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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Sep 08. 2019

생계형 근로자 예찬론

생계형 근로자는 프로페셔널의 또다른 이름이다.

"솔직히 이 돈받고 나와서 일하기 싫은데 놀면 뭐하나 싶어서 일해요"

"남편이 저더러 월급 받으면 그냥 다 제 용돈으로 쓰래요"


 나도 이렇게 말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 적이 있었다. 직장이란 것이 딱히 아쉽지가 않아서

수틀리면 당장 내일이라도 사직서를 내던질 수 있을 것 같은 이들은 항상 당당했고 저절로 '갑'의 위치에 서는 것 같았다. 낮은 임금에 비해 녹록치 않은 업무 환경 탓인지 직원들의 퇴사율이 높아지는 상황 또한 직장을 소일삼아 다니는 '갑'들에게 유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았다. 상사와 인사팀은 '비싸게' 구는 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듯 했고 나처럼 절대 제 발로는 안 나갈 것 같은 직원은 어쩐지 머슴취급을 하는 것 같은 피해의식 때문에 자존심이 상하기도 했다. 나의 이러한 열등감은 아는 사람은 다 알만한 '자아실현의 위해' 직장생활을 하는 후배가 컨디션이 별로라는 이유로 모든 유급병가와 유급휴직을 다 챙기는 것을 보면서 홧병으로 이어졌다. 참고로 내가 직장생활을 하는 이곳은 패밀리닥터로부터 직장에 제출할 의사소견서를 받는 것이 어렵지 않다.


 직장생활 7년동안 위경련때문에 응급실에 가느라 예고없이 연차를 썼던 하루를 빼고는 단한번의 지각 조차 없었고 몸이 안좋은 날은 진통제나 파스로 어찌어찌 출근하여 어거지로 하루를 보내왔더랬다. 천성이 게으르고 독하지 못하면서 저질체력까지 겸비한 내가 유독 직장생활에서 이런 책임감을 발휘할 수 있었던 이유는 한가지다. 이곳이 나의 밥줄이기 때문이었다. 불행히도 우리 남편은 회사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온 내게 '그까짓것 때려쳐'라고 호기롭게 말할 수 있는 상황이 못된다. 대신 어깨를 주물러주고 조금만 더 버텨달라고 달랠뿐이다.


 한때는 '있는 척'을 해볼까 생각해본 적도 있었다. 이 직장이 아쉽지 않은 척 말이다. 내가 생계형 근로자라는 사실을 드러내는 것은 내 이미지 메이킹에 손해인 것은 아닐까? 하는 의구심이 낳은 결론이었다. 그런데 그런 '뻥카'를 치기에는 내 경제적 지지기반이 너무나 약했다. 한마디로 쫄리고 후달린다는 것이다. 하지만 당당하고 싶다. 나도 나간다고 겁을 주면 회사에서 내게 알아서 기었으면 좋겠다. 그렇지만 경제력으로 승부하기에는 애시당초 글러먹었으니 업무력 말고는 내가 승부수를 걸 만한 것이 없다.


 낯선땅으로 이민와서 늦은 나이에 운좋게 시작한 제 2의 커리어인생. 이제 40대 초반에서 중반으로 향하는 나이. 이 나라에서는 초졸이나 다름없는 스펙. 이곳 명문대학교를 졸업한 젊은 친구들과 같이 일하다 보면 머지않아 심하게 상처받은 자존심을 추스리며 꾸역꾸역 연금수령연령까지 어떻게든 버텨야하는 나 자신을 상상하면 신기하게도 정신이 맑아진다.


 나는 아파도 안된다. 실질적으로 경제적 가장이나 다름없는데 건강을 유지하는 것은 보험이나 다름없다.

정신이 육체를 지배한다는 말이 맞는 건지 몇 년 동안 감기 한번을 안걸린다. 대신 무장해제가 되는 주말이면

시체놀이를 하고 월요일부터는 재무장을 한다.

 시간을 허투로 보내도 안된다. 공부하는 것과 돈버는 것은 내게 같은 의미이기 때문이다. 매년 직장에서 지원하는 한도에 맞춰서 교육과정을 선택하고 공부를 하고 시험을 본다. 불합격하면 천불정도 하는 교육비를 도로 뱉어내어야하니 죽기 살기로 해야한다. 몇년동안 나는 단한편의 드라마나 예능도 시청해본 적이 없다. 한번보면 16부작 또는 20부작을 다 볼때까지 20시간 이상을 소비해야하는 드라마 시청은 내게는 너무나 한가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스토리 중독 증상이 있는 나는 불금에 맥주와 영화 한편으로 일주일동안 열심히 산 나 자신을 다독인다. 조금 줄여야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지만 5분도 안되는 시간에 비해 엄청난 즐거움을 주는 웹툰감상은 내 일상의 힐링이다. 후진 연출과 발연기, 웅얼거리는 대사에서 받는 스트레스 없이 읽을 수 있는 소설은 결국 행복하고 싶은 평범한 인간이기에 포기할 수 없는 낙이다.


 궁핍,열등감,울화를 원망하는 대신 나는 연료로 쓰기로 했다. 자아실현,성취감이라는 고품격 연료보다 어쩐지 더 고성능,고효율이다. 내가 쓰는 이 저렴한 연료들은 7년 동안 내게 '책임감이 강한 일잘러'라는 타이틀을 주었다. 학창시절 부터 20,30대까지 나는 그런 이미지와는 거리가 먼 한량이었다. 타고난 능력 및 모든 근성과 역량이 평균을 못 벗어나는 지극히 평범한 40대의 내게 반전이 일어난 것이다.

  대학시절 나와는 다르게 억척스럽던 친구가 있었다. 여름 방학 때 아르바이트를 하는 사무실에서 MS 엑셀을 잘 다루는 사람을 구하길래 알바를 구하는 그 친구에게 물어봤더니 선뜻 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그 친구는 근무 첫날 부터 깨지기 시작하더니 소개한 내가 미안해질정도로 많이 혼나면서 일을 했다. 여지없이 개박살이 난 어느날 걱정이 되어서 그 친구에게 괜챦냐고 물어봤더니 그 친구는 웃으면서 이야기한다 "나 사실 엑셀 잘 못해. 그런데 학원에서 배우는 것보다 이렇게 돈 받고 배우면 더 잘 배워져. 나 그동안 여기와서 엑셀 많이 늘었다."

믿고 소개한 나는 환장할 노릇일 수도 있지만 지금까지도 나는 스무살 그녀의 용기와 정신승리가 너무나 대단하게 느껴진다.    

 

  어린나이에 이민와서 이 곳 명문대를 졸업하고 입사한 후배와 점심을 같이 한 적이 있다. 아직 수습시간인 이 친구는 업무적으로 좋은 평가를 받지 못해 의기소침해 있는 상황이어서 격려해주고 싶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이런 말을 한다. "전 이 곳이 제 적성에 안맞지만 돈 때문에 여기 다니는 게 아니에요. 어디까지나 경험삼아 다니는 겁니다" 어린 친구의 허세로움이 안쓰럽기도 했지만 동시에 '돈 때문에' 일하는 것에 대한 비하의 뉘앙스가 느껴졌다. 나는 꼰대스럽게 대꾸했다. "그래서 돈 때문에 다니는 사람들이 프로페셔널한거야. 자기 적성과는 상관없이 꼭 잘해야 하거든" 이 아줌마가 뭔 소리를 하나 눈만 껌뻑껌뻑하던 그 청년은 안타깝게도 수습기간 종료와 동시에 해고되었다.

 

 나는 앞으로도 기꺼이 나의 궁핍과 열등감을 이용해 에너지를 만들 것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불어나는 적금통장처럼 팍팍한 현실을 이기는 내 안의 내공도 같이 쌓이기를 기대해 본다. 아니, 꼭 그렇게 될 것이다.

생계형 근로자는 없는 적성도 만들어 내지 않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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