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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Chegevora May 11. 2020

ISFJ 시어머니 VS INTP 며느리

최후의 승자(?)는 누구일까?

 내향형(Introverted)이라는 점 빼면 모든 기질이 정반대인 두 여인으로 이루어진, 가뜩이나 어렵고 미묘한 고부관계는 어떤 모습일까? 승자와 패자로 나눈다는 것이 어불성설이기는 하지만 확실히 우리의 경우에는 무신경한 며느리인 나보다는 예민한 우리 어머님의 마음고생이 더 컸던 것 같다.


 나는 개인적으로 ISFJ 여성은 아내 또는 어머니로서 가장 위대한 유형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가족에게 헌신적이고 부지런한 살림꾼이며 현명한 양육자이다. 특히나 우리 어머님은 가족에게만 ISFJ의 성향을 나타내시고 남들에게는 ISTJ 의 면모를 보이신다. 상대에 따라 감정형과 사고형이라는 기질적 특성을 취사선택하시다니... 이 얼마나 멋진 여인인가. 마찬가지로 가족과 남들에게 사뭇 다르게 행동하셨던 나의 친정아버지는,그러나 불행히도 그 반대이셨다.즉 집에서는 폭군, 밖에서는 신사이셨다는 뜻.


 그런 그녀가 맞은 며느리,그것도 귀하디 귀한 무녀독남이 짝이라고 데려온 여자에게 바라고 기대하시는 점이 얼마나 많았을까? 부득이한 사정으로 나와 우리 어머님은 신혼 때부터 무려 7년간의 동거를 해야만 했다. 일년도 채 되지 않아 어머님은 당신의 아들에게 며느리에 대한 불만성 하소연을 하셨다. 내가 당신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린다는 것이었다. 아주 단순한 지시사항도 최소 세번은 반복해야하는게 너무나 힘들고 화가 난다고 말이다. (이 똑같은 대사를 신입사원때 내 사수도 했었더랬다.)


 일례로 우리는 전날밤 잠들기 전에 다음날 아침에 먹을 쌀을 미리 씻어 놓았었는데 내가 그 담당이었다. 어머님은 쌀을 씻어서 물기를 쪽 빼놓으라고 하셨는데,20대 중반에 라면 끓이기만 할줄 아는 상태에서 결혼을 한 나는 그 지시를 이해할 수가 없었다. 물기를 빼놓을 거면 뭐하러 미리 씻어놓나 하고 말이다.

 그래서 나는 쌀을 씻은 후 쌀 높이 위로 올라오는 물기를 따라 내버리지 않은채 그냥 놔두고 잠들었다. 한마디로 내게 그 일은 작은 귀챦음도 무릅쓰기 싫을 정도로 하찮은 일이었으니깐. 두어번정도 어머님께서 물을 안따라냈구나? 하고 말씀하셨을 때만 해도 내 귀에는 그것이 질책으로 들리지 않았었는데 서너번 반복이 된 후에 어머님 답지 않게 벌컥 화를 내시는 모습에 아차 싶었다. 나는 말도 안들을 뿐만 아니라 눈치도 더럽게 없었던 것이다.


 어머님이 화를 내실때만 해도 나는 이해를 못했다. 별것도 아닌거에 왜 이리 집착하실까? 단순히 당신의 지시를 무시했다는 것에 대해 꼰대스러운 분노표출이라 생각하다가 주부로서의 시간이 더 지난 후에야 나는 그당시 어머님과 나의 의사소통의 문제점을 깨달았다. 흰쌀을 밤새도록 물에 불려놓으면 지나치게 불어버리며 씻기면서 흡수된 물의 양만으로도 충분했기 때문에 어머님은 조금 귀챦더래도 물기를 빼놓으라고 하셨던 것이었다.

 우리의 갈등은 다음 문장에서 괄호안의 한마디만 더 곁들였으면 충분히 피할 수 있는 것이었다.


"쌀을 씻고 나서는 (밤새 너무 불어버리면 안되니깐) 물기를 쫙 빼놓거라."


 그러나 어떤 이들은 모든 이유과 타당성이 생략된 명령과 지시에도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순순히 따르는데 반해 나는 귀챠니즘이 개입된 자기합리화로 지시를 내 식대로 변형하는 경우가  많다. 문제는 나의 좁은 식견에서 비롯된 합리화가 틀린 적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 어머님은 반대로 나의 사소한 말 한마디에도 옳고 그름을 따지지 않고 순순히 응해주셨다. 하다못해 "A 떡집은 시루떡이 맛있고 B 떡집은 바람떡이 맛있더라구요" 하고 스치듯 내뱉은 말에도 고지식할 정도로 A떡집과 B떡집을 다녀오시는 분이다.


 어머님이 쌀을 씻은 후 물기를 빼야하는 이유에 대해 언급하지 않으신 것은 그것이 너무나 당연해서 말할 필요를 못 느꼈다거나 아니면 당신 스스로가 누군가의 지시에 왜?라는 의문을 품지않고 마치 법처럼 준수하시는 분이기 때문일 것이다.


 어머님이 가끔 내게 칭찬을 하실 때도 있었는데, 주로 아이디어가 좋다거나 기발하다는 평이 주된 이유였다.

예를 들면 우리 어머님은 카레를 만드실 때 정해진 재료 외에는 다른 걸 넣을 생각을 못하시는데 내가 냉장고에서 유통기한이 임박한 두부나 토마토 등을 넣어버리면 어린아이처럼 기뻐하셨다. "얘,나는 왜 그런 생각이 안든다니?"하시면서 나를 치켜세워주시면 괜히 우쭐해지곤 했다.


 우리 어머님이 아예 대놓고 나한테 제일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 있다고 하셨다.

"너는 왜 식구들 생선가시를 안발라주니?"

여기서 '식구'들이라함은 나의 남편까지 포함하며 아이들은 스스로 밥을 먹을 수 있는 취학아동을 의미한다.

식구들이 생선을 잘 안먹는 이유가 내가 가시를 안발라줘서라고 하셨다.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었다.


 내 기억에 우리 친정엄마도 생선을 발라주신 적이 없지만 나는 노릇노릇하게 잘 구워진 굴비 정도는 눈알 두개만 남기고 깨끗이 해치워 버릴 정도로 생선을 좋아하고 또 잘먹는다. 내 손이 게을러서 식구들이 생선을 안 좋아한다? 이런게 바로 세대차이성 시집살이구나 생각했는데 나보다 훨씬 어린 처자들이 본능처럼 식구들 먹을 생선살을 발라주는 모습을 보고 나는 또 한번 좌절했다. 그리고 그런 모습이 참으로 사랑스러워 보였다. 물론 남편과 아이들이 생선보다는 고기를 더 좋아하는 것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렇지만 내가 열심히 식구들 생선먹이기에 열중했었더라면 그들이 생선을 좋아하든 싫어하든 아쉬움은 없었으리라.  

 

 요즘은 시대가 많이 바뀌어 "여자들이여. 이기적인 엄마가 되라. 엄마가 행복해야 가족이 행복하다" 는 말이 곧잘 들리곤 한다. 그런 구호가 조금은 위로가 되긴 하지만 적어도 나에게는 해당되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나는 천성적으로 모든 관심이 나 자신에게만 쏠려있는 몹쓸 엄마이자 아내이기 때문이다. 아내와 엄마,주부라는 역할이 이토록 버거운 내가 적당히 현실에 적응하면서 그럭저럭 살 수 있었던 데에는 내 주변인, 특히 나의 시어머님으로부터 받은 영향이 꽤 컸다.


 그녀는 대체로 나의 INTP로서의 특징들을 못마땅해하셨다.

무신경함, 게으름, 나밖에 모름, 덜렁대고 심지어는 종종 멍 때리고 있는 모습 조차도 왜 그러는지 이해하지 못하셨다. 만약 우리가 이해관계였다면  나는 진작에 해고 또는 손절당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며느리라는 이유만으로 아끼고 사랑해 주셨다. 그리고 시어머니는 현실세계에서 다칠 수 밖에 없는 나를 너무 잘 알아서 끊임없이 걱정하고 조언하시는 경종 같은 존재가 되었다. 가정에서나 직장에서 별거 아닌 것 같아보이는 일을 귀차니즘으로 인해 건너띄고 싶을 때 내 스스로 읖조리는 각성문(?)이 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은 나같은 귀챠니스트땜에 무너졌다"고.

 일종의 노이로제와도 같아 보이는 이 생각은 근 이십년 전 쌀씻기 사건 처럼 나의 임의적 판단이 틀렸을 때의 부끄러움에서 비롯되었다.  


 이번에 큰 아이가 대학을 간다. 감개무량 말고는 정말 아무런 생각이 없었는데 축하인사 끝에 어머님께서는 특유의 '잔소리'를 하신다. 주변에 같은 학교 다니는 애들이랑 미리 연결을 시켜주라든지, 기숙사 생활을 할 때 한국음식이 그리울테니 이렇게 저렇게 준비를 해주라든지, 새 옷도 사 입히고 간단한 살림살이도 준비해주고 등등... 불과 몇년전만 해도 지긋지긋하던 이런 잔소리가 결국 현실감각 영 부족한 내게 적어도 생각할 거리를 준다.


 결혼 생활 내내 주로 나만의 세계에만 갖혀있는 내가 훗날 정말로 혼자가 되는 생각을 해본다. 남편도 영원히 내 옆에 있어주지 않을 것이고, 아이들도 머지 않아 내 품을 떠날 것이다. 그때는 원없이 혼자만의 시간을 가질 수 있을테지만 나는 그런 상상만으로도 가슴 한 구석이 저릿해온다. 그때가 되면 나는 젊은 시절 식구들에게 생선가시를 발라주지 않았음을 후회할 것이다. 어쩌면 어머님은 알고 계실 지도 모른다. 당신이 지금 나를 귀챦게 하지 않으면 내가 나중에 많이 아파할 것을 말이다.       

 

 글 초반에 내가 승자와 패자를 언급하였던가? 결국 진정한 승자는 우리 어머님이다. 그동안 못난 며느리 때문에 많이 속상하고 실망하셨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참으로 그녀를 닮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그녀의 계획성,부지런함,가족에게 항상 사랑한다고 말하는 그 오글거림, 사려깊음, 알뜰함, 깔끔한 살림솜씨 등등.. 내가 갖지 못한 미덕을 제대로 갖추고 있는 여인과 7년 동안의 소림사 생활을 할 수 있었음에 새삼 감사하다. 때로는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가 그 인내심 많은 ISFJ 사부님 밑에서 소림사 생활을 다시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는 걸 보니 그 시간이 그리 고달프지만은 않았었나 보다.


P.S: 그리고 이러한 사고의 유연성은 INTP의 강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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