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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Feb 02. 2020

집밥,하마터면 열심히 할 뻔했다.

가끔은 물 말아서 김치랑만 먹어도 개운하니깐.

 

  

  나는 부엌에서 한시간 이상 머물면 터지는 시한폭탄이다. 


 그에 반해 마음에는 항상 식구들을 잘 해 먹어야한다는 나름의 사명감이 있다. 잘 먹는 것이야말로 잘 사는 것의 척도라고 굳게 믿는 나는 이러한 자가당착적 모순이 항상 괴롭다. 뭘 해 먹어야 할 지도 고민스럽고 어떻게 해야 5대 영양소를 고루 갖춘 식단을 짤 수 있을까 머리 속은 항상 복잡한데 불행히도 몸이 따라주지를 않으니 말이다. 허구헌날 요리블로거들이 올린 음식들을 보며 기가 죽는다. 식구들에게 괜시리 미안해진다. 평일은 그래도 내가 워킹맘이라는 명분이라도 있다.  

  

 주말 저녁. 벌써 8시가 다되어간다.

나는 우연히 발굴한 취향저격 웹툰을 오전부터 정주행하기 시작해서 벌써 몇 시간째 56화를 내리 보고 있다. 기다리다 지친 남편이 저녁 안먹을거냐고 닥달을 한다. 짜증이 난다. 한참 재미지게 감상하던 웹툰의 세계에서 복귀하기 싫은 일상으로 돌아오며 나는 기계적으로 앞치마를 찾는다. 머리속이 하얗다. 뭘 해 먹을 지 아이디어를 얻기 위해 또다시 스마트폰을 주워드는 나를 보고 남편이 체념하듯 이야기한다.


"그냥 나가서 먹자"


 희한하게 외식메뉴는 금방금방 잘도 떠오른다.

의욕에 비해 손발이 안 따라주는 괴리를 외식이 메워주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우리 가족은 사흘이 멀다하고 외식을 하곤 했다. 외식을 하면서 드는 죄책감은 이렇게 먹으려면 어짜피 장봐서 부엌에서 한참 고생해야하니깐 그게 그거라는 논리로 합리화 했다. 그러나 이렇게 떠밀리듯 먹은 외식은 그리 맛있지도 즐겁지도 추억이 되지도 않는다. 식사를 마치고 카드 결제를 하며 일부러 영수증을 보지 않으려 애쓴다. 거기엔 나의 찝찝힘과 죄책감,주부로서의 자괴감 등이 숫자로 매겨져있으니깐.



 

  동안 외식을 한번도 안했다.

신기록이다.


 최근에 남편이 볼일이 있어 한국에 가 있는 근 한 달 동안 아빠도 없는데 그냥 대충 한끼 때우자라는 귀차니즘이 시작이었다. 사실 그동안 퇴근하면서 오늘은 나가서 햄버거로 떼워야지라는 유혹을 느낀 적은 몇 번 있었지만 막상 집에 들어오면 다시 나가는게 귀챦아서 그까이꺼 대충 한 끼 때우지라는 마음으로 냉장고 사정에 맞게 저녁을 차려 먹다 보니 어느새 한 달이라는 시간이 지나가 있었다.


 장도 별로 보지 않았다. 귀챦았으니깐. 여기서 집밥만 먹었다는 것은 남편을 제외한 우리 3인 가족이 아침,점심,저녁을 모두 집밥으로만 해결했다는 뜻이다. 그런데 신기한 사실은 이 한 달동안 나를 비롯한 우리 애들 모두가 먹고 싶은 걸 못 먹고 참은 기억이 없다는 것이다. 오히려 그때그때 먹고 싶은 거 위주로 참 게걸스럽게도 먹어댔다.


 아침은 항상 씨리얼.

언제나 좀비가 되어 일어나는 우리 아이들은 통 식욕이 없어 아침에는 씨리얼이 최고라고 한다. 집에 2시쯤 오는 우리 고등학생들은 도시락을 싸가지 않고 집에서 먹는다. 나는 출근전에, 학교에서 돌아 온 한참 배가 고플 아이들이 전자렌지에 데우기만 하면 바로 먹을 수 있는 덮밥이나 볶음밥류를 넉넉히 만들어 나도 도시락으로 회사에 싸간다.

 

  퇴근하고 집에 오면 6시정도.


배가 고프니 오자마자 쌀을 씻어 안친다. 쿠쿠가 29분간 밥을 짓는 사이에 반찬을 준비한다. 냉장고를 열어보니 반찬은 김치밖에 없다. 채소로는 브루콜리가 있다. 브루콜리는 데치면 영양소가 파괴되고 지방과 함께 먹으면 제일 좋다는 어디서 주워 들은 상식으로 물에 씻은 브루컬리를 기름 두른 프라이팬에 볶는다. 다진마늘도 조금 넣고 북미에 거주하는 아시아인들이 마성의 소스로 모시는 피시소스를 한숟갈 둘러준다. 브루컬리의 녹색이 진해지고 적당히 먹을만큼 익었다 싶으면 불을 끈다. 5분 걸렸다.


식탁에 넘의 살이 없으면 허전한 입맛들이라 넘의살 비스무리한 거라도 올려야 한다. 다 된 부르콜리를 덜고나서 구웠던 그 팬을 물 묻은 키친타월로 대충 닦아 낸 후 바로 스팸을 굽는다. 김치를 올리고 수저까지 놓고 난 후에도 쿠쿠는 5분이 남았다. 내가 쿠쿠보다 더 빨랐다. 갓 지어진 흰 밥에 김치와 스팸은 환상적인 콜라보를 자랑한다. 가공육에 대한 죄의식은 브루콜리가 희석해주었다. 김치와 스팸이라는 밥도둑은 국이나 찌개 생각이 전혀 안나게 한다.


 어떤날은 퇴근전부터 삼겹살이 미친듯이 땡긴다.

아마도 스트레스를 평소보다 더 받은 날이었나보다.집에 오는 길에 삼겹살과 상추만 사왔다. 마트 앞에 비치된 광고용 공짜신문도 잊지 않고 한 부 챙긴다.


 여느때처럼 쿠쿠가 밥을 짓는 동안 나는 된장찌개를 끓인다. 식탁에 신문지를 깔고 부르스타를 장착한다. 오늘은 쿠쿠와 비슷한 시간에 밥 먹을 준비를 마쳤다. 지글지글 삼겹살이 눈앞에서 익으면 상추에 밥 조금에 쌈장 조금에 삼겹살은 두 점을 넣은 쌈을 입에 우겨넣는다. 파절이가 (빨간뚜껑 참이슬도) 없는 것이 아쉽지만 그것만으로도 입안에서 황홀경이 펼쳐진다. 에어프라이어니 수육이니 뭐니해도 내 입맛에 삼겹살은 신문지 깔고 부르스타에서 지글지글 구워가며 먹는 게 만고의 진리이다.


 오늘 저녁은 유난히 느끼한 음식이 땡긴다.

집에 오면 제일 먼저 파스타 국수를 삶는다. 봉지에 11분 삶으라고 되어있지만 나는 타이머를 일부러 9분에 맞춘다. 그 사이에 냉장고에 있던 양파를 조금 채썰고 냉장고에서 넘의살을 급구한다. 뭐든 좋다. 새우든 햄이든,베이컨이든 정 없으면 그냥 생략해도 좋다. 9분이 지나 국수가 다 삶아졌으면 체에 담아 물기를 뺀다. 넓직한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삶은 파스타를 넣고 바로 양파랑 넘의 살을 투하해서 들들 볶는다. 재료들이 기름기를 거의 다 머금었다 싶을때 휘핑크림을 취향껏 때려 붓는다.


 칼로리가 무섭다고 우유를 섞어서는 안된다.

그러면 싱거워지면서 맛도 없고 우유가 겉돌면서 생크림과 분리된다. 마늘빵용 갈릭파우더를 반수저 정도 넣는다. 이것은 마늘향과 허브향과 짭조롬한 간간함까지 갖추어 아주 요긴하다. 처음에는 묽던 생크림이 끈적해지면 다 끝났다. 이렇게 2~3분 정도를 팬에서 끓이듯 볶아야하니 처음에 전략적으로 국수를 2분 덜 삶은 것이다. 피클이나 샐러드가 있으면 좋겠지만 없어도 그만이다. 어짜피 맘껏 느끼하게 먹고 싶었으니깐. 웬만한 파스타집에서 나오는 크림파스타보다 휘핑크림을 아끼지 않은 내가 만든 파스타가 훨씬 꼬소하다.


  워킹맘에게 퇴근  저녁밥을 준비하는 것은 세상을 이기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퇴근 후 밥하기가 싫어서 뭘 먹을지 고민하다 주섬주섬 옷을 입고 차를 타고 식당에 가서 주차를 하고 메뉴판을 보고 주문을 하는 등의 일련의 과정들보다 성의없게 한 끼 때우는 것이 나같이 게으른 자에게는 훨씬 덜 귀챦은 일임을 실감히고 나니 집밥은 전처럼 그렇게 번거롭고 힘든 일이 아니었다.


 정 아이디어가 없고 먹을 것이라곤 쉬어 빠진 김치밖에 없다면 가끔은 라면을 먹는것도 괜챦다고 생각한다. 딴에는 성장기 아이들이 걱정되어서 나는 라면물이 팔팔 끓을때 냉동만두를 몇 개 곁들인다. 밖에 나가서 먹어봤자 햄버거나 피자 아니면 MSG가 잔뜩 들어간 음식일텐데 집에서 먹는 만두 라면이 바깥음식보다 못할게 뭐있나 싶다.

조상님처럼 하루 한 끼 대용량으로 먹고 살고프다

 매일같이 산해진미와 진수성찬으로 식사를 했던 조선왕조 임금들의 평균수명은 43세 정도인데 반해 영조는 83세까지 장수했다. 검소한 영조는 다른 왕들에 비해 매우 단촐한 식사를 했다고 한다. 요즘 너무 잘먹는 것이 오히려 독이라는 말을 할 때 자주 쓰이는 예시이다.


 아닌게 아니라 우리 어릴 적에는 물 말아서 짭조름한 장조림 하나 가지고 밥 한그릇 먹는 일도 허다했다. 그래도 우리 부모님보다 키도 훨씬 더 크고 영양실조 안 걸리고 잘 자랐다. 요즘에는 흰쌀밥을 무슨 독약처럼 이야기하는데 참 의아한 노릇이다. 오히려우리때보다 먹거리가 더 다양하고 화려해진 시대를 사는 요즘 밀레니얼 세대는- 내 자식들을 포함해서-  주로 밥심으로 큰 그들의 부모 세대보다 건강면이나 피지컬에서 확실하게 웃돈다는 느낌이 별로 없다.


 그저 그런 메뉴로 대충 끼니를 떼워도 된다는 마인드는 내 몸도 편하게 해주고 부엌에서 일하는 시간도 줄여줄 뿐 아니라 장도 자주 안보고 외식도 안하니 카드값도 가벼워졌으며 무엇보다 내가 주부 노릇을 잘 못한다는 죄책감에서 벗어나게 해 주었다. 이제 넘어야 하는 산은 한 끼라도 부실하게 먹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는 내 남편이다. 하지만 한결 산뜻해진 카드 명세서에 그도 결국은 설득당할 것이다.


 집밥, 그까이꺼 부엌에서 너무 진빼지 말자.


특히 나같이 부엌 일에 소질 없는 사람은 공들인거랑 아닌거랑 매한가지다. 잘하려고 해봤자 그저 헛고생만 할 뿐이다. 적어도 내게는 잘먹고 잘살기라는 말대신 편하게 해먹고 잘살기가 더 맞는 것 같다.

내가 물에 말은 밥과 장조림의 짭조름한 조화를 기억하듯이 우리 아이들도 훗날 엄마의 초라한 밥상을 맛있게 기억해주길 바란다.


 이제 나는 쿠쿠라는 이름의 AI와 누가누가 빨리 하나 겨루고 있다. 내 작은 부엌에서 이세돌과 알파고도 울고  세기의 대결이 날마다 펼쳐지고 있다.


P.S: 집밥의 하향평준화를 지향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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