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가 필요한 순간
'인생 영화'라는 키워드는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빠질 수 없는 단골 카테고리다
서로가 인생 작품을 설명하고
토론하는 과정은 언제나 즐겁다
무언가를 순수하게 좋아한다는 건
정말 아름다운 일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때때로 쉽게 망각하니까
이때 은근히 자주 등장하는 작품이
바로 <비포 선라이즈>이다
나는 사람들이 이토록 비포 선라이즈를
좋아하는 이유가
여행 중 일어나는 꿈같은 사랑 이야기라는
낭만적인 모티브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기차에서 우연히 만나 로맨틱한 하루를 보내는
'제시'와 '셀린느'의 이야기는
모두가 간직하고 싶은 판타지일 것이다
비포 선라이즈는 총 3편으로 시리즈가
구성되어 있는데
<비포 선셋>은 비포 선라이즈의 후속편
즉 시리즈의 정중앙에 위치해 있다
9년의 주기로 나오는 시리즈는
영화 속과 현실의 시간이 동일하게 흐르는
특이한 설정으로 세월을 담아낸다
물론 그들이 달라진 것은 시간의 흐름만이 아니다
매 편 시간이 흐를수록 '셀린느'와 '제시'에게
현실의 무거운 그림자가 짙게 드리운다
낭만으로 충만했던 커플은 어느덧 그 시절이
젊고 어리석었다고 말하는 나이가 되었다
현실과 이상 사이의 간극을 느껴버린 것이다
그렇게 현실과 판타지는 싫더라도
만나야 하는 지점이 찾아온다
<비포 선셋>은 지나치지도 희미하지도 않은
현실과 낭만 사이의 균형을 보여준다
낭만은 현실이 있기에 더 빛날 수 있고
현실은 낭만이 있기에 마냥 텁텁하지 않다
서로 변해버린 상황이지만
셀린느를 바라보는 제시의 눈 속에
노래의 가사를 바꿔 부르는 셀린느의 입안에는
여전히 우리가 바라던 판타지가 내비친다
낭만은 현실에 쫓기지만, 현실은 낭만을 원한다
그 둘은 그렇게 공생하는 관계이다
그럼에도 가끔은 판타지 같은 사랑을
원하며 지치게 되는 게
사람인지라 어쩔 수 없다
다만 우리가 존재하는 곳은 현실이니까
지나간 사랑을 바라보며
마모된 감정을 좀 더 껴안아 줄 필요는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