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울렁임에 대하여
세기말의 환상, 공포와 자유
1999년, 노스트라다무스의 예언에 따르면 세상이 망한다고 했다. 종말의 암시는 막막한 공포와 더불어 막연한 자유로움도 주지 않았을까. 세상이 망한다는 전제가 깔리면 공부며 일이 아니라, 당장의 즐거움에 더없이 충실할 수 있었을 것이다. <치즈 인 더 트랩>으로 '로맨스릴러'라는 장르적 타이틀을 얻은 순끼 작가의 차기작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은 이런 세기말을 작품의 무대로 삼았다. 그리고 중학교 3학년의 학생들을 주인공으로 내세워 사랑의 감각을 낯설게 전한다. 이들의 풋풋한 모습에서 어떤 이는 과거를 복습하고, 어떤 이는 현재를 학습할 것이다. 그러나 사랑의 형태와 과정은 다양하므로, 로맨스 서사란 결국 모든 이에게 '사랑의 예습'이 될 수도 있겠다.
풋사과의 캐릭터화, '철이'와 '미애'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의 주인공은 '철이'와 '미애'이다. 이들은 어릴 때 고작 3박 4일 같이 지낸 사이였는데, 중학생이 되어 다시 만나게 됐다. 미애가 살던 동네에 철이가 이사를 온 것이다. 이들은 서로에게 어색함을 느끼며 머뭇거리지만, 학교에서 '철이와 미애'로 묶이면서 점점 함께 하는 일이 많아진다. ('철이와 미애'는 1992년 데뷔한 혼성 그룹이다.) 외부의 입김에 의해 어떤 상대와 엮이는 일이 뭐가 그토록 싫었는지, 새삼 과거를 되뇌게 만드는 이들의 끈질긴 인연은 묘한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불편한 감정을 마음껏 표출하면서 오해를 키웠다가 솔직함으로 이를 해결하는 일련의 과정들 속 어리숙함과 울렁임을 마냥 남의 일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처음 해보는 것이기에 익숙하지 않고, 때로는 돌이길 수 없는 실수를 부르는 이 어리숙함은 모두의 자산이다. 물론 모든 어리숙함이 용서받을 수 있는 건 아니다. 반성과 후회, 태도의 변화, 이를 표현하는 용기를 가져야만 추억이라 이름 붙일 수 있게 되는 법이다. 다만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에 악인이 없다. 선과 악의 기준을 분명하게 가를 수 있겠느냐만 남의 아픔을 본인의 아픔만큼 공감하고 이해하면서 배려한다는 건, 분명한 선이 아닐까. 철이와 미애는 선하다. 그렇기에 이들의 풋풋한 어리숙함을 마음 놓고 응원하고 격려하게 되는 것일 테다.
순끼 작가는 전작 <치즈 인 더 트랩>을 통해 대학생활의 로맨스를 중심으로 관계의 긴장감을 절묘하게 그려내며 큰 호평을 받았다. 또한 초중반부 가볍게 넘겼던 장면조차 복선으로 활용하는 치밀함으로 후반부에 이르러 색다른 카타르시스를 전하였다. 해당 작품은 기존 순정만화의 클리셰를 정직하게 따라가는 측면이 있다. 이에 술술 읽히므로 단순히 성장기 청소년들의 로맨스만이 대두되나, 곰곰 생각하면 인식의 모순을 발견하게 된다.
작품의 중심 화자는 미애인데, 미애는 오롯하게 혼자 존재하지 않는다. 늘 배척당하는 철이를 보호하고자 하며 철이는 그런 애가 아니라는 대변인으로서 존재한다. 또 집안에서는 말괄량이 딸로, 혹은 과격하고 과감한 면도 있으나 순수함을 간직한 철없는 소녀 등으로 맥락 없는 이미지만을 가지고 있다. 결말이 나지 않은 작품에 대한 섣부른 판단은 위험하지만, 미애의 과도한 어리숙함이 위태로워 보이는 면이 있다.
지금껏 철이에게 다가가는 건 언제나 미애였다. 관계가 변하고 있음에도 그들의 평화는 여전히 미애의 활달함에 기대고 있는 측면이 크다. 철이의 과한 경계심, 미애의 병적인 천진난만함은 사춘기의 혼란에 대한 비유이자 만화적 허용으로 봐야 할까. 아니면, 누구든 미애를 통해 과거의 실수를 되짚도록 하는 고도의 장치라고 생각해야 할까. 미애는 체구도 작지만 사고도 무척 단순하고 명쾌하다. 호불호가 명확하며 스스로를 드러내는 데에 거리낌이 없다. 어린아이 같다는 거다. 약점이란 약점은 모두 모아놓은 것 같은 미애, 그럼에도 언제나 당찬 미애는 어떻게 사랑을 깨닫고 무엇으로 자라게 될까.
세기말의 보습학원, 감각의 전시
사랑이라는 개념의 부재, 이는 사실 미애뿐 아니라 작중에 등장하는 거의 모든 이들에게 해당하는 사항이다. 때문에 날 선 삼각 관계도, 가슴 치며 님을 그리워하는 밤도 없다. 님을 그리워하는 게 아니라 '그 애'와의 해프닝을 떠올리며 이불을 차고, '야, 혹은 너'를 신경 쓰는 형태로 그려진다. 로맨스의 연출 기법을 쓰고 있음에도 낯설게 반응하고 움직이는 모습이 도리어 사랑스럽다. 더불어 로맨스의 전조를 중심으로 다루기에 더 애틋하게 곱씹고 훗날을 짐작하게 된다. 과거를 무대로 한 작중 배경, 이제 막 사춘기의 길목에 접어 들어가는 어린 학생들을 보면서 가슴 한쪽이 뭉클해지는 건 모두가 알고, 모두가 느꼈던 그 감각의 전시가 수치심과 그리움을 동반하는 탓이기도 하다.
명명되지 않은 감각과 대상은 언제나 흥미롭다. 대상을 낯선 관점에서 탐구하고자 하는 게 예술이라고 한다면, 예술은 정의(定義)를 보태는 과정이다. <세기말 풋사과 보습학원>은 한창 연재 중이다. 미애는 스스로의 마음을 새로운 관점으로 들여다보기 시작했으며, 철이는 필요 이상으로 미애에게 신경 쓰고 있다. 이 둘이 각자의 마음에 대해 어떤 정의를 내릴지, 그 주변의 인물들은 어떤 영향을 미칠지, 순끼 작가의 섬세하고 유려한 서술에 몸을 맡긴 채 함께 철이와 미애를 지켜보도록 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