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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게야 찾아온 딸 노릇

by 돌레인

엄마네서 밥을 하고, 식사를 챙기고, 설거지를 하고, 청소를 하고, 빨래를 하다 보면 힘들다고 느낄 때도 많지만, 문득 이런 시간들의 소중함이 느껴진다.

예전엔 엄마네가 불편해, 엄마가 해주신 음식만 겨우 먹고 빨리 내 집으로 돌아오고만 싶었는데, 지금은 엄마의 병 덕분에 늦게나마 딸 노릇을 제대로 할 수 있어 감사한 마음이 든다.


언젠가 엄마가 내 곁에 없을 날을 생각하면 벌써부터 마음이 무겁다. 그때 나는 못해드린 것들로 혹은 더 잘 해드릴 수 있었단 아쉬움에 가슴을 칠지도 모르겠다. 그런지 엄마 곁에 있어도 현재가 과거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엄마랑 거닐던 그 거리, 카페와 식당, 풍경들과 더불어 같이 웃으며 풀던 십자말 풀이집과 엄마의 글씨로 채워진 필사집을 나는 어떤 마음으로 되돌아보고 들춰보게 될까...


며칠 전 엄마에게 조심스레 물었다.

“엄마, 나중에 엄마가 나를 못 알아보게 되면 어떻게 했으면 좋겠어?”

엄마는 담담하게 대답하셨다.

“그땐 그냥 요양원으로 보내줘.”


그 말에 가슴이 먹먹했지만, 동시에 엄마가 나를 믿고 따르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도 그때가 오면, 엄마가 원하는 대로 과연 순순히 보내드릴 수 있을까 싶다...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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