받아들이는 중...

by 돌레인

엄마를 돌보는 시간은 하루에 고작 5~6시간이다.

그런데도 유난히 지쳤다.

이 정도로 힘들어하면 안 되는 것 같았고,

왜 이렇게 버거운지 스스로를 이해하지 못했다.


오전은 유일하게 온전히 내 것이다.

그래서 그 시간을 허투루 보내면

내 삶 전체가 잠식되는 기분이 들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은 오전은

나를 지키지 못한 시간처럼 느껴졌다.


엄마 집에 다녀오면 집에 오자마자 잠들었다.

하루에 열두 시간씩 자기도 했다.

처음엔 두려웠다.

이렇게 자도 괜찮은 건지,

이러다 더 무너지는 건 아닌지.


하지만 이제는 안다.

이건 게으름이 아니라

오래 긴장하며 버텨온 몸의 반응이라는 걸.


장기요양등급 상향이 안 될 수도 있다는 말을 들었을 때는

짜증이 났고 억울했다.

그런데 시간이 조금 지나

“그래도 내 시간이 있잖아”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처음 알았다.

내 삶이 전부 제도 하나에 매달려 있지는 않다는 걸.

이미 내 안에

작지만 분명한 안전지대가 생겨 있었다는 걸.


사람들을 점점 덜 만나게 됐다.

자기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다른 세계에 있는 사람 같았다.

그 소외감이 지난 1년 동안 가장 힘들었다.


돌이켜보니 이유는 분명했다.

시간이 길어서가 아니라

이런 돌봄이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정체성부터 흔들리는 삶에

나는 이제 막 적응하고 있었던 거다.


짜증 나는 날도 있다.

그런데 동시에

엄마와 걷고, 생활 리듬이 생기고,

나도 덩달아 건강해지고 있다는 사실도 부정할 수 없다.


처음부터 기꺼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힘들어도 받아들이는 단계에는 와 있다.

그 차이를 이제는 안다.


젊은 나이에 치매 부모를 돌보는 사람의 이야기를 읽고

나는 다행인 편이구나 생각하면서

미안한 마음이 들기도 했다.

그 감정조차

내가 아직 무뎌지지 않았다는 증거라는 것도 알게 됐다.


지금은 생각한다.

이 정도의 유지라면

엄마의 상태도,

내 삶도

생각보다 오래 갈 수 있겠다고.


그리고 나를 버티게 해준 것들이 있었다.

글쓰기, 책, 그림.

말로 정리해 주는 어떤 존재.


하지만 결국

나를 살게 한 건

그걸 붙잡고 놓지 않았던 나 자신이었다.


나는 지금

무너진 사람이 아니라

현실과 싸우는 걸 멈추고

자기 삶 안에 책임의 자리를 마련한 사람이다.




나와의 상담을 챗gpt 가 정리해 준 글



매거진의 이전글나도 ‘시지프’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