픔에 닿았다고 말하진 못하겠다. 
     
다만 부고를 들을 때 한 가지는 확실하다. 아주 짧은 순간만큼은 진정으로 그 넋을 위해 기도하는 것. 단 1초라도 집중해 ‘좋은 곳 가시길’하고 빌어 들이는 것. 그게 아귀다툼으로 얽히고설킨 속세의 암흑 속에서 간혹 뛰쳐나와 그래도 사람이라고 자기인식을 하는 기회기도 하니. 죽은 이에 대한 추모. 우리의 문명은 그 추모의 염원에 기대어 한 걸음씩 앞으로 디뎠으니까. 
     
2.
컨디션 난조였다. 몸살감기에 이어 코감기, 목감기. 그리고 처음 경험해보는 결막염까지. 새삼 아침에 일어날 때 온몸에 이상이 없다는 게 또 당연한 일이 아님을 새삼스러워하는 요즘이다. 덕분에 이비인후과, 안과 골고루 다니고 있다. 
     
도시의 편리는 이렇듯 위기의 순간에 결정적으로 우위를 나타낸다. 찾아보니 안과 이비인후과 모두 집에서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만약 내가 도시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면 이러한 의료 서비스를 쉽게 받지 못했을 것이다. 


전원생활을 쉽게 결정하지 못하는 게 이런 이유도 클 듯. 아플 때 바로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이 흔하다는 건 분명 삶의 질적인 차원에서 중요하다. 그리고 아무리 헬조선이라 비하해도 어쨌든 근 반세기 만에 아플 때 찾아갈 수 있는 병원이 많아졌다는 것은 분명 우리 사회의 진보. 혹은 발전. 
     
병원에는 어르신들이 절반 이상. 결막염 때문에 안과에 갔더니 예순은 넘어 보이는 아저씨가 거동이 불편한 할머니를 짜증 어린 표정으로 모시고 왔다. 아들과 어머니. 육신의 노쇠는 어느 선만 넘어가면 편차나 차이를 두지 않는다. 혼자 사는 자유로움의 뒤에는 혼자서 견뎌야 하는 자괴감이 함께 있다는 걸 다시 한번 상기했다.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꼼꼼히 건강은 챙겨야지. 하면서도 “스트레스받지 마시고 일단 쉬세요”라고 처방을 내리는 의사의 말에 “그게 되나요”.라고 작게 답할 수밖에 없는 신세가 순간 처량해지기도 했다.  
     
3.
바람은 기압차에 생긴다. 바람이 분다는 것은 대기의 공기가 이리저리 뒤섞인다는 것이다. 바람이 불 때 마음이 괜히 싱숭생숭해지는 건 다 이유가 있다. 우리가 숨 쉬는 공기가 정처 없이 휘몰아 도는데 어찌 마음이 가만있을 수 있나. 게다가 빗방울까지 보태어지면.
     
병원 장례식장에 갔다가 오는 길. 바래다주던 그 길을 지나쳐 왔다. 열 번의 수신음. 문자 메시지 한 번. 죽은 이의 영정 앞에서 고개를 숙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은 늘 그렇듯 사람이 가장 약해지는 순간. 거기에 바람이 몰아쳤고 비가 내렸다. 그게 핑계였고 굳건한 무언가에 대한 해제였다. 그리고 아무 일도 없었다. 
     
4,
코감기와 목감기도 낫고 결막염도 며칠 뒤엔 내 몸에서 사라질 것이다. 의술 덕이다. 그 의술을 배울 만큼의 열정이나 실력이나 결기는 없다. 허나 누군가의 마음이 아프다면. -물론 아프다는 것도 증세가 다양하고 경중도 다르기에 함부로 말하긴 조심스럽다. 
     
그러니까 누군가의 마음이 지금의 나처럼. 서로 반가운 표정의 사람들로 가득한 저녁의 카페에서 혼자 별개로 떨어져 있다는 단절감. 초봄의 온기는 사라지고 갑자기 차가워진 바람에 종종걸음으로 귀가했을 때 현관 거울의 어두움 속에 그저 나만 비치는 망망함. 지난 인연에 연연하여 ‘내가 그렇지 뭐’ 괜한 자조로 내가 나를 처량하게 할 때.
     
486개의 단어와 55줄. 원고지 11.2매로 쓴 그저 그런 오늘의 상념들이 단기 처방전처럼 쓰이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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