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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Mar 01. 2020

못생김이 사무칠 때 청소를 했다.

미모와 환경의 상관관계

  축 늘어진 물미역 같은 머리카락이 입가의 심술보를 더 늘어져 보이게 한다. 남자처럼 바짝 깎은 큐티클이 잔뜩 일어난 손톱, 전혀 고혹하지 않은 빈약한 속눈썹, 거들 위로도 삐져나오는 늘어진 뱃살.....  


미용실을 마지막으로 다녀온 게 언제더라?

추레한 몰골을 마주하고 홧김과 절망감에 나도 모르게 미용실에 예약전화를 하려 핸드폰을 집어들다 말고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저 그런 옷을 걸치고 나가긴 하지만 그마나 얼굴에 뭐라도 찍어바르고 출근하는 날은 그마나 볼만한 축에 속한다. 집에 있는 주말이면 무릎이 튀어나온 극세사 수면바지에 목이 늘어진 셔츠에 보풀이 잔뜩 일어난 카디건 차림으로 장이라도 보러 나갈라치면 '사람답게'하고 나가는 그 과정이 너무나 귀챦아서 미루고 미루다 나가기 십상이다. 훗날 남편과 아이들의 기억 속에 나는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까? 가장 소중한 이들의 기억속에 초라하고 볼품없는 모습으로 남는다는 것은 비극이다.


 요즘에는 세련된 여인들이 너무나 많다. 그녀들의 손톱은 물 한번 안 묻히고 사는 것 마냥 매니큐어로 반짝이고 속눈썹은 마스카라를 하지 않아도 풍성하게 연장이 되어있다. 이른바 사회생활을 하는 여인이라면 그 정도의 품위유지는 기본이고 전업주부라 할지라도 자기자신을 가꾸는 것은 미덕이다. 하지만 그 기본적인 품위 유지조차 내게는 해당사항이 안된다. 1회에 최소 50~60불씩 비용이 드는 속눈썹 연장과 매니큐어를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은 해야 한다는 것은 내게는 사치요, 그런 돈이면 차라리 적립식 펀드에 투자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의 외모 자신감 하락의 탈출구는 어디일까?

오랜만에 미장원에 가서 물미역같은 머리를 쳐내고 세련된 보브 단발로 변신하던지, 맨얼굴도 초라해 보이지 않도록 속눈썹 연장 시술을 받든 지, 눈 한번 딱 감고 매니큐어 시술을 받던지 하면 미모 지수가 상승할 것 같다. 그러나 적지 않은 투자를 해야 하며 이 투자는 거의 한 달 안에 감가상각이 된다는 점에서 도저히 내키지가 않는다. 그런데 나는 정말로 '품위유지'에 비용을 들이지 않기 때문에 초라하고 못생긴 것일까?  




 이십 년 전의 나는 멋쟁이였다.

매일같이 한 시간 반 동안 화장대 앞에 앉아서 공들여 화장을 했다.

고등학교 때까지 단 한 번도 공부하라는 잔소리를 하지 않던 어머니께서도 대학생이 된 나에게 화장대 앞에서 버리는 시간이 아깝지도 않으냐며 한소리 하실 정도였다.

         

무려 이런 이미지를 연출하기 위해 매일같이 한 시간 반을 투자했다.

  당시 과외 아르바이트가 끊이지 않았던 나는 학생 치고는 제법 수입이 있던 축에 들었는데도 항상 돈이 없었다. 지갑에 돈은 말랐는데 반해 내 옷장은 미어터졌고 화장대는 어수선했으나 그래도 나는 자신만만했다.

눈에 콩깍지가 단단히 씐 남자 친구가 있었고 나름 퀸카(요즘 말로 하면 인싸) 축에 드는 편이라 자부했으며 얼굴에 화장끼 하나 없고 꾸밀 줄 모르는 다른 처자들보다 내가 훨씬 낫다는 근거 없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리고 이런 나의 노력이 여자로서의 밝은 미래를 가져온다는 믿음이 있었다.


 지금의 나와 같이 살고 있는 남편이 가끔 회상을 하는 대목이 있다.

처음으로 우리 집에 초대를 받고 설레는 마음에 여자 친구의 방은 어떻게 생겼을까 상상했다고 했다. 매일같이 있는 대로 멋을 부리고 나오는 나의 방은 파스텔톤 침구가 단정이 세팅된 흰색 침대와 그와 세트로 보이는 공주풍 화장대 위에 아기자기한 소품과 향수가 있을 것만 같은 깔끔하고 여성스러운 방일 거라 상상했었단다. 그러나 처음으로 목도한 이른바 '내 여자 친구의 방'에 그는 실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고 한다.


 음료수 잔 하나 놓을 공간 없는 어지러운 책상에 아침에 몸만 빠져나온 흔적이 역력한 어지러운 이부자리, 먼지와 화장품 파우더를 하얗게 뒤집어쓴 화장대와 제대로 보이기나 할까 싶은, 지문이 덕지덕지 묻은 거울도 가관이었지만 방구석에 벗어놓은 스타킹과 양말이 굴러 나니는 개판 오 분 전의 모습에 그는 겉으로 티는 안 냈지만 솔직히 많이 놀랬고 실망했었노라 고백한다. 그리고 이것은 어디까지나 나의 짐작인데 평소에 밖에서 보던 화려한 내 모습과는 달리 평범한 우리 집 모습에도 조금 실망했을 것이다.


 그때의 나는 화려했을지언정 결코 아름답지 못했다. 빛좋은 개살구, 속빈 강정이라는 표현에 걸맞는 인간이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진짜 어른으로서의 역할을 맡았을 때 나의 자신감은 한도 끝도 없이 추락했다.

어지러운 내 책상과 서랍은 내 일상과 내 업무와 아내와 엄마의 역할까지 어지럽게 만들었다. 내 가방 속 하나 단도리 못하는 내가 내 인생을 정리할 수 있을 리가 만무했다. 그래서 끊임없이 옷과 액세서리를 샀던 것 같다. 겉모습이라도 번지르르해야 나의 치부와 결핍이 가려진다는 생각에 습관적으로 쇼핑을 했다. 품위유지에 적지않은 비용을 들이며 매일 같이 옷을 바꿔 입었지만 나는 항상 다른 누군가의 외모와 스타일을 부러워했고 남의 'Look'을 훔치고 싶어 전전긍긍하던 따라쟁이에 불과했다. 나만의 스타일과 철학이 없는 상태에서 무분별하게 이루어지는 쇼핑은 시행착오의 연속이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였다.   


 딱히 원하는 스타일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막연한 기대심리로 미용실에 가고, 새 옷을 한 벌 사 입고, 이른바 이런저런 시술을 받는 것이 내 외모 자신감의 상승과 꼭 연결되지 않음을 나는 값비싼 경험을 통해 이미 알고 있다. 이 세상에 나의 외모를 획기적으로 업그레이드 해 줄 '헤어스타일'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그런 신의 손을 가진 미용사를 만날 확률도,특히 내가 사는 이 곳에서는 극히 드물다. '옷을 잘 입는다는 것'과 '옷이 많은 것'은 아무 상관이 없다는 것도 불혹에 깨달은 진리이다. 지금 당장 나가서 적은 예산에 맞추어 그저 그런 나의 안목으로 고른 그저 그런 옷을 사봤자 더 찌질해 보일 것이다. 새로 장만한 것이라는 의무감에 본전을 빼려고 열심히 입지만 하나도 멋있지가 않은 불상사를 돈을 들여 만드는 형국이다. 차라리 지금도 미어터지고 있는 내 옷장에서 나를 그저 그렇게 보이게 만드는 X-MAN들을 골라내어 과감히 처분하는 것이 내 이미지 상승에 도움이 되리라.


 그렇다면 네살짜리 꼬마 소녀부터 여든 살 할머니까지 동경한다는 네일아트는 어떨까?

예전에 어쩌다 받은 매니큐어 시술 도중 네일 테크니션이 내 손톱이 정기적으로 '전문가의 관리' 받지 않는 것을 의식한 듯 이런 말을 했었더랬다.


"여자라면 네일아트는 누구나 다 좋아하는 것 같아요. 시술을 못 받으면 못 받았지 안 받는 사람은 없을걸요?"


 긴 손톱을 병적으로 견디지 못하고 지나치게 화려한 네일아트에는 아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나는 아무래도 여자가 아닌가 보다. 이솝우화에서 높은 곳에 달려있어 따먹지 못하는 포도를 보고 저 포도는 분명 시어빠졌을 거야 하며 정신승리를 하는 여우가 되어도 좋다. 네일아트를 받지 못함에 아무런 결핍과 스트레스를 받지 않는 나 자신이 참으로 다행스럽다. 그리고 무엇보다 네일 테크니션과 마주 앉아있는 그 한 시간이 나는 너무나 곤욕스럽다. 손님을 지루하지 않게 해야 한다는 서비스 정신으로 억지 스몰토크를 이어가는 그녀가 안쓰럽다. 귀챠니즘만 극복하면 큐티클을 제거하고 손톱의 모양을 내가 좋아하는 사각형으로 다듬는 정도는 집에서도 충분히 가능하다. 그리고 가끔은 빨강색이나 검은색으로 손톱을 칠하고 기분전환을 할 수도 있다.


 이목구비를 제일 드라마틱하게 만들어주는 속눈썹 연장을 못 받아서 내가 못생긴 게 아니다. 나는 결국 게을러서 못생겼다. 배 터지게 저녁밥을 먹은 후 소파와 한 몸이 되는 게 일상인 이상, 얼굴의 부기와 뱃살은 피할 수 없다. 그렇게 소파에서 조금만 이따가..라고 세수와 양치질을 미루다가 잠이 들어 아침까지 가는 일이 부지기수인데 속눈썹 연장을 하면 예뻐진다기보다는 허구한 날 세수도 안 하고 잠드는 똥배나온 속눈썹 긴 아줌마가 되는 것뿐이다. 165신장에 60키로를 육박하는 현시점에서 차차리 5키로를 감량한다면 속눈썹이 문제가 아니라 아예 사람이 달라질 것이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불만족스러워 문득 내 주변을 돌아본다. 20년 전보다는 많이 나아졌지만 나는 아직 많이 게으르고 어수선하다. 머리도 제대로 빗지 않아 단정치 못해 보일 때가 많고 기초적인 홈케어 마저 포기하고 사니 피부 상태도 비루하다. 정리되지 않고 먼지가 쌓인 구석구석이 꼭 내 얼굴 같다. 여기저기 굴러다니는 초코파이니 과자들이 내 뱃살의 일부분으로 보인다. 부엌의 기름때는 내 모공에 낀 노폐물이다. 옷장에 숨쉴틈 없이 꽉 차 있는 존재감 없는 옷들이 그 주인장조차 볼품 없어 보이게 만들고 있다. 눈꼴사납게 얽히고 설킨 정체모를 코드줄은 엉키고 부스스한 내 머리꼴이다.  

평소 내 머릿속 상태

 내가 머무는 공간이 예뻐지면 나의 못생김도 수그러들 것 같은 것은 단순히 기분 탓일까?

공간을 꾸미기 위해 해야 할 일이 인테리어 용품을 새로 들이는 것이 아닌 내 집에 놓인 미관저해범들을 제거하는 것에서 시작됨을 전에 살던 집을 파는 과정에서 익히 경험했었다.




아름다움의 종류는 매우 다양하다.

 발랄함, 귀여움, 청순함, 세련됨, 우아함, 지성미, 섹시함,건강미 등등 아름다움의 서브 카테고리를 모두 겸비한 사람은 지구 상에 아무도 없을 것이다. 20세기 최고 미녀라는 엘리자베스 테일러조차 이지적인 매력보다는 약간의 백치미가 느껴진다. 신이 내린 미모라는 모니카 벨루치도 사실 귀여운 맛은 없다. 아름다움의 여러 가지 하위 장르 중 한 가지 매력만 제대로 있어도 충분히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최근 들어 종종 오랜만에 보는 지인들이 나더러 전보다 좋아 보인다는 말을 한다. 칭찬이라기보다는 인사치레에 가까운 말들에 굳이 의미 부여하지는 않지만 그중 나의 외모 자신감을 상승시켜주고 동기부여를 해주는 꽤나 구체적인 덕담이 있었다.

 어머.. 얼굴에 품위가 있어. 탤런트 K 같아.지금 헤어스타일도 너무 멋있다.

 오리지널 K배우보다는 한참 다운그레이드 된 보급형 K배우 st이라 할지라도 나는 그 말이 너무나 맘에 들었다. 왜냐하면 K 씨는 세련되고 화려한 스타일 스타일링과는 거리가 먼, 데뷔이래 한결같은 헤어스타일에 수수한 매력을 고수하는 배우이기 때문이다. 미용실 다녀온 지 일년이 되어가 치렁치렁한 머리를 늘어뜨리고 한 달 품위 유지비 제로에 가까운 나로서는 결코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얻은 그 '품위'가 뭔지는 모르겠지만 너무나 소중하다. 그래서 아름다움의 하위 장르 중 40대의 내가 승부를 걸어볼 만한 것은 그 어렴풋한 '품위'라는 한가닥 실마리를 얻었다.


그리고 그 '품위'는 내가 속한 공간과 일상과도 연결되었다.

 지인이 내 공간을 방문했을 때 내게서 느낀 매력을 내 집에서도 고스란히 느꼈으면 하는 바람이 나로 하여금 청소라는 것을 하고 싶게 만들었다. 20년전 남편이 우리집에서 충격과 공포의 현장을 마주했을때 나는 진정으로 아름답지 못했었더랬다. 그러나 지금은 유행과는 담을 쌓고 전문가의 손길을 받지 못하는 나와 닮은 내 집이, 화려한 장식품이나 고가의 가구가 없어도 50년 묶은 내 집이, 쓸고 닦고 조이는 일상을 통해 그 '품위'라는 것을 풍겼으면 하는 바램이다. 내가 못생긴 이유를 먹고 사느라 여유가 없어서 뷰티서비스를 누리지 못하는 탓으로 돌린다면 내 외모와 일상과 공간은 앞으로 점점 더 초라하고 못나게 나이 들어갈 것이다.


 충동적으로 미용실에 가는 대신 나는 침구를 세탁하고 어지러운 책상을 정리했다.

그리고 오늘밤엔 반신욕을 한 후 머리를 정성스럽게 말리고 딥클린징을 한 얼굴에 간만에 마스크팩을 붙히고 잠드는 호사를 누릴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내일 아침엔 나노단위 만큼 쬐금 더 예뻐져 있을 것이다.     

                

한쪽으로 밀어놓긴 했지만 양반 됐다.

 

#그래서5키로언제뺄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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