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기력증 말기 환자에게 바치는 처방전
원제는 [Unfuxk yourself]라는 다소 경박한 제목인데 출판사에서 고심 끝에 정한 제목이 [시작의 기술]인 듯하다. 전날 밤 e-book을 다운받아놓고 잠이 들었다.
공휴일인 오늘, 6시에 눈이 떠지고 제일 먼저 드는 생각은 기특하게도 간밤에 다운받아놓은 책을 읽자였다.
6시부터 읽기 시작하여 잠깐 졸기도 하고 간단한 아침도 먹고 식구들과 이야기도 했는데 오전 10시에 완독을 했다.
[무슨무슨 기술]로 끝나는 제목치고는 쉽고 빠르게 읽힌다.
저자인 게리 비숍은 세계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동기부여가라고 한다. 게리 바이너척도 그렇고 요즘은 욕을 섞어가며 하는 독설이 트렌드인가 보다. ㅎㅎ 욕쟁이 할머니 국밥집 스타일 마케팅일까? 책에서의 어조는 결코 친절하지 않다.
개인적으로 '우주의 기운' 운운하는 자기 계발서는 최순X 느낌이 나서 싫어한다. 대표적인 예로 2000년대를 강타했던 [시크릿]이라는 책이 있는데 나는 과연 그 책을 읽고 변화된 사람이 있을까 궁금하다.
뭐 있긴 있겠지.. 일반인보다 좀 영적인 부분이 발달한 사람?
아무튼, 저자는 자기 자신과의 독백이 주는 영향력이 얼마나 큰 지를 이야기하면서 시작한다.
그리고 내 안의 잠든 호랑이를 깨워라라든지, 우주의 기운이 너를 도울 것이라든지 등등의 꿈과 희망과 용기를 심어주는 낯간지런 이야기 따위는 미안하지만 하지 않겠노라고 미리 양해를 구한다. 내 안에는 호랑이 따위는 없으며 내가 뭔데 우주가 나서서 도와주겠나며 대신 나 자신이 한 단계 발전할 수 있는 발판만 제공하겠다고 한다.
삶의 주도권을 쥐게 만드는 나 자신과의 대화를 통해 인생이 조금 더 쉬워질 수 있다고 한다.
그리하여 지금, 당장, 여기, 이 순간에 집중한 일곱 가지 단언을 통해 내 인생을 변화시킬 자기 대화법을 소개한다.
1. 나는 의지가 있어.
내가 원치 않은 일을 하지 않을 의지, 그리고 원하는 일을 할 의지가 있다고 스스로에게 선언함으로써 긍정적인 방향으로 실행력을 높인다.
나는 현재 월급쟁이이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확신이 생긴 것은 언젠가는 이곳을 탈출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현재 구미가 당기는 일이 있지만 100% 커미션이라는 것이 가장 큰 리스크이다. 가족을 거느린 생활인으로서 나는 신중해야 한다.
그런데 내가 아무것도 안 하고 차일피일 커리어 전환을 미루고 있다면 나는 진짜로 의지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어쩌면 진짜 내 속마음은 지금 이대로가 편하고 좋은 것일 수도 있다. 그렇다면 구태여 내가 의지를 가지고 있지도 않은 일 때문에 고민을 할 필요도 없는 것이다.
다시 한번 나 자신에게 묻는다.
정말로 퇴사의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
새로운 공부를 할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
휴일의 달콤한 늦잠을 포기할 의지가 있는가?
그렇다
고로 나는 월급쟁이를 벗어나 내가 원하는 일을 하며 시간적 경제적 자유를 얻을 의지가 있다.
2. 나는 이기게 되어 있어
역설적이게도 이 단언은 꿈과 희망과 용기를 주는 그런 아름다운 이야기가 아니다.
여기서 이긴다는 것의 대상은 바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믿고 있는 것을 결국은 증명하는 일에서 이기고 있다는 뜻이다.
예를 들어 나는 살을 빼고 싶지만 속으로는 어차피 다이어트에 실패할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결국은 그 생각이 옳았음을 증명해내는 것이 우리 인간의 본능이다. 운동과 식단관리도 작심삼일로 돌아가버리고 폭식을 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결국 실패할 것이라는 무의식이 옮았음을 몸소 증명해 보이며 체중감량이라는 나의 의식적 목표를 이겨내고 만다.
그렇다면 반대로 나는 살을 빼고 싶고 기필코 뺄 수 있다는 무의식이 있다면 우리의 행동 양상도 거기에 맞추어 갈 것이기에 게임의 판도를 아예 바꾸어버리자는 것이 핵심이다.
나는 3F(FAMILY, FREEDOM, FITNESS)로 이루어진 진정한 부를 원한다. 그러려면 남 눈치 안 보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시간에 메이지 말아야 한다.
나는 원래 조직과 계통에 약하고 자율성이 남보다 높게 타고난 (내 멋대로라는 뜻) 인간이다. 한 번 사는 인생, 기왕이면 단점을 보완하며 살기보다는 강점을 발휘하면서 살고 싶다. 이것이 맞다는 것을 나는 기어코 증명해 보일 것이다. 왜냐면 내가 진심으로 그렇게 믿고 있기 때문이다.
3. 나는 할 수 있어.
이 무슨 고리타분하고도 시시한 자기 위안의 말인가 싶지만 저자의 이어지는 설명에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이런 것이 바로 온라인상에 수많은 독후감이 존재해도 직접 시간을 들여 책을 읽어봐야 하는 이유일 것이다.
이 세 번째 단언은 현재 사는 게 힘든 사람에게 가장 직접적으로 전하는 위로이다.
작년에 남편이 하던 비즈니스를 강제적으로 접고 손 털고 나오게 되었다.
하루아침에 실업자가 된 남편은 공부를 하기로 어렵사리 마음을 먹고 영어학원을 등록하기로 했다.
그날 직장에서 근무 중이던 내게 카톡이 왔다.
"여보,, 나 학원 등록하고 나오다가 주차장에서 사고를 냈어."
만약 우리가 좋은 일로 갔던 곳에서 차사고가 났다면 사람 안 다친 게 어디야.. 하면서 좋게 지나갔을 일이 그날따라 더 서럽게 느껴졌다.
" 아주 죽어라 죽어라 하는구나."
뭐하나 되는 일 없다고 느꼈던 그 비참했던 기분이 일 년이 지난 지금에서는 잘 기억이 나지 않을 만큼의 해프닝으로 남아 있다.
현재는 자동차 보험료가 조금 올라있고 지금 남편은 공부 열심히 잘하고 있다.
이 책의 저자 게리 비숍은 내 그동안 인생의 여정을 주욱 펼쳐보라고 한다.
그동안 인생에 기쁨, 행복, 감사의 순간도 많았지만 슬프고 괴롭고 힘든 순간도 많았다.
그렇지만 그 또한 지나갔고 지금 이 순간을 살고 있다. 그리고 미래에는 나를 기다릴 멋진 순간들도 분명 존재할 것이다. 나는 (지금 내가 처한 상황을 극복)할 수 있고 앞으로 다가올 불행도 극복할 수 있다.
4. 나는 불확실성을 환영해
우리는 안정과 루틴이라는 마약에 중독되어있다.
그리고 본능적으로 불확실성을 두려워한다. 지금 내가 월급쟁이 신분을 벗어나 자기 사업을 하기 전에 고민하는 것처럼 말이다. 불확실성보다는 확실성을 추구하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이다.
헌데,, 저자는 사실 확실한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맞다. 나는 나도 모르게 나의 월급쟁이 신분이 확실하다는 착각에 빠져 살았다.
팬데믹 이후 철밥통일 줄 알았던 회사에서 구조조정이 시작되었다. 일단 대상은 연차가 높은 직원들.
그래도 확실히 저분은 대상이 아니겠지 했던 분마저 권고사직을 당했다.
그분들이 조금 더 일찍 불확실성에 도전했다면 어땠을까. 혹시 지금 그런 후회를 하고 있진 않을는지 모르겠다.
인간이 불확실성을 두려워하는 큰 이유 중 하나는 남들의 시선과 평가이다.
나만해도 일단 남편과 부모님이 내 의사결정에 대해 어떻게 생각할지를 먼저 고민한다.
작가는 그들의 평가는 내가 통제할 수 없는 것이기에 그냥 놔두라고 한다.
내가 주체가 되어 선택한 불확실한 결정에서 내가 통제할 수 있는 부분에만 집중하라고 한다.
예컨대 공부나 인맥관리 같은 것이겠지.
5. 생각이 아니라 행동이 나를 규정해
예전부터 나는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결정한다는 말을 하곤 한다. 이를 테면 나는 신앙심이 매우 약하지만 억지로 주일 예배에 참석하고 구역예배모임이 참여하다 보면 신앙심이 밑바닥에서 그래도 중간은 가지 않겠냐 하는 발상이다. 결국 영혼 없이도 어떤 행위를 반복하다 보면 마음이 생길 수 있다는 믿음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온 몸이 찌뿌둥하고 출근하기가 더럽게 싫은 날이 자주 있다. 꼭 도살장 끌려가는 거 같아...라고 남편에게 하소연하기도 한다.
그래도 억지로 화장을 하고 옷을 입고 시간에 쫓겨 문을 박차고 나온다. 생각보다 아침 공기가 상쾌하다.
회사에 들어서면서 일부러 밝은 목소리로 인사한다. 동료직원과 눈이 마주치면 억지 미소를 짓는다.
재미없는 업무지만 '그냥 한다'. 내가 보기엔 하찮은 일이지만 굉장히 중요한 일이라도 하는 척을 하며
나 자신을 속인다.
내 마음과 완벽하게 반대로 행동했지만 나는 결과적으로는 성실한 직장인이다. 내가 속으로 어떻게 하면 아름답게 퇴사를 할 수 있을까 하고 아무리 고민해 본들 퇴근 후 집에 와서 드라마 정주행이나 하고 있으면 결국 나는 속마음과는 달리 월급쟁이 생활을 꽤나 즐기고 있는 사람이 맞다.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부자 흉내를 내고 싶다. 때로는 형식이 내용을 만드는 법이니깐.
돈을 흥청망청 쓰겠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자수성가형 부자들이 노력한 것을 따라 해보려고 한다.
6. 나는 부단한 사람이야.
바카라 같은 이른바 홀짝 베이스 도박을 하는 룰 중에 '마틴 기법'이라는 것이 있다. 원리는 단순하다.
홀이든 짝이든 한 방향을 정하고 계속 판돈의 두배를 거는 것이다. 예를 들어 홀수에 만원을 걸었는데 잃었다. 다음 판에 다시 홀수에 2만 원을 걸었는데 잃었다면 총 3만 원을 잃은 셈이다. 다음 판에 4만 원을 건다. 또 잃어서 7만 원 손실이다. 다음 판에 8만 원을 건다. 잃었다. 총 15만 원 잃었다. 다음 판에는 16만 원을 걸었는데 땄다.
그동안 잃은 것 제하고도 만원의 수익이 난 셈이다. 마틴은 계속 한 방향으로 결괏값이 나오는 확률은 점점 작아진다는 원리를 이용하여 뚝심 있게 한 방향으로 판돈의 두 배씩을 걸면 결국은 돈을 딸 수밖에 없다는 이론이다. 그런데 두배씩 늘릴만한 판돈이 부족하든지 아니면 홀짝 방향을 임의대로 바꾸던지 하면 돈 잃기 십상이다.
비유가 이상하지만 '부단하다'는 개념은 내가 정한 방향에서 물러서지 않고 '딸 때까지'계속 나아가는 마틴 기법과 (내가 보기엔) 닮아있다.
판돈을 두 배씩 걸어야 하는 배포가 필요 없으니 새가슴인 나에게는 어쩌면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마틴보다 더 쉬울 수도 있겠다.
계속 가야 하는 건지, 여기서 이만 돌아서야 하는 건지
걱정하기보다는 부단하게 밀고 나가라. 부단함에는 한 방향밖에 없다.
앞으로 나아가는 것이다. 부단함에 있어서 선택은 하나뿐이다.
가던 길을 계속 가는 것이다.
205p [시작의 기술]
7. 나는 아무것도 기대하지 않고 모든 것을 받아들여.
나는 기대라는 감정이 이렇게 해로운 것인지 미처 몰랐다. 이 책에서 제일 충격적인 부분이었다.
나는 그동안 기대를 희망이라는 단어와 동일시하며 미화시켰었나 보다.
기대란 현실에 충실할 수 없게 만드는 바이러스 같은 놈이다.
대학 가면 뭐든지 잘 풀릴 줄 알았는데....
취직하면 승승장구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
결혼하면 마냥 즐거울 줄 알았는데....
이민 오면 잘 살 줄 알았는데....
이 놈의 몹쓸 기대 때문에 나는 그때그때 처한 현실에서 도피하고만 싶었더랬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참으로 많은 기회가 행복이 있었던 시간들이다. 지금 이 순간도 훗날에 돌이켜보면 그리워질 소중한 과거가 될 것이다.
나는 천성적으로 기대를 크게 하는 사람인 것 같다.
이를테면 맛집이라고 소문난 곳에 갔다가 실망한 기억이 훨씬 많고 새로운 프로젝트에서도 빨리 흥미를 잃고 손을 놔버리는 스타일이다.
영화도 정말 기대 없이 봐야 만족을 한다. 누가 재밌다고 추천해주는 영화치고 재밌게 본 적이 없다.
처음 캐나다 땅을 밟았을 때 명소라고 찾아간 가스 타운에서 남편이 찍은 동영상이 있다.
당시 나는 가스 시계가 종을 치는 모습을 보기 위해 구경하던 사람들 속에서 보란 듯이 '하.. 이거였어?' 하면서 시시하다는 듯 대놓고 썩소를 짓는데 정말 화면 속으로 들어가 그때의 나를 한 대 패고 싶을 만큼 비호감이다.
당신의 무기력함은 자신도 모르게 가진 기대와 현실 사이의 격차에서 생긴다.
그 격차가 클수록 당신이 느끼는 기분은 더 최악이 된다.
220p [시작의 기술]
우리는 왜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해야 하는가?라는 물음에 저자는 '죽음'을 이유로 들며 결론을 짓는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죽음을 목전에 두었을 때 나는 돈을 많이 벌지 못한 것을 후회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많이 벌 시도를 하지 않았음을 후회할 것이라고 한다.
나도 기대감 갖지 않고 불확실하지만 원하는 삶을 살기 위한 노력, 그 비스므레한 것이라도 해보고 싶다. 더군다나 불혹이 지난 나이는 이럴 때 좋은 동기가 된다.
故구본형 선생님이 생각이 난다.
그는 멀쩡히 잘 다니던 직장을 44세라는 젊지 않은 나이에 그만두고 2000년대 당시에는 파격적 이게도 1인 지식 기업가로서의 삶을 사시다가 59세라는 아까운 나이에 작고하셨다. 그의 이른 별세가 너무나 아쉽지만 적어도 그는 후회 없는 삶을 살았다는 생각을 한다.
만약 그가 59세에 영면할 것이라는 것을 미리 알았더라면 그는 44세보다 더 이른 나이부터 원하는 일을 더 열정적으로 시작했지 않았을까 감히 생각해본다.
게으른 내가 모처럼의 휴일, 아침 6시에 자발적으로 읽어나 책을 한 권 완독 하고, 대충이었지만 식구들 점심을 해먹이고 전날 절여놓은 배추에 양념을 버무리고 독후감을 쓰고 나니 오후 3시 30분이다. 앞의 7개의 단언으로 자기 독백을 하기로 한 내게 시간은 더 이상 누워서 흘려보낼 수 없는 소중한 자산이다.
훗날 죽음을 앞두고 이 세상 원 없이 잘 살다 간다고 서슴없이 이야기할 수 있으려면 말이다.