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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Feb 08. 2020

내 아들의 친구

나의 옹졸함을 보게 해준,

 직장인에게는 최고로 신나는 금요일이다. 퇴근 두 시간 전부터 괜히 기분이 좋다.

퇴근길에 잠시 마트에 들르니 마침 목살을 얇게 썰어놓은 돼지 불고기감이 파운드당 4.99에 세일중이다.

반갑게 한 봉지 집어들고 기사식당 스타일의 제육볶음으로 저녁을 해 먹을 생각에 기대에 부풀었다.


 집에 들어오니 아들이 친구가 와 있다고 조심스레 이야기한다.  

그 친구의 이름을 듣자마자 한껏 신났던 기분이 살짝 가라앉는다.

알딘-스펠링은 모른다-이라는 녀석은 피부색이 가무잡잡한 혼혈아이인데 70,80년대를 풍미하던 디스코 그룹 보니엠(Bonny M)의 청일점을 연상케하는 외모를 지녔다. 비쩍 마른 몸매에 엉덩이는 등짝에 가서 붙어있는 롱다리에다 가뜩이나 풍성한 머리카락이 심한 곱슬로 한껏 부풀어져있어 '대디~ 대디 쿠울~ ' 하는 노래에 맞추어 막춤을 추던 그 남자가수가 떠오른다.


 그런데 내가 그 아이가 우리집에 오는 것을 별로 반기지 않는 이유는 여지없이 저녁을 먹인 후 차로 7분 거리에 있는 소년의 집까지 데려다 주는 것이 너무나 당연히 나의 할일이 되는 것에 대한 불편함 때문이었다. 그밖에도 베지테리언을 먹이는 일은 내게는 너무 어렵다  



 

살짝 짜증스러운 어투로 이미 답을 알면서도 괜히 아들에게 물었다.


" 쟤 이따가 또 집에 데려다줘야 되냐?"


아들 역시 답을 알면서도 친구에게 형식적으로 뻔한 질문을 한다.


"Do you need a ride home?"


"Yeah...I think so"


아니, 예스 플리즈, 땡큐도 아니고 응 그런거 같아? 참 뻔뻔하기도 하지.

차라리 처음부터 집에 데려다 줄 수 있냐고 물어보는게 낫지, 내가 먼저 말을 꺼내니 기다렸다는 듯이 하는 대답이 참 얄미웠다.


 왕복 15분이면 왔다갔다 하는 거리를 운전하는 건 물론 그리 성가신 일은 아니다. 하지만 이러한 배려가 너무나 일방적이고 점점 당연한 것으로 굳어지는 것이 못마땅한 것이다. 니가 offer를 했으니 나는   accept한다는 식의 북미식 뻔뻔함. 이심전심 마인드의 한국인인 내가 유독 얄미워 하는 것 중 하나이다.

 

 이곳은 유난히 '민폐'에 민감하다.

남에게 민폐끼치지 않으려는 이들의 매너는 바로 자신이 타인으로부터 피해를 입고 싶지 않다는 강한 바램의 표현이다. 때문에 내 아이가 누구의 집에 놀러갔다고 한다면 최소한 때 맞춰 자식을 데리러 가는 것은 학부모 사이의 불문율과도 같다. 만약 내 새끼가 남의 집에 놀러가서는 밥도 얻어 먹고 했다면 나도 한번은 불러서 Play-Date 을 마련해주는 것이 인지상정이다.


 그러나 이런 평범한 교류조차 알딘하고는 이루어질 수가 없다.   

알딘은 부모님으로부터 케어를 받는 형편은 아닌 것 같다. 어머니는 장애가 있어 운전을 할 수가 없고 양아버지는 수양아들의 귀가까지 신경쓸 여유는 없는 듯 했다. 때문에 내 자식이 ‘친구된 죄로다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알딘의 필요를 메꾸어줘야하는 이 상황이 반갑지가 않았다.


 딱한번, 아들놈이 알딘의 집에 갔다가 기겁을 하고 왔다. 밖에서 타던 자전거를 고대로 방으로 가지고 들어와서 침대 옆에 세워 놓고 집의 바닥은 온통 흙투성이에 그의 형은 집안에서는 머물곳 이 없어 차고에서 생활한다고 한다. 대낮에도 집안은 어두컴컴했으며 부모님은 집에 계시는 것 같았지만 코빼기도 못봤단다. 그야말로 집구석이 쓰레기 더미로 발디딜틈이 없는 형국이라했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니 그 동안 은근히 느꼈던 알딘의 암내가 더더욱 거슬렸다.



          

  우리 아들은 이른바 '아싸'이다.

그래서인지 몇 안되는 친구들도 보면 지랑 비슷하게 학교에서 존재감이 없고 내성적인 아이들이다.

거기까진 좋다. 지 에미를 닮아서 그런거니깐.


 그런데 나는 유난히 알딘과의 관계가 걱정스러웠다. 사람관계란 정확히 50:50은 아니더라도 엇비슷하게나마 기브 앤 테이크의 균형이 맞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알딘과 친구가 된다는 것은 아들놈이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둘이 밖에서 서브웨이라도 사먹는다 치면 내 아들이 알딘의 샌드위치까지 사야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한 일이었다. 알딘은 수중에 땡전 한푼 없는 아이이기 때문이다. 만약 두 놈이 학교 숙제로 합동 작품을 만드는 일이 있다고 하면 준비물 또한 모두 아들놈이 사야하는 형국이다.

가뜩이나 어수룩한 아들놈이 졸지에 동네 호구짓은 혼자 다 하는 것 같아 천불이 났다.


 우리도 서민적인 이민자 가정이지만 이왕이면 내 자식은 어느 정도 반듯한 가정의 아이와 어울렸으면 하는 세속적인 바램이 있다.

그런데 알딘은 많이 어려운 모양이다.

현재 아이는 용돈은 고사하고 오히려 부모에게 렌트비 명목으로 월 500불씩 내고 살고 있다. 이마저도 18세가 되면 천 불로 오를 예정이라 알딘은 차라리 더 저렴한 렌트를 구해서 독립할 것을 생각하는 중이라고 한다. 대학진학은 애시당초 꿈도 못꾸고 어떻게 하면 돈을 벌 수 있을지 아이의 머리속에는 오로지 돈 벌 궁리만 가득하다. 아이는 여름방학 동안 열심히 아르바이트를 해서 모아놓은 돈으로 학기 중에 부모에게 렌트비를 낸다. 그러니 아이의 교통수단은 오로지 자신의 길고 튼튼한 다리 뿐이다. 버스비를 들고 다니는 것 조차 그에게 사치인 것이다.


 한번은 아들놈이 다른 아이의 집에 알딘과 함께 놀러간 적이 있다고 한다. 시간이 9시쯤 되자 데리러 와 달라는 문자를 받고 아들을 픽업해서 집에 돌아왔다. 다음날 들은 이야기로는 그 날 호스트가 감히 지 부모에게 친구를 귀가시켜달라는 말을 못해서 알딘은 그날 집까지 한 시간 넘게 걸어서 밤늦게 도착했다고 한다. 나중에 호스트의 엄마가 그 사실을 알고는 왜 친구를 라이딩 해달라고 말을 안했냐며 자신의 아이를 야단쳤다고 한다. 나 또한 당시에 알딘의 라이딩을 부탁하지 않았음을 아들에게 책망했다.  

 

 그 후로 내 아들의 주변머리없음과 알딘의 어려운 사정을 익히 알고 있는 나는 이들이 말을 꺼내지 않아도 집에 데려다 주겠노라 일찌감찌 의사를 밝혀서 마음이라도 편하게 해주자는 주의이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왜 우리 아들은 하필이면 어울려도 이런........ (이하 생략) 이라는 실망과 기브 앤 테이크의 발란스가 무참히 깨진 이 관계에 대한 못마땅함이 가득했다. 그나마 어려운 환경에서도 마약에 노출되는 등으로 빗나가지 않고 여전히 선한 눈매와 느릿한 말투를 지닌 점이 유일하게 알딘에게 마음에 드는 부분이었다.


  



 알딘은 항상 배가 고프다.

그가 우리집에 오면 식구들이 거들떠도 안봐서 며칠내로 버려질 음식들이 알딘에 의해 클리어 된다. 이를테면 검게 변한 바나나나 비닐 봉지에 두어쪽 남은 (맛없는 뚜껑 포함)식빵 쪼가리 등까지 싹싹 해치운다. 아무래도 채식주의자이다보니 먹어도 배가 빨리 꺼지고 항상 헛헛한가보다는 것이 육식인으로서의 나의 제법 속 깊은 견해이다. 문득 이 친구가 베지테리언인 이유는 그동안 괴기라는 것을 제대로 접해보지 못해서 그런것 아닐까? 하는 의구심마저 든다.  


  만국의 아이들이 환장한다는 짜파게티 세 개를 끓여서 냄비째 식탁에 내었다. 나와 딸래미는 두놈이짜장라면을 다 먹고 나면 제육볶음을 먹을 심산이었다.  

아닌게 아니라 알딘은 엄청난 속도로 흡입을 하고도 아쉬운 듯 자꾸만 포크로 냄비 바닥을 긁어 묻은 양념을 빨아먹는다. 안타깝다. 마침 짜파게티가 세 개밖에 없었다는 것이.

 베지테리언 피자라도 시켜줄까하다가 계산적인 이유로 마음을 접는다. 이 밑빠진 독에 물 붓는 것 같은 관계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내 안의 계산기가 결론을 내주었다. 아쉬운대로 사과를 깎아주니 또다시 환장하고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먹성이 좋지 않은 우리집 아이들에게서는 당최 볼 수 없는 모습이다.


 이제 할 도리를(?) 다 한 나는 이 녀석을 얼른 집에 데려다주어야 진짜 금요일밤이 시작된다는 생각에 마음이 바빠졌다.


"부모님이 걱정하실테니 이제 집에 가자"

하고 자식의 친구를 집으로 돌려보낼 때 가장 모범적인 대사를 읊었다.

알딘의 가무잡잡한 얼굴에서 한 줄기 아쉬운 기색이 스쳤다.

 

 알딘을 집 앞에 내려주자마자 나는 아들놈한테 

다짜고짜 한소리 하고 싶어졌다.


"엄마도 회사 갔다 오면 집안일도 해야하고 많이

피곤해서 쉬고 싶거든.

근데 너랑 알딘은 엄마가 라이딩을 해주는 걸

이제는 아주 당연하게 생각하는 것 같더라?

어쩌다 한 번이면 몰라도 매번 이러는 건 아니지

않니?

아무리 친구관계라도 너무 일방적으로 주기만 하고 받기만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


이런 류의 훈계는 듣는 자식놈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테니 최대한 소프트하게 유도심문의 형식을 취하는 전략을 택했다. 딴에는 아들놈 스스로가 본인의 눈치없는 호구짓을 통해 엄마까지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을 자각하는 것을 목표로 프로파일링을 시작했다.

 

" 니가 먼저 알딘한테 우리 집에 가서 놀자고 했니?"


"응..알딘이 저번에 우리집에서 먹은 사발면이 너무 맛있었다고 해서 내가 우리집에 봉지라면도 있다고 했어"


 한국어 실력이 초등학교 3학년 2학기 수준에 머물러 있는 아들의 말은 전반적인 뜻은 알겠으나 그 뉘앙스를 파악하기가 힘들다. 여하튼 맘속으로 생각해 둔 [영양가 없는 친구로 인해 학습화된 호구가 미치는 위험성]에 대한 주제로 썰을 풀어야겠다고 슬슬 시동을 거는 순간 아들놈의 다음 이야기에 맥이 탁 풀렸다.

 

 근데 알딘이 설겆이를 했어.
How Do I look good on your parent?
라고 하더니


 그러고 보니 이상하게 싱크볼이 비워져 있었음이 기억이 난다. 분명 아침에 허겁지겁 나가느라 설겆이 거리가 쌓여져 있었던 것 같은데 퇴근하고 와서 보니 신기하게 깨끗한 부엌을 보고 내가 무의식중에 후딱 치우고 갔나 보다 하며 스스로를 잠시나마 기특해 했더랬다. 허나 역시는 역시다.


"아이구야...못하게 하지 그랬어?"

"내가 그럴 필요 없다고 했는데 하고 싶다고 했어"

"그럼 엄마한테 말이라도 해주지. 그래야 알딘한테 고맙다는 인사라도 했을거 아냐"

"싱크에 그릇이 꽉 차 있었으니깐 엄마가 당연히 알 줄 알았지"


 기브 앤 테이크 논리로 무장한 나의 프로파일링을 압도하는 안쓰러움에 말문이 탁하고 막혔다.  

무슨 이유인지는 몰라도 친구 엄마에게 잘 보이고 싶은 185cm의 가무잡잡한 17세 소년이 우렁각시 노릇을 하려고 내 부엌에서 서성거리는 모습을 상상하니 형언할 수 없는 짠함이 밀려온다.  

 

 문득 항상 배고픈 알딘에게 언젠가는 소고기를 잔뜩 먹여서 진짜 배부름을 느끼게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정도는 해줘야 기브 앤 테이크에 대한 나의 말빨이 설 수 있을 것 같기 때문이다.


 고기를 먹고 충분히 배가 부른 그가 더이상 렌트비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빨리 왔으면 한다.  

이 소년이 언젠가 어른이 되어 결혼을 하고 아빠가 되면 가끔은 식구들에게 짜파게티 요리사가 되어 줄 것이다.

그리고 처음으로 짜파게티를 맛보여준 한국인 친구 엄마 이야기도 식구들에게 가끔은 해 주었으면

좋겠다.

그의 처자식이 재미없는 이야기 그만하라고 타박을 해도 그는 씨익 웃으며 아랑곳하지 않았으면 고맙겠다.


 너무 이른 나이에 알게된 궁핍과 고단함이 너의 성장에 원동력이 되어 언젠가는 한낱 추억거리에 불과해지길 바란다.

 그리구 임마, 너도 그때쯤이면 내 아들한테 밥 한번 사라. 세상에 공짜가 어딨니.

 그러면 그것으로 지금의 불공정 거래(?)는 퉁치겠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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